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용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규제 해제되나…‘文의 큰 그림’
‘文 각본·金 연출’…‘사업가’ 트럼프에 ‘윈윈’ 협상전략 구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안보태세를 갖추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1일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이렇게 밝혔다. 의례적인 인사말일까. 문 대통령은 말 한마디도 그냥 내뱉는 타입이 아니다.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늘 그렇듯 힌트는 문 대통령의 말에 숨어 있다. 그리고 그 말 속에는 문 대통령의 ‘큰 그림’이 숨겨져 있다. ‘아마 바둑 4단’의 기력(棋力)을 갖고 있는 문 대통령이 그리는 그림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문 대통령은 이날 “더 강력하고 정확한 미사일 방어체계, 신형 잠수함과 경(輕)항모급 상륙함, 군사위성을 비롯한 최첨단 방위체계로 우리 군은 어떠한 잠재적 안보 위협에도 주도적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구축하겠다는 항목들이 구체적이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평화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시감이 든다. 문 대통령의 말들을 앞서 했던 인물이 있다. 주인공은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김 차장은 지난 8월28일 일본이 경제보복 조치를 시행하자 관련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과 거의 유사한 언급을 했다.
그는 “당당하고 주도적으로 안보 역량을 강화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군 정찰위성, 경항모 그리고 차세대잠수함 전력 등 핵심 안보 역량을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과 김 차장의 언급이 궤를 같이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그럴 리 없다. ‘문재인 각본, 김현종 연출’로 청와대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시간’이다. 문 대통령과 김 차장의 발언에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9번째 정상회담이 있었다. 즉 ‘군사위성을 비롯한 최첨단 방위체계’ 등 문 대통령의 국군의날 발언이 미국과의 큰 조율 아래 나왔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청와대는 미국과의 정상회담 직후 ‘호혜적 동맹관계’를 강조했다. 일방적 지원과 의존이라는 과거 동맹 형태에서 벗어나 경제·안보 분야 등에서 ‘서로 주고받는’ 동맹관계를 수립하겠다는 의미다.
청와대가 이렇게 발표했다는 것은 미국 역시 이를 원했다는 뜻이다. 무엇을 주고받는다는 걸까. 시사저널은 ‘문재인 각본, 김현종 연출’로 그려지고 있는 그림의 퍼즐을 맞춰봤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한국이 민간용 고체연료 우주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한·미 미사일 지침을 개정하는 문제를 미국과 긴밀히 협의 중이다. ⓒ 연합뉴스
정찰용 인공위성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
현재 정부는 한국이 민간용 고체연료 우주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한·미 미사일 지침을 개정하는 문제를 미국과 긴밀히 협의 중이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9월4일 전화통화를 통해 한·미 미사일 지침에 나와 있는 한국의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을 해제하기로 합의했고, 11월7일 공식 발효됐다. 큰 외교적 성과임에 틀림없지만 우주발사체에 고체연료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부분은 바뀌지 않았다.
시사저널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우주발사체의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풀어 달라고 미국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여기에는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돼 있다고 한다.
협의는 청와대와 외교부 주도로 진행 중이다. 성사 여부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과거보다 우리 측 입장에 대해 미국을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외교부, 국방부 등은 모두 협상이 진행 중인만큼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있지만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좋다는 전언이다.
정부는 왜 ‘민간용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제한을 풀고 싶어 할까? 일단 한국의 우주 기술이 규제 등에 가로막혀 미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작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우주·항공 분야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미국의 기술을 ‘100’이라고 하면 한국의 우주발사체 기술 수준은 60%에 그친다. 기술 격차는 17년에 달한다. 이는 EU(95%)는 물론 중국(89%)과 일본(86%)에도 크게 뒤처지는 수준이다.
한국의 우주환경 관측 및 감시 분석 기술도 ‘최고/선도-추격-후발-낙후’ 단계에서 EU·중국·일본 중 유일하게 ‘후발’로 분류됐다. 보고서는 “2005년까지만 해도 중국보다 앞선 기술을 보유했다”고 지적했다.
우주로켓에는 액체연료와 고체연료 두 가지가 사용되는데, 고체가 액체보다 추진력이 강해 고체연료를 사용하느냐 여부는 한 나라의 우주개발 역량과 직결된다.
문제는 고체연료를 활용한 우주발사체가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군사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런 논리로 그동안 미사일 지침을 통해 우리의 고체연료 사용을 제한해 왔다. 이에 지금까지 한국은 ‘나로호’ ‘누리호’ 등 우주발사체를 액체연료를 활용해 개발해 왔다.
반면 ‘전범 국가’ 일본은 고체연료 발사체 관련 제약이 없다. 일본은 꾸준히 고체연료 로켓 기술을 발전시키며 국제 로켓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려 하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단순히 한국의 우주 관련 기술 증진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고체연료 우주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공위성도 더 많이, 더 손쉽게 쏘아올릴 수 있게 된다.
