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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안보라인은 '해병대 라인'

머린코341(mc341) 2017. 1. 26. 17:39

[양낙규의 Defence Club]트럼프 안보라인은 '해병대 라인'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라인에 '해병대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 북한의 도발과위협에 대응한 긴밀한 한미 공조를 끌어 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어 미행정부 안보라인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임스 매티스(James Mattis. 66) 국방장관


안보라인의 중심인 제임스 매티스(James Mattis. 66) 국방장관이다. 매티스는 1969년 해병대 사병으로 자원 입대한 뒤 4성 장군까지 올랐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서 활약했고 중부 사령관, 합동군사령부(USJFC) 사령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전략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매티스는 전장에서 통솔력을 인정받았지만 일부 경솔한 결정으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내 '미친 개'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군대에서 "해병대는 '패배'를 쓸 줄 모른다" 등 사기를 북돋는 구호를 잘 사용했다.


"누구를 만나든 존중하고 예의를 차려햐 하지만, 만나는 모든 이를 죽일 수 있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어록도 있다. 매티스는 '손자병법'과 '전쟁론' 같은 병서' 등 7000권의 책을 독파한 독서가이자 사상가로도 유명하다.



공식 석상에서 종종 막말을 일삼아 트럼프 당선인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이란 강경론자 입장에서도 트럼프와 노선을 같이한다. 중부군사령관으로 일할 당시 이란이 안보에 위협이 되는 만큼 군사적 대응으로 맞서야 한다는 강경론을 펼쳤으며, 버락 오바마 정부와 이를 두고 마찰을 빚은 끝에 2013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조지프 던퍼드(Joseph F. Dunford Jr) 합참의장


조지프 던퍼드(Joseph F. Dunford Jr) 합참의장은 지난해 10월 해병대 사령관에 취임한 이후 불과 1년 만에 사실상 군 최고직인 합참의장에 취임했다.


동부 보스턴 출신으로 세인트마이클스 대학을 졸업하고 1977년 임관한 그는 또 불과 3년 만에 준장에서 대장이 되는 초고속 승진 기록을 남기게 됐다.



그는 사령관에 취임하기 직전 1년 6개월 동안 아프간 주둔 미군 총사령관으로 연합군을 무리 없이 지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벗 워크(Robert O. Work) 국방부 차관


로벗 워크(Robert O. Work) 국방부 차관은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지명돼 2014년 5월 상원 인준을 받았다. 해병대에서 27년간 복무하고 2001년 대령으로 예편한 워크 차관은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의 정권인수위 국방부 인수팀에 몸담았다.


이후 2009년 5월부터 2013년 3월까지 해군성 차관으로 일하고 나서 국가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 대표로 활동했다.




존 켈리(John Francis Kelly) 국토안보장관


존 켈리(John Francis Kelly) 국토안보장관은 제1해병원정군 사령관으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해 2003년 바그다드와 티크리트 공격, 2004년 4월 팔루자 공격을 각각 지휘했으며카리브해와 중남미 32개국을 담당하는 남부사령관을 끝으로 45년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아들이나 딸을 잃은 최고위 장성 출신 인사이기도 하다. 그의 아들 로버트 켈리 해병 중위는 29세이던 2010년 아프간 남부 헬만드 주(州)에서 소대원들을 이끌고 전투 순찰을 하던 중 폭탄 공격을 받고 숨졌다.


켈리 장관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왔으며, 특히 멕시코 국경지대의 안보 취약성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 목소리를 내왔다.


[아시아경제]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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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해병 전역 후 ROTC 장교로 재입대…‘살아있는 전설’


트럼프의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 한미 ‘작계’ 바꿀까?

