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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대한민국 잠수함엔 여성 승조원이 없다, 왜

머린코341(mc341) 2017. 7. 18. 12:08

[세상 속으로] 대한민국 잠수함엔 여성 승조원이 없다, 왜


15척으로 늘어난 해군 잠수함

실내 좁아 여자용 공간 마련 못한 탓
작전 기간 짧은 유럽선 여함장 나와

미국은 남성 승조원 부인들이 반발
수차례 설명회 뒤 2011년 여성 탑승

열량 소모 많아 식단 맛·영양 최고
오븐에 찌는 스테이크 특히 유명


시험항해에 나선 유관순함(SS 078)이 물살을 가르며 항해하고 있다. 유관순함은 한국 해군에서 첫 여성 이름을 딴 잠수함이다. 한국 해군은 아직 잠수함에 여성 승조원을 태우지 않고 있어 유관순함에도 여성 승조원은 없다. [사진 방위사업청]


지난 10일 해군은 장보고-II급(1800t) 잠수함인 유관순함을 인수했다. 우리 해군의 열다섯 번째 잠수함이다.


한국 해군은 현재 장보고-I급(1200t) 잠수함 9척을 갖고 있다. 해군은 유관순함이 속한 장보고-II급 6척을 인수했고, 앞으로 세 척이 인도를 기다리고 있다. 장보고-I급과 장보고-II급은 독일에서 설계한 잠수함을 한국이 라이선스 생산한 잠수함들이다. 2020년대 중반이면 한국에서 설계하고 건조한 장보고-III급(3000t) 잠수함이 영해를 누빌 예정이다.
 
현재 해군이 보유한 잠수함은 모두 재래식(디젤 또는 연료전지식) 추진 방식이다. 재래식이지만 핵추진 잠수함보다 상대적으로 조용하기 때문에 외국 해군과의 연합 훈련에서 한국 잠수함은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둔 적이 많다.
 
유관순함은 한국 해군의 군함들 중 처음으로 여성 이름을 땄다. 함명은 건조를 마친 배를 바다에 띄우는 진수식에서 붙인다. 진수 이후 시험 운영을 거친 뒤 해군에 인도된다. 유관순함은 2015년 3월 1일 일제시대 순국한 유관순 열사를 기려서 진수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관순함에 여성 승조원은 태울 수 없다. 아직도 잠수 병과는 ‘금녀(禁女)의 영역’이다. 문근식 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전 잠수함 함장)은 “예전 영국 해군이 잠수함 내부의 공기 질이 나빠 임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여성의 잠수함 승선을 반대했는데 과학적으로 전혀 증명되지 않은 얘기”라며 “잠수함 실내가 워낙 좁아 여성 승조원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1985년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덴마크·스웨덴·호주·스페인·독일·캐나다·미국·영국 순으로 여성 잠수함 승조원이 나왔다. 노르웨이는 95년 세계 최초로 여성 잠수함 함장을 배출했다. 문근식 국장은 “유럽에서 여성 잠수함 승조원이 상대적으로 일찍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 국가의 잠수함 작전 기간이 수일에 불과할 정도로 짧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 해군의 잠수함은 보통 작전에 나가면 한 달이 넘어서야 기지로 돌아온다.
 
95년 개봉한 영화 ‘크림슨 타이드’를 보면 주인공이 미 해군의 오하이오급(1만6000t) 전략 핵잠수함인 앨러배마함 안에서 조깅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잠수함은 길이가 170m이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이다. 유관순함의 길이는 65.3m다. 이런 잠수함을 가진 미국도 2011년에서야 여성이 잠수함에 탈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남성 잠수함 승조원 부인들이 여성 승조원 배치를 제일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남편이 잠수함에서 여성 승조원들과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승조원이 바닷물로 식수를 만드는 조수기의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 해군]


.궁여지책으로 미 해군은 잠수함 승조원 가족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설명회를 열어 겨우 오해를 풀었다. 또 엄격한 성 군기를 유지하는 대책도 세웠다. 그래도 미 해군은 전략 핵잠수함(이하 1척 기준)은 6명, 핵추진 공격 잠수함은 3명으로 각각 여성 승조원 수를 제한하고 있다.
 
도대체 잠수함 내 근무 조건이 어떻길래 해군은 여성 승조원을 시기상조로 봤을까. 무엇보다 잠수함 내부에서 남녀 생활 구역을 분리하기 어렵다. 수상함은 여성 승조원 침실이 별도로 있고 샤워실·화장실도 여성 전용이 있다.


하지만 잠수함은 여성 전용 공간을 줄 만한 형편이 아니다. 장보고-I급은 화장실이 고작 2개다. 장보고-II급은 함장 전용을 포함해서 3개다. 화장실은 샤워실을 겸한다.
 