현재 한국은 자체 정찰용 인공위성이 하나도 없어 미국이 제공하는 위성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 자체 정찰위성은 빨라야 2023년쯤부터 보유하고, 순차적으로는 2025년이나 돼야 도입이 완료될 전망이다.
즉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핵심 군사역량인 독자 대북 정찰능력은 2025년에야 갖춰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체적으로 고체연료 우주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다면, 정찰능력도 더 빨리 키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전작권 전환을 문재인 정부 임기(2022년 4월) 안에, 그렇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앞당길 수 있게 된다.
김 차장은 이와 관련해 최근 주목할 만한 언급을 했다. 그는 “중국은 30개가 넘고 일본은 8개가 있는데 우리는 정찰용 인공위성이 하나도 없다”며 “안보 분야에서도 외부 세력 의존도가 너무 높으면 부품·소재처럼 똑같은 문제가 안 생긴다는 법이 없다.
우리가 빨리 저궤도에 적어도 정찰용 인공위성을 5개, 아니면 25개를 쏘아올려야 한다”고 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의 말이 더 빨리, 더 많은 정찰용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읽히는 이유다.
사실 준비는 2년 전부터 이뤄지고 있었다. 2017년 6월30일 한·미 공동성명 중 6항 ‘동맹의 미래’를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양 정상은 양국 간의 강력하고 역동적인 유대가 한·미 동맹의 토대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경제·무역, 재생·원자력 에너지, 과학·기술, 우주, 환경, 보건, 방산 기술 분야에서의 고위급 협의를 통해 양국 간 미래 지향적 협력을 진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정상 간 합의문에는 한 글자도 허투루 담기는 게 없다. ‘우주’라는 두 글자가 많은 걸 함의한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이미 당시 우리 정부는 민간용 고체연료 우주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한·미 미사일 지침을 개정하는 문제를 미국과 긴밀히 협의했다.
성사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처음에는 개정에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소식통은 “이미 양국 실무진 사이에 의견이 오고 갔고, 논의가 상당 부분 진전된 것으로 안다”며 “정상 간 합의문에 담겨 있는 만큼 미국도 마냥 우리 측 요구를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한국이 민간용 고체연료 우주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한·미 미사일 지침을 개정하는 문제를 미국과 긴밀히 협의 중이다. ⓒ 연합뉴스
사업가 트럼프에게 ‘비즈니스 논리’ 제안
그렇다면 문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어떻게 미국을 설득하고 있을까?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로 ‘윈-윈’ 할 수 있다는 ‘비즈니스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기점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가 됐다는 분석이다. 한국이 일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안보 분야에서 자립하려면 정찰위성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이슈다. 우리가 자력으로 정찰용 인공위성을 만들려면 미국의 기술력,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미국 군수산업에 상당히 의존해야 한다.
엄청난 군수 수요가 발생하는 장이 선 셈이다. 한국 정부가 역대 최초로 내년도 국방예산을 50조원 넘게 편성하고, 그중 방위력개선비가 17조원에 달하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군침 당기는 일이다. 우리 요구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 후 정부는 ‘호혜적 동맹관계’를 강조했다. ‘호혜적 동맹’ 개념은 2001년 9·11테러 후 미국의 국가전략이 변하면서 등장했다. 부시 행정부는 당시 한국 등 동맹국에 미 국익에 기여해 줄 것을 요구하는 국가안보전략을 추진했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한·미 동맹 역할 조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파병, 용산기지 이전 및 주한미군 재배치가 이런 흐름 속에서 진행됐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파병 요구를 강하게 하고 있다. 우리로서도 받아낼 것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한·미 동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나갈 것”이라며 “미국이 동맹국에 기대하는 안보 역할 확대에도 기여해 나갈 것(8월28일 김현종 2차장)”이라고 밝혀왔다. 문 대통령의 큰 그림은 이미 짜였다. 한·미 동맹의 진화를 향한 수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北·中 반발은 과제…美의 對中 견제 요구 늘어날 수도
전문가들은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한국이 민간용 고체연료 우주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게 미국과 합의를 본다면 큰 성과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는 게 중론이었다. 한국 정부가 염두에 둬야 할 핵심 리스크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됐다.
일단 북한과 중국의 반발 우려다. 북·중은 한국의 우주 개발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주변국으로부터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 등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는 해빙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비판도 잘 관리해야 할 사안이다.
정반대로 미국의 요구사항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정찰능력이 강화되면 그만큼 미국이 한국에 기대하는 바가 커질 수 있다. 미국이 설정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경쟁국인 중국의 견제 역할을 한국에 일부 맡길 수도 있는 것이다.
사드 논란 이후 중국의 직간접적인 보복으로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렸던 것을 떠올려보면, 주변국 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리스크 관리는 필수적이다.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시사저널] 20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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