“비인도적인 세력에게 비인도적인 대접해야”…1991년부터 실전 지휘관 두루 경험


 ▲ 트럼프 정부의 첫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 ⓒ美캘리포니아大 방송국 관련보도 화면캡쳐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美대통령 당선자가 국방장관으로 내정한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야 이미 유명인물이라 그렇다지만 다른 나라에서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그의 경력과 신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N.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은 1950년 9월 8일 워싱턴州 풀먼에서 태어났다. 워싱턴州 리치몬드에서 자랐으며, 1968년 콜럼비아 고교를 졸업한 뒤 1969년 美해병대에 사병으로 입대한다.


美해병대를 전역한 뒤 센트럴 워싱턴大에 입학, 역사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학 재학 중 ROTC 생활을 하고 대학 졸업 뒤인 1972년 1월 1일 다시 해병대 소위로 임관한다. 이후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은 44년 동안 군 생활을 하게 된다.


중위 시절 그는 서태평양을 담당하는 美해병 제3원정군 소속 제3해병사단에서 소총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대위 때에는 로즈 아일랜드州에 있는 美해군대학 예비스쿨의 교관, 제1해병연대 소총중대 중대장으로 근무했다. 소령 때에는 오레곤州 포틀랜드의 모병소 담당자로 근무했다.


1991년 2월 ‘제임스 매티스’ 중령은 제7해병연대 제1대대장으로 ‘리퍼 특임대’에 배속돼 걸프 전쟁에 참전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걸프 전쟁의 최선봉은 美해병대였다. 그의 본격적인 ‘참전 경험’이 시작됐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 뒤 11월부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제7해병연대장이던 ‘제임스 매티스’ 대령은 제1해병원정여단의 선봉을 맡아 현지로 투입된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 ‘제58특임대’를 이끌면서, 탈레반과 알 카에다 소탕 작전을 벌인다.


당시 유명했던 일화가 작전에 투입되기 전 지친 장병들을 모두 재우고, 연대장인 자신과 측근 참모들이 직접 불침번을 서면서 장병들을 지켰던 일이다. 또한 야전에서는 직접 야전식량(MRE)을 데우고 경계근무를 감독하는 등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으로 유명해졌다. 이런 이야기는 미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2003년 3월 ‘대량살상무기’ 의혹으로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제임스 매티스’ 소장은 제1해병사단장으로 이라크에 투입됐다. 이라크 전쟁에서도 ‘제임스 매티스’ 소장의 용맹은 잘 드러났다. 특히 2004년 이라크 팔루자 일대를 제압, 관리하는 역할을 맡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라크 전쟁을 냉소적으로 묘사한 미국 드라마 ‘제네레이션 킬’에서도 ‘제임스 매티스’ 소장은 총격전이 벌어지는 최전방까지 와서 직접 지휘하는, 매우 저돌적이고 단호한 사단장으로 묘사됐다. 드라마에서 그는 연대장 한 명을 현장에서 보직해임 하는데, 이는 실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매티스 소장은 바그다드 공략에 나선 제1해병연대전투단의 진격 속도가 늦다는 이유로 연대장 조 다우니 대령의 보직을 그 자리에서 해임해 버렸다.  


 ▲ "아군이 될지 적이 될지, 네가 선택하라!" 2004년 이라크 침공 당시 제임스 매티스 제1해병사단장이 팔루자 족장들을 불러놓고 한 말. 그의 어록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SNS 핀인터레스트 화면캡쳐


그리고 이라크 팔루자 작전 당시에 나왔던 ‘제임스 매티스’ 소장의 발언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당시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와 사담 후세인의 친위조직인 ‘사담 페다인’이라는 민병대가 곳곳에서 미군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때 ‘제임스 매티스’ 소장은 팔루자 일대의 부족장들을 모아서 만난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평화를 위해 여기에 왔다. 보시다시피 포병대도 없다. 내가 여러분에게 간곡히 바라는 점은 내 뒤통수를 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가는 여기 있는 모두 죽여 버리겠다.”


