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하늘의 짐꾼’ 수송기, 재난현장에서 더 빛난다
공군 C-130H 수송기가 야간비행을 위해 이륙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영공을 수호하는 공군 항공기는 언제 어디서나 국민들에게 높은 관심을 받는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 T-50B나 스텔스 전투기 F-35A는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만 해도 스포트라이트가 쏠린다.
세간의 관심을 받지는 못하지만 물자 및 인력 수송과 공중 침투, 재난 구조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공군 항공기가 있다. ‘하늘의 짐꾼’이라 불리는 수송기다. 1920년대 유럽에서 등장한 민간 여객기를 군사용으로 개조하면서 시작된 수송기 운용은 6.25 전쟁과 중동전쟁 등을 거치면서 만능 해결사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냉전 종식 이후 재난 구호와 자국민 후송 등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이 증가하면서 수송기들도 바빠지는 추세다.
◆코로나 국면서 주목받는 수송기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 곳곳으로 번지면서 각국은 자국민 철수와 의료물자 공급을 위해 수송기를 동원하고 있다.
정부는 18일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한 우리 국민과 일본인 배우자를 국내로 이송하기 위해 일본으로 수송기를 보냈다. 투입된 수송기는 공군 3호기인 VCN-235다. 정부 주요 인사들(VIP)이 이용한다는 의미로 CN-235 앞에 영문 알파벳 V를 붙였다.
VCS-235 정부 전용기가 18일 일본 크루즈선에 탑승한 우리 국민을 국내로 이송하기 위해 이륙하고 있다. 공군 제공
스페인 카사(CASA·현 에어버스)와 인도네시아 IPTN이 공동개발해 1986년 시험비행한 CN-235는 소음 문제로 탑승할 때 귀마개가 필요한 다른 수송기와 달리 비행 중에도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고, 여객기 수준의 편의시설과 연비를 갖췄다.
공군은 1994년 스페인에서 12대, 2002년 인도네시아에서 8대를 도입했다. 정부 수송기로 두 대가 운용 중인 VCN-235는 CN-235에 귀빈용 좌석을 설치, 최대 22명을 태우고 3500㎞를 비행한다. 처음에는 대통령 전용기라는 의미로 공군 3·5호기로 불렸지만 2008년 3월부터 국무총리와 장관들도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정부 전용기로 바뀌었다.
중국은 의료진과 물자를 실은 수송기 11대를 13일 우한으로 보냈으며 17일에도 8대를 투입했다. 중국 공군은 코로나19가 발생한 직후 네 차례에 걸쳐 수송기 30대를 동원해 의료진과 물자를 우한에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자체 개발한 Y-20 수송기도 등장했다. 중국이 개발한 Y-20이 비(非)군사적 작전에 동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3년 1월 시험비행에 성공해 2016년 7월부터 납품된 Y-20은 66t의 물자를 싣고 7800㎞를 날아갈 수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개발을 진행했으나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당시 공중수송능력 부족으로 중국군이 대규모 구호 및 인도적 지원 소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개발이 가속화됐다. 미국 C-17과 유사한 외형이나 러시아 IL-76MD과 우크라이나 AN-70 수송기 기술이 일부 적용됐다.
중국 공군 Y-20 수송기가 활주로에 착륙하기 위해 하강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략수송기 역할을 맡게 된 Y-20은 향후 중국군의 공중수송능력을 한층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Y-20을 우한에 투입한 것은 자국산 군용기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2013년 쓰촨성 지진 구호 당시 중국은 자국산 헬기나 수송기 대신 1980년대 도입한 미국산 블랙호크나 러시아제 MI-17 헬기, IL-76 수송기를 투입했다. 중국 공군은 구조 작업을 위해 자국산 헬기를 보냈으나 수송 용량의 한계 등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러시아는 지난 5일 IL-76MD 수송기로 중국 후베이성에 머물던 자국민과 옛 소련권 국가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옛 소련권 국가에서 1970년대부터 널리 쓰이는 IL-76MD는 최대 60t의 물자를 싣고 비포장도로에서 이착륙이 가능할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우한에 수송기 보냈어야” VS “전세기도 충분”
정부는 지난달 31일과 지난 1일 두 차례에 걸쳐 전세기를 띄워 700여명의 교민을 데리고 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제적인 재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 전세기 대신 C-130 수송기나 KC-330 공중급유기를 보냈어야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유럽 에어버스가 A330 여객기를 공중급유기로 개조한 KC-330은 300여명의 병력과 45t의 화물을 싣고 1만4800㎞를 비행할 수 있다. 중국 우한과 인천국제공항 왕복 비행이 가능하다.
공군 KC-330 공중급유기가 성능점검을 위해 비행을 하고 있다. 공군 제공
2008년 5월 쓰촨성 지진 당시 C-130 수송기 3대가 3억8000만원 상당의 구호품을 싣고 청두공항으로 날아간 적이 있다. 2018년 10월 태풍 피해를 입은 사이판과 지진이 발생한 인도네시아에 공군 C-130 수송기가 투입된 전례가 있다.
정부는 C-130을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활동에도 쓰고 있다. 2018년 6월 13일 KDRT 참여 기관인 외교부, 국방부(공군), 보건복지부,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 한국국제협력단, 국립중앙의료원,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은 해외재난 발생 시 C-130을 활용한 해외긴급구호대 파견에 대비, 구호 인력 및 물품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수송에 필요한 훈련을 실시했다.
119 구조대원과 공군 장병들이 C-130H 수송기에 적재할 물자를 포장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당시 외교부는 보도자료에서 “2016년 ‘정부 해외재난 긴급구호 관련 군 수송기 임무 실무매뉴얼’ 작성 이후 처음으로 훈련을 실시했다”며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외긴급구호대 인력 및 장비를 수송하기 위해 중국, 몽골 등 아시아 15개국 긴급구호 시 군 수송기를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군용기 투입을 위한 준비는 어느 정도 이뤄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 ‘묻지마’식 군용기 투입은 자제해야 한다는 반론도 많다. 일반적으로 수송기는 공항 시설이 파괴돼 민간 여객기 접근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투입된다. 공항 기능이 정상적으로 가동된다면 수송기 투입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31일 오전 중국 우한시와 인근 지역에 고립돼 있는 우리 국민들이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해 전세기에서 내리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군용기의 영공통과는 정치적, 외교적으로 예민한 사안이다. 긴급 재난 상황이라고 해서 군용기가 영공을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간 신뢰가 충분한 수준으로 구축되어 있지 않으면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간 논의가 지연되거나 불필요한 외교 마찰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조종사와 승무원의 출입국 심사(CIQ) 등 행정적 절차도 통과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세기보다 비행허가 등이 더 까다로울 수 있다. 군용기 투입의 큰 장점인 소요시간 단축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사례처럼 귀환 인원이 적거나 비행거리가 짧으면 수송기 활용이 가능하지만, 수백명을 한번에 이송한다면 전세기도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군 소식통은 “재난 상황에서 군용기나 전세기 투입에 대한 대책을 미리 마련해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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