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740기 김동훈

실무생활-8 잊지 못 할 첫날밤

머린코341(mc341) 2019. 10. 7. 09:58

실무생활-8


잊지 못 할 첫날밤.


아늑해지는 정신을 부여 잡고 현실을 본다.


나를 챙기던 선임은 그 둑방 밑에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상말 선임에게 속칭 "쭐대치기"를 여러번 맞았는지 얼굴이 벌겋고 켁켁~ 거리면서 숨도 제대로 못쉬고 있는 듯 했다.


내무실 바닥, 앗쎄이, 중대 바닥을 데리고 첫 훈련 나온 날에 속칭 "찐빠" 를 냈고 중대장 지적까지 받으니 쭐대치기 몇 번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건은 아닌 듯 싶었다.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은 없지만 쫄지 않을 수 없었다. 쭐대치기의 여파가 곧 나에게도 들이 닥칠 것 같았고 오늘밤은 정말이지 초죽음이 될 정도의 구타를 당하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상황이 해제 되고 대대병력 전체가 다시 둑방길로 올라왔다.


조금만 걸어가니 대대 병력이 총원 숙영을 할 수 있는 개활지가 나타났고 중대 별로 지정된 장소에 A텐트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쫄병은 뭐를 하더라도 어설프다. 아직 실무용어르 100% 깨우치지 못해 시킨일에 눈만 껌뻑껌뻑 한더던가 우물쭈물 한다던가 하는 일이 잦다. 


나중에 내가 고참이 되어 보니 쫄병들의 그런 모습이 보이더라.  갇 전입온 아쎄이나 하사나 소대장이나 다 똑같은 동급이다.


계급장만 다를 뿐 뭐든 처음이면 다 어설퍼 보이고 어리버리 한 곳이 군대인 곳이다.  방독면 사건으로 자꾸 위축이 간다.


선임들이 지나면서 주위를 살피고 감정에 실린 주먹과 발길질을 날린다.


'내가 내 편하자고 거기에 지주핀을 넣었나.. 지들이 넣어놓고 왜 씨* 나 한테 화풀이야?' 라고 반문을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오늘 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생매장 당할 것 같은 예감 떄문에 얼굴을 숙이며 작위적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워줬다.


중대 바닥 (제일 쫄병)이니 누구와 함께 잘 수 있는 선택도 없다. 그 좁은 A텐트에 세명이 자야한다. 비를 대비해 빗물을 흘려 보낼 수 있는 도랑도 파놓았지만 과연 이 낡은 거적떼기 같은 A텐트가 빗물을 막아 줄지도 의문으로 판쵸의를 깐 맨바닥으로 빗물이 스며 들어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비라도 내리면 오늘 하루 정말 돌아버리는 하루가 될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하늘은 온통 잿빛이다.


'에라 씨* 되는게 없네...'


중대별로 A텐트를 모두 구축하고 대대장님 GP까지 작업원으로 딸려가서 설치를 하고 나서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A텐트 앞을 배회하고 있다가 주계병이 본대에서 추진한 식사차량이 왔고 배식을 받기 위해 또 다시 작업원으로 끌려 갔다.


커다랗고 네모난 보온밥통 같은데에 밥을 받고 국을 받고 반찬 3개를 받아 돌아왔다.  반합에다 반찬과 밥,국을 배식받아 내무실 병력이 모두 모여 같이 먹는다. 


밥 먹으면서도 계속 눈치를 준다. 먹을땐 개도 안건든다는데..그래도 배가 고파 악기 있게 저녁을 먹고 정리를 한 뒤 중대 병력 전체가 모여서 중대장의 지시로 불을 피웠다.


불가에 가까이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잘 타들어 가는 모닥불을 보고 있으니 먼 발치에도 열기가 희미하게 왔고 예전 생각이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갔다.


지금쯤이면 기말고사 준비를 하고 있을 때고 시험이 끝나면 어김없이 학번 동기들과 선배들과 어울려 다니며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마시고 즐겁게 보낼텐데....


현실은 방독면 케이스에 지주핀이나 넣고 다니는 중대바닥, 개쪽의 모습이었다.


오후에 들어온 주계식사 추진 차량에 몰래 꼽쳐서 들어온 소주 대포알 (PT 제질의 큰병) 이 나왔고 중대장이 손수 중대 하리미우 부터 해서 몇잔을 하사하시고 두병째 병이 따질 때 나 한테도 반합 뚜껑에 한 가득 담긴 소주가 건네졌다.


얼마만에 마시는 소주인가... 쫄병으로서 악기 든 소주마심이 아닌 진심으로 마시고 싶은 마음이었다.


쿨내 진동하게 완샷을 때리니 고참은 악기있디! 고 칭찬을 해주셨고 다시 한잔 가득 하사를 하시었다.


두번째 잔도 순식간에 들이키니 온몸이 짜릿짜릿한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 때 중대장이 나를 찾았다.