‘제임스 매티스’ 소장이 이끌던 제1해병사단 관할지역에서 문제가 생긴 적도 있다. 2004년 5월 한 결혼식장을 이라크 정부 잔당들의 모임으로 착각해 UAV로 공습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민간인 42명이 숨졌다. 하지만 ‘제임스 매티스’ 소장은 ‘부수적인 피해’라면서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제임스 매티스’ 소장이 지휘하는 제1해병사단이 귀국할 때 그는 ‘중동 전문가’로 불릴 정도로 현지 사정에 정통해 있었다고 한다. 귀국 후 진급한 ‘제임스 매티스’ 중장은 해병전투개발사령부의 사령관을 맡게 된다.

‘제임스 매티스’ 중장의 발언을 왜곡한 언론 보도가 이때 나온다. 2005년 1월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대테러 전략 관련 포럼에서 그는 이런 발언을 한다.


“여러분이 만약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가게 된다면, 베일(니캅)을 두르지 않았다고 부녀자들을 5년 동안 두드려 패던 인간들(탈레반 종교경찰)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자들을 사람으로 취급해주기 싫다. 이런 자들과 전투를 벌이며 총을 쏘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그들에게 총을 쏴주는 것은 그런 X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위 ‘진보성향’이라는 美언론들은 이 발언 가운데 “현지인과 전투를 벌이며 총을 쏘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라는 말만 보도하며, 매티스 중장을 ‘미친X’으로 몰아붙였다.


2006년 5월 31일 ‘제임스 매티스’ 중장은 제1해병원정군 사령관(군단장급)에 임명됐다. 2007년 9월 11일에는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과 조시 W.부시 당시 대통령에 의해 대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美합동사령부 사령관에 임명됐다. 美상원은 9월 28일 그의 임명을 승인한다.


 ▲ 2011년 12월 15일 C-17 수송기를 타고 바그다드 상공을 날면서 대화를 나누는 마틴 뎀시 당시 美합참의장과 제임스 매티스 당시 美중부군 사령관. ⓒ美국방부 공개사진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제임스 매티스’ 대장은 여전히 해병대에 있었다. 오바마 정부는 2010년 초 그를 美해병대 사령관에 임명한다. 이어 같은 해 7월에는 데이빗 페트라우스 육군 대장의 후임으로 중부사령부 사령관에 임명한다. 미국의 중동 정책을 총괄 관리하는 합동군 사령관 자리였다.


하지만 ‘제임스 매티스’ 대장과 오바마 정부 간의 ‘궁합’은 잘 맞지 않았다.


“필요하면 적의 목을 따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제임스 매티스’ 대장의 눈에 미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이란과 협상하고, 이라크에서 대책 없이 미군을 철수시키려는, ‘재스민 혁명’으로 무정부 상태가 된 북아프리카 일대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려는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국무장관은 ‘비정상’으로 보였다.


결국 ‘제임스 매티스’ 대장과 오바마 정부의 ‘고위층’ 간에 심한 마찰이 생기면서, 2013년 5월 22일, 44년 동안 몸 담았던 해병대를 떠나게 된다.


이상이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의 간략한 이력이다. 올해 예순 여섯 살인 그는 ‘미혼’이다. 그를 모셨던 美해병대 출신 장교와 사병들은 그를 가리켜 “해병과 결혼했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반인들의 선입견처럼 ‘남성우월주의자’라거나 ‘폭력을 신봉하는 전쟁광’도 아니다. 부하들에게는 늘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프로답게 행동하라”고 당부했다. 다만 “대신 만약에 대비해 상대방을 어떻게 죽일지도 고민하라”고 가르쳤다.


 ▲ 2013년 3월 25일 전역식을 마친 뒤 이야기를 나누는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과 척 헤이글 당시 美국방장관. ⓒ美국방부 공개사진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은 미군 내에서도 손꼽히는 독서광이자 지식인이기도 하다. 지인들은 그의 집 서재에 군사, 역사, 철학 관련 서적 7,000여 권이 있으며, 이를 모두 여러 차례 읽은 것에 감탄하면서, 그 이야기를 주변에 전했다.


