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의 밀담] 文정부 자주국방 새 버전···평양만? 베이징·도쿄에도 견제구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는 전력 예산 편성
동북아 안보정세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
미국이 국지전, 제한전서 불개입할 우려
유사시 주변국 핵심을 무력화하는 독침
'참수부대'도 북한 위주에서 벗어나려
[중앙일보 이철재 기자] 무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첫 단계가 소요제기다. ‘OOO한 이유 때문에 OOO한 전력이 필요하다’는 형식이다. 그런데 올해 소요를 제기해야 하는 이유로 ‘북한의 위협’에 한가지가 더해졌다.
‘주변국 대비’다. 국방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0년도 국방 예산안에는 북한과 별도로 주변국에 맞서는 전력을 확보하는 항목이 따로 마련됐다. 정부 안에서 비공식적으로 ‘동북아 예산’ 또는 ‘주변국 예산’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2017년 11월 29일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대항해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연합 미사일 실사격 훈련을 벌였다. 당시 현무-2A 미사일 발사 장면. 현무 미사일은 한국의 독침 전력의 하나로 꼽힌다. [국방부 유튜브 계정 캡처]
자주국방(自主國防)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스스로 나라를 지키려는 대상은 북한만이었다. 그러나 중국, 일본과 같은 주변국으로 그 대상이 넓어졌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ㆍ일본이 적국이라는 뜻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앞으로 두 나라와의 분쟁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중국은 이어도 인근의 한국 배타적경제수역(EEZ) 확정을 두고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자주국방관(觀)은 『2018 국방백서』(백서)에서 드러났다. 국방부는 8년 만에 백서에서 ‘북한은 적’이란 표현을 뺐다. 대신 ‘적(敵)’을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으로 정의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에 한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주변국도 적이 될 수 있다는 확장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KC-330 시그너스가 F-15K 슬램이글에게 급유하고 있다. 이 공중급유기와 전투기는 주변국에 대비하기 위한 전력으로 꼽힌다. [사진 공군]
정부 소식통은 “현 정부는 기본적으로 북한은 재래식 전력으로 한국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문제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인데, 이것은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로 막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국력과 경제력이 커졌기 때문에 이젠 북한 일변도에서 벗어나 주변국도 챙길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고 말했다.
"중국·일본과의 무력 충돌 때 미국이 개입할까 의심"
정부가 주변국을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한 배경엔 동북아시아의 안보정세 변화가 자리 잡았다. 중국은 동북아를 자신의 세력권에 넣으려 하고, 일본은 중국에 맞선다며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소극적이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국가(안보우호국) 리스트에서 배제했는데도 미국이 지켜보고만 있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한ㆍ미 동맹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주변국과의 분쟁에선 어떠할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월 23일 칭다오(열린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창설 70주년 관함식을 맞아 해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신화사]
군 관계자는 이렇게 전망했다.
“북한이 한국을 침공하면 미국은 바로 개입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군사적으로 충돌하면 미국은 중립을 지킬 것이다. 단 한·일 전면전은 가능성이 아주 적다.”
“중국이 한국에 무력 분쟁을 건다면 셈법이 좀 복잡해진다. 전면전이면 미국은 개입한다. 그러나 국지전이나 제한전일 경우 미국은 주저할 것이다. 핵을 보유한 중국과 전면전으로 확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국이 섣불리 행동 못하도록 '견제'할 전력 필요"
정부는 중국과 일본을 견제할 전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우선 국지전이나 제한전, 구체적으로 독도 인근이나 이어도 인근의 상공이나 영해에서 중국과 일본의 해공ㆍ군에게 최소한 밀리지 않을 수준의 전력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좀 더 욕심을 부려 동남아시아의 믈라카 해협까지 전력을 보내 해상교통로(SLOC)를 보호하려고도 한다.