"야 우리 중대 맨 바닥이 누구냐?"
"네 6내무실 김동훈 해병 입니다"
"어이 김동훈이 니와봐!"
"이병 김동훈 (존나 악기있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방독면 이구만 ㅎㅎㅎ 노래 하나 해봐라"
"네 노래 하겠습니다."


무슨 노래를 했는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서 노래를 부르고 시키지도 않은 율동까지 했다.


중대장은 아주 흡족해했다. '아 저새끼 물건이라며 잘 보관해라 ㅎㅎ' 하며 또 칭찬을 해 주셨다.


그렇게 중대 원들이 여러병의 소주 PT를 까고 중대장의 일장 훈시를 듣고 난 후 각자 배치된 A텐트에 돌아와서 취침순검 자세를 잡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빗방울이 약하게 내리더니 순검이 끝날 때 쯤 거의 폭우로 변해 있었다.


'아 비가 이렇게 내리니 부르지는 않겠지?' 약간의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바짝 긴장하며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 까 온몸에 한기가 들어 깨어보니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 물이 스며 들어 내가 누운 자리는 질퍽하게 변해 있었다.


야상을 입고 잔 등어리는 비에 다 젖고 하의도 흠뻑 젖었다.


온몸이 떨어오기 시작했지만 버티는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 비 때문에인지 선임들은 밤새 나를 부르지 않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위로 해서 상병 몇 호봉까지 그 비에 줄빠따 를 맞았다고 했는데 나를 부르지 않은 이유는 중대장 앞에서의 노래와 율동이 기특해서 특별 인계사항이 내려왔다고 한다.


"오늘 밤은 앗세이 건들지 마라. 지주핀 넣은 새끼 찾아서 기합잡아라"


새벽녘에 깨서 젖은 몸뚱아리 젖은 침낭 부여잡고 턱이 딱딱 소리나도록 떨었지만 구타가 난무하지 않은 온전한 밤이었음을 감사했다.


대대병력이 총 기상하여 조별과업으로 인원점검을 받고 조식은 고체연료를 이용하여 직접 지어먹도록 했다.


중대별로 할당된 컵라면과 쌀,그 외 반찬 몇가지를 받아 구덩이를 파고 반합에 쌀을 넣고 밥을 지어 먹었다.


훈단때 개별취사를 해봤지만 실무에서 노련한 고참병들이 짓는 밥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쌀은 질 낮은 정부미 였지만 반합에 잘 지어진 밥은 나름 윤기가 흘렀고 이것저것 다 때려 넣어 고추장과 참기름을 살짝 두른 뒤 마구 비벼먹으니 꿀맛이었다. 


쫄병은 뭐든 입에 넣을 때 악기있게 넣고 씹어야 한다. 과자를 먹을 때도 입 천정이 다 까져도 입이 터져나갈때까지 쑤셔 넣고 씹어 먹어야 한다.


쫄병이 과자 하나하나를 들어 입에 넣다가는 바로 입안이 터지도록 아구창이 돌아간다.


처음엔 맛있어서 먹지만 나중에는 맞지 않으려고 쑤셔 넣는다.  얼마전에 이런 행동이 해병대의 가혹행위라고 언론에 보도된 바 있지만 참으로 비인간적이긴 해도 그때는 "해병대 니까. 우리는 땅개와 다른 해병대니까" 하는 악이 있었고 깡이 있었다.


심지어는 구타가 난무해도 "해병대니까" 하나로 맘을 다 잡곤 했다.


**이 글은 기억을 되 짚어서 쓰는 글이 아닙니다. 

    군생활 하면서 고달픈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매일 선임들의 눈을 피해 일기를 적었습니다.
    상병 중고참이 되서 대 놓고 쓰기 전 까지는 나 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기억할 수 있도록 야간 근무때와 화장실에서 작은 수첩에 날짜와 단어라도 기록을 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옮겨 적는 것이 수월했습니다.


    (ex: 94.11.24일 맑았다 비. 첫 1박2일 행군,무장무거움,방독면지주핀,a텐트 전투복 다 젖음,비 존나옴,반합밥 맛있음,중대장님 앞 노래, 악기,안맞음,줄빠따)


    실화냐? 라고 물어 보는 후임도 있는데 94년의 해병 이병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후임들은 댓글 쓰기 전에 경례 때리기 바랍니다. 제대 하고 뭔 경례? 생각이 들거든 읽지 않거나 조용히 읽길 권합니다)


    물론 저 보다 더 선배들의 군 생활은 말도 못하게 힘들 었을 것이구요.  그리고 장비를 다루는 부대는 기합이 더 쌥니다.


    사고가 나면 최소 중상이나 사망이기 때문이지요.
   
    다행이도 군생활 하면서 한명의 선임도 한명의 후임도 잃지 않고 무탈하게 생활하다 제대 하였지만 제 동기들은 선임의 자살 후임의 탈영, 사고사 등 못 볼 것들을 많이 봤다고 합니다.  전 그래도 그런 험한꼴은 보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만약 이 글을 현역에 있는 후배가 읽는 다면 과거의 해병대를 지금의 현실에 갖다 부치면 바로 영창 가니
    절대 따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