전역한 뒤 美방산업체 ‘제네럴 다이나믹스’의 이사로 취업하고, 씽크탱크 ‘후버 연구소’의 방문 연구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은 군인들을 위한 신기술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실제로 실리콘 밸리에 있는 한 바이오테크 회사의 이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식과 실전 경험을 겸비한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이 美국방장관이 되면, 미국의 군사전략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한국과 일본의 군사전략도 상당 부분 바뀔 가능성이 높다. 2005년 1월 포럼에서 그가 했던 말처럼 ‘비인도적인 세력에게는 비인도적인 대접’을 해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 최악의 비인도적 세력’인 김씨 일가와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예전보다 더욱 공세적인 전략을 취하자는 미군의 권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15’가 일부 수정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의 이력으로 볼 때 美국방부가 한국군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바로 ‘실전 경험’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군은 실전 경험이 있는 군인을 육성하는데 관심을 끊은 지 거의 20년이 되어 간다. 말로는 “실전 같은 훈련”을 외치지만, 실탄 사격을 포함한 대규모 기동 훈련, 실제 도심에서의 작전 훈련, 해외에서의 전투 경험 쌓기 등에는 무관심하다.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병할 때에도 병력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현재 한국군 내부 분위기로 볼 때 그나마 실전경험이 있는, 2013년 1월 ‘아덴만의 여명’ 작전에 투입된 해군 특전단 요원들이 해군에서 ‘장성’까지 진급할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 


 ▲ 美중부군 사령관 시절 이라크 전장을 직접 찾은 제임스 마티스 당시 해병대장. ⓒ美국방부 공개사진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의 입장에서는 실전 경험이 있는 고위급 장성이 단 한 명도 없는 한국군이 영 미덥지 않을 수 있다. 반면 김일성 때부터 ‘외화벌이’와 ‘동맹 지원’을 명목으로 남미, 아프리카, 중동 등지에 파견돼 실전 경험을 쌓은 장성들이 많은 북한 인민군을 보는 시선은 과거의 美국방장관과 다를 수 있다.


현재 한국 언론들은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이 어떤 사람인지를 전할 때 그의 별명이 ‘미친 개’라는 점만 부각시킬 뿐 “왜 ‘미친 개’라고 하는가”라는 점에는 무관심하다.


1775년 창설된 美해병대의 마스코트는 ‘불독’이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 다른 별명은 ‘지옥에서 온 개’다.

한국 언론들은 美해병들이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을 ‘미친 개’라고 부르는 것이, 그가 ‘짖는 개’가 아니라 ‘짖지 않는 개’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이다.


[뉴데일리] 2016.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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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내각, 해병대장 출신만 2명…군인 신뢰 눈길


트럼프, DHS 장관에 존 켈리 前해병대장 내정

아프가니스탄 전쟁서 막내아들 잃은 예비역 장성…큰 아들도 해병 장교


 ▲ 美국토안보부(DHS)는 정보기관이면서 동시에 집행기관이기도 하다. 사진은 지난 4월 포트 베닝에서 열린 주요 사법기관 전술대회에 출전한 국토안보부 이민세관단속국 특수대응팀(DHS ICE SRT)의 모습. ⓒ포트 베닝 홈페이지 캡쳐


美연방정부 부처 가운데 ‘국토안보부(DHS)’는 다른 정보기관들을 압도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국토안보부는 2001년 9.11테러 이후 중복된 기능과 조직을 가진 각 부처들의 정보기관을 통폐합, 국내 안보문제는 물론 테러 대응, 재난재해 대응까지 아우르는 거대 조직이 됐다.


국토안보부의 2016년도 예산은 약 662억 달러(한화 76조 8,000억 원)에 달하며, 직원 수는 24만 명이나 된다. 여기에는 교통안전국(TSA), 세관국경보호청(CBP), 이민세관집행국(ICE), 재난관리청(FEMA), 해안경비대(CG) 등도 포함돼 있다. 