지난해 5월 14일 건조식을 치른 마라도함. 마라도함보다 더 큰 경항공모함 건조 사업이 진행하고 있다. [사진 방위사업청]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게 ‘대형수송함-Ⅱ’다. 수직 이착륙 기능을 갖춘 스텔스 전투기인 F-35B 16대가량을 탑재한 3만~4만t급 경항공모함을 건조하는 사업이다. 정부 소식통은 “문재인 대통령이 경항모 사업을 빨리 진행하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장기전력 소요 결정(7월 12일)→2019~2023년 국방중기계획 포함(지난달 14일)→2020년도 국방 예산안에 핵심기술 개발 예산 배정(지난달 29일) 등 경항모 사업은 ‘쾌속 항해’ 중이다. 해군 관계자는 “항모 1척은 중국(1척 보유, 1척 취역 예정)과 일본(2척 개조 중)에 비교하면 적지만, 두 나라에 섣부른 오산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번 국방중기계획에 처음으로 반영된 남부탐색구조부대 창설계획이 반영됐다. 2021~25년 2951억원을 투입해 한반도 남부지역에 수송기ㆍ헬기 각 3~4대를 둔 탐색구조 임무 전담부대를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한반도 남부지역’은 제주도다. 제주도 현지에선 공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속임수로 보는 여론이 많다. 그러나 공군 관계자는 “전투기를 전개할 계획은 당분간 없다”면서 “주변국과 무력 충돌에서 발생할 피해를 줄이려면 반드시남부탐색구조부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차하면 베이징과 도쿄의 핵심을 타격할 수 있어야"
주변국을 상대로 한 자주국방의 또 다른 개념은 ‘독침 전략’이다. 익명을 요구하는 정부 소식통은 “1990년대 국책 연구소에서 ‘왕건 연구’라는 이름으로 주변국과의 분쟁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연구했다”면서 “‘한국이 중국ㆍ일본과 대등한 전력을 쌓는 것은 무리지만, 양국의 핵심을 타격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여차하면 베이징(北京)이나 도쿄(東京)의 지휘부나 주요 시설을 무력화한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9월14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에서 열린 도산 안창호함 진수식. 도산 안창호함(3000t급)을 더 키우고, 원자력로를 탑재한 원자력추진 잠수함 건조가 추진 중이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독침 전략을 위한 대표적 전력이 원자력추진 잠수함(SSN)이다. 2017년 9월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한국의 원잠 보유에 대한 양해를 받아냈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정부 소식통은 “당초 미국의 원잠을 살 계획이었는데, 미국이 ‘핵잠은 전략 물자라 해외 판매가 안 된다’고 답했다”며 “일부 해외 기술을 들여와 자체 건조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현재 비닉(비밀)사업으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원잠엔 재래식 탄두를 단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할 계획이다. 중국이나 일본 가까운 바닷속에서 대기하다 유사시 명령을 받으면 이들 미사일로 한 방을 날린다는 목표에서다.
또 지상발사 미사일과 ‘참수부대’가 독침 전력으로 꼽힌다. 육군이 주변국 견제에 기여할 둘뿐인 전력이다. 육군미사일사령부는 사거리 800㎞의 탄도미사일(현무-2C)과 1500㎞ 순항미사일(현무-3C)을 보유하고 있다. 육군은 탄두 무게를 2t으로 키운 현무-4와 사거리를 3000㎞로 늘린 순항미사일(현무-3D)을 개발 중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7월 31일 “(미사일의) 풀업 기동(하강했다 다시 상승하면서 방어망을 피하는 미사일 기동)이라고 하는 것은 훨씬 오래전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개발했다. 우수한 정밀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5일 인천 국제평화지원단에서 아랍에미리트(UAE) 파병 부대인 아크 부대 14진 대원들이 워리어 플랫폼을 착용한 뒤 건물 침투 작전을 선보이고 있다. 특수임무여단(참수부대)는 아크 부대보다 좀 더 나은 장비를 갖췄다. [사진 육군]
참수부대는 육군특전사령부의 특수임무여단(특임여단)을 말한다. 유사시 적 지휘부, 핵시설, 미사일 기지,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시설 등 핵심 표적을 제거하기 위해 2017년 12월 만들어졌다.
당초 북한에 대한 ‘대량응징보복(KMPR)’ 전력이었지만, 이젠 주변국을 포함한 대상을 노리는 ‘압도적 대응’으로 바뀌었다.
육군 관계자는 “북한을 의식해 특임여단의 전력이 약해지거나 장비를 다른 부대가 쓴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사실이 아니다”며 “특임여단은 장거리 침투 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핵 그대로인데도 성급한 전략 변경"
현재의 위협뿐만 아니라 미래의 위협에도 대비하겠다는 게 현 정부의 자주국방이다.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부승찬 연세대 겸임교수는 “전반적으로 보수정부는 한ㆍ미동맹을, 진보정부는 자주국방을 각각 강조한다”면서 “정부는 50조원이 넘는 내년 국방 예산안을 짜면서 자주국방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10월 14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 육상자위대의 분열을 지켜보고 있다. [EPA=연합]
그러나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북한 핵 문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는데 성급하게 전략을 바꿨다는 점에서다. 국방부 차관 경력을 가진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부가 북한의 위협 평가를 자기 입맛에 맞게 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단거리탄도미사일 등 단거리 발사체의 발사는 북한이 재래식 전력에도 본격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동북아에서 한ㆍ미ㆍ일 군사협력을 통해 중국을 봉쇄하려 하는 미국이 한국의 주변국 전략을 어떻게 평가할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국민적 합의나 공론화 없이 밀실에서 자주국방의 개념을 재설정한 점도 문제다. 그래서인지 치밀한 전략 없이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고 있다.
방사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14일 발표한 중기계획을 짜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국방비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예산은 많은 데 쓸 데가 적다’는 아우성이 들렸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장기소요에 머물 전력들이 상당수 중기계획에 태워졌다(반영됐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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