이환준 김영옥 평화센터 사무총장(전 잠수함 함장)은 “어느 나라나 잠수함을 설계할 때 무기·장비 배치를 먼저 고려하고 거주기능은 그 다음”이라면서 “좀 과장해서 말하면 무기와 장비를 배치하고 남은 공간에 사람을 집어넣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 해군 잠수함보다 더 큰 미 해군 잠수함에서도 화장실과 샤워실은 남녀가 공동으로 쓴다. 사용 시간을 달리 지정할 뿐이다. 러시아의 타이푼급(2만3000t) 전략 핵잠수함은 내부에 조그만 수영장과 사우나를 갖췄다. 한국 해군에겐 아직까진 먼 나라 얘기다.


잠수함 내부 침실의 침대 숫자가 부족해 일부 침대는 두 명이 공유한다. [사진 해군]


.침실의 침대 수는 보통 전체 승조원의 70% 수준이다. 잠수함 승조원은 작전 중 하루 3교대로 근무한다. 다른 사람이 근무할 때 공유하는 침대에서 잘 수 있다.


한국 해군의 잠수함은 여성 전용 침대를 두기엔 너무 작다. 잠수함 침실은 승조원들의 파라다이스다. 휴식시간 책을 읽거나 미리 다운받은 영화를 감상하거나 간단한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서다.
 
좁은 곳에서 부대끼며 지내지만 잠수함 승조원의 전우애는 끈끈하다. 잠수함 승조원들은 원통형 잠수함 속에서 함께 생활한다고 해서 서로를 ‘한 통속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잠수함 승조원은 자부심도 높다. 미 해군은 사관학교 졸업생 중 가장 우수한 사람을 잠수함 승조원으로 뽑고 그 다음으로 해군항공기 조종사를 선발한다.


한국 해군에서도 1년 넘는 교육을 받고 자격 시험을 통과해야만 잠수함 승조원이 될 수 있다. 문근식 국장은 “잠수함 승조원은 유사시를 대비해 눈을 감고도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반복훈련을 받는다”고 소개했다.


장교들이 잠수함 스테이크를 먹고 있다. [사진 해군]


공간이 비좁아 잠수함 승조원의 운동량은 적지만 칼로리 소비량이 뭍에서보다 더 높다고 한다. 그래서 잠수함 식단은 맛이 좋고 영양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게 ‘잠수함 스테이크’다. 보통 작전 중 일주일에 한 번은 스테이크를 먹는다. 잠수함 조리실에서는 화재 위험 때문에 스테이크를 가스불로 굽지 않고 오븐으로 찐다.


이환준 총장은 “외부에서 손님이 탑승하면 이 스테이크를 대접한다. 다들 식사 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국 해군도 장보고-III급 잠수함에 여성 승조원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장보고-III급부터 여성 전용 공간을 만들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문근식 국장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집중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잠수함 근무에 적합하다”며 “우수한 여성 잠수함 함장이 하루빨리 탄생하기를 기원해본다”고 말했다.
 

[S BOX] 퀸 엘리자베스함, 잔다르크함 … 여성 이름 딴 세계 전함들


전 세계 해군은 나름대로 군함에 이름을 붙이는 규칙이 있다. 보통 군함의 함명으로 인명, 지명, 해류 이름, 해양동물 이름 등을 쓴다. 대개 톤수가 크거나 중요한 전략적 의미가 있는 군함의 함명은 인명을 사용한다.
 
여성 이름을 가진 군함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치 않다. 미 해군엔 이지스 구축함 힉비함(해군 간호병과장)·호퍼함(해군 여성 제독)과 해양 탐사선 매리 시어스함(여성 해양 탐사학자) 등이 있다. 영국이 곧 진수할 항공모함의 함명은 퀸 엘리자베스다.


현재 여왕(엘리자베스 2세)이 아니라 16세기 영국을 통치했던 엘리자베스 1세를 가리킨다. 프랑스의 헬기 항모인 잔다르크함은 나라를 구한 여성의 이름에서 따왔다.
 
군사전문 자유기고가인 최현호씨는 “군함 함명은 보통 전쟁 영웅의 이름을 쓰는 데 선진국도 여성을 해군 전투병과에 배치하기 시작한 게 최근이라 여성 인명의 군함이 많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해군의 경우 1999년 여성 생도가 해군사관학교에 처음 입학했고, 2001년에서야 여성이 전투병과를 받을 수 있었다. 2006년엔 첫 여성 고속정 정장이 탄생했다.
 
해군 관계자는 “유관순함에 이어 앞으로 배치될 장보고-III급 잠수함에는 여성 독립투사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17.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