2017년 출범하는 트럼프 정부의 국토안보부 수장으로 예비역 해병대장이 내정됐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美현지 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가 7일(현지시간) 차기 국토안보부 장관에 美남부사령관을 지낸 존 프랜시스 켈리 예비역 해병대장을 내정했다”고 보도했다.


美현지 언론들은 존 켈리 예비역 해병대장의 경력 등에 대해 보도했다.


1950년 5월 보스턴에서 태어난 존 켈리 예비역 해병대장은 1970년 美해병대에 입대, 전역한 뒤에 대학을 마친 뒤인 1976년 해병장교로 다시 임관했다.


 ▲ 2008년 11월 10일, 이라크 팔루자 기지에서 美해병창설일 기념 케이크를 자르는 존 켈리 당시 제1해병원정군 사령관. ⓒ美해병대 공개사진


존 켈리 예비역 해병대장은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 당시 제1해병사단 부사단장(준장)으로, 2003년 바그다드와 사마라, 티크리트 공격, 2004년 4월 팔루자 공격에서 활약했다. 2007년 1월 소장 진급을 천거 받았고, 같은 해 7월 제1해병원정군 사령관을 맡았다. 2008년 2월부터 2009년까지는 이라크 서부 지역에 주둔한 다국적군 사령관을 맡았다.


이어 해병중장으로 진급, 제1해병원정군 사령관을 맡고 있던 존 켈리 장군은 2010년 11월 비보를 접하게 된다. 막내아들인 마이클 로버트 켈리 해병중위가 아프가니스탄 헬만드州 상인(Sangin) 지역에서 교전 중 전사한 것이다. 전사 당시 켈리 중위는 제5해병연대 3대대 리마 중대 소속이었다고 한다. 또한 9.11테러 이후 교전 중 전사한, 유일한 ‘장군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존 켈리 당시 제1해병원정군 사령관은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메시지를 받은 뒤 “지금도 적과 맞서면서 위험한 상황에 있는 우리 아들 소대원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답해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존 켈리 당시 사령관은 2010년 11월 22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의 장례식에서는 참석자들에게 “9.11테러 이후 적과 싸우기 위해 입대한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해달라”고 요청, 다시 한 번 미국인들의 박수를 받았다. 美현지언론들은 존 켈리 사령관의 큰 아들 또한 해병 대위로 복무 중이며, 이라크에 두 차례 파병된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존 켈리 사령관은 이후 해병대장으로 진급, 중남미와 카리브해 일대를 관할하는 남부사령관을 마지막으로 45년 동안의 군 생활을 마쳤다.


美현지 언론들은 존 켈리 예비역 해병대장이 트럼프 정부의 첫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내정된 데에는 막내아들의 전사와 같은 아픈 가족사와 멕시코 국경 관리 강화와 마약 카르텔 소탕을 주장하는 평소 신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인수위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 日오키나와 美해병기지에서 연설 중 전사한 아들 이야기를 하다 말문이 막힌 존 켈리 해병대장. ⓒ美민간단체 '패밀리시큐리티' 홈페이지 캡쳐


美현지 언론들은 트럼프 당선자가 전직 고위급 장성들을 장관 또는 주요 보직 후보로 지명하는 데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만약 존 켈리 예비역 해병대장이 국토안보부 장관을, 제임스 매티스 前해병대 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을 맡게 되면, 트럼프 정부에는 해병대장 출신만 2명이 된다. 여기다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지냈던 예비역 중장 마이클 플린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맡게 되면, 트럼프의 백악관은 예비역 장성들, 그것도 실전 경험을 가진 장군들로 채워지게 된다.


존 켈리 예비역 해병대장의 국토안보부 장관 공식지명은 내주쯤에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뉴데일리] 2016.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