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미사일 쏘고 700명 최고인민회의···청개구리 北, 왜
김정은 군사행보…“경제 피폐에 내부 동요 차단”
트럼프 친서 공개로 북·미 정상 관계 과시도
하지만 방점은 美 변화 요구하며 정면돌파전 강행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전술유도무기 시범사격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연합뉴스]
[중앙일보] 백민정 기자 = 북한이 21일 평안북도 선천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두 차례 발사한 데 이어 오는 4월 10일 우리의 정기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한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은 22일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명의의 대미 담화를 내고 “공정성과 균형이 보장되지 않고 일방적이며 과욕적인 생각을 거두지 않는다면 두 나라의 관계는 계속 악화일로에로 줄달음치게 될 것”이라고 미국을 압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속에 거의 모든 국가가 방역에 전념 중인 와중에 북한의 행보는 비정상적이다. 지난 2일과 9일 ‘초대형 방사포’를 쏜 데 이어 올해 세 번째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는가 하면, 평양에 수백 명이 운집하는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예고했다.
김여정의 담화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좋은 관계를 과시하긴 했지만, 방점은 ‘미국의 태도 변화없이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데 있다.
이같은 북한의 청개구리 행보는 코로나19 사태와 아랑곳없이 지난해 말 천명한 ‘정면돌파전’을 계속 가겠다는 입장 표명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한 달간 군사 행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전술유도무기 시범사격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8일부터 한 달 가까이 동해안 일대와 서부전선을 종횡무진하며 군사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이달 2일과 9일 원산과 함경남도에서 ‘초대형 방사포’ 발사를 참관했고, 12일엔 함경남북도를 관할하는 포병부대들의 포사격대항경기를 지도했다.
이어 20일엔 서부전선으로 이동해 이 지역 연합부대들의 포사격대항경기를 지도한 뒤, 21일 평북 선천 일대에서 전술유도무기 시범사격을 참관했다. 군 당국은 이 전술유도무기를 북한이 지난해 8월 발사한 적 있는 전술지대지미사일인 북한판 ‘에이태큼스(ATACMS)’로 추정하고 있다.
통상 북한이 3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맞서 동계훈련을 하지만, 이번 김 위원장의 군사 행보는 이례적으로 길어졌다는 평가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각국이 군사훈련을 중단·축소하는 것과도 정반대다.
이에 대해 김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사태로 북한이 경제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보니 군사력 강화를 통해 내부결속을 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지난해 북·미 비핵화 협상 실패 속에 연말 당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으로 버티겠다는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중국·러시아의 원조에 기대 미국의 대북 제재를 견디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발병으로 북한은 1월 말부터 국경을 봉쇄, 경제적으로 고립돼 있다.
김 책임연구위원은 “자력갱생은 주민들을 쥐어짜야 하는데 코로나 사태로 주민들 불만이 커지고 있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은 현재 내부 동요를 가장 두려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전선 장거리포병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또다시 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10일 보도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가 보도한 김 위원장의 훈련 지도 모습. 박정천 군 총창모장만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 눈에 띈다.[연합뉴스]
이에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군사적 도발을 지속하고, 고위층 간부 처벌을 통해 내부 기강을 다잡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달 초 당 핵심간부인 이만건 조직지도부장을 전격 해임하는 등 간부 일벌백계도 이어지고 있다.
김여정 담화도 대미 압박에 방점
22일 나온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도 대북 적대시 정책 전환을 요구한 기존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조미(북미) 두 나라 관계를 추동하기 위한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고 코로나19 방역 부문에서 협조할 의향을 표시했다”고 밝혔지만,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수뇌들 사이의 친서가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 역학적·도덕적으로 평형이 유지되고 공정성이 보장돼야 두 나라 간 대화도 생각해볼 수 있을것”, “두 나라 관계가 좋아질 날을 소원해보지만 가능할지는 시간에 맡겨두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며 북미 대화에 있어 ‘장기전’을 시사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23일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친서를 읽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김여정 담화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보다 공정성과 균형의 보장을 ‘행동’으로 보여달라는 메시지”라며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즉 한미군사훈련, 전략무기 한반도 전개, 제재 고수 등이 바뀌지 않는 한 미국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이라고 해석했다.
전날 김 위원장의 군사 행보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이 지난해 말 전원회의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국가안전을 위해 전술무기개발을 줄기차게 진행해 나가겠다’고 한 선언을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밀고나가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코로나 심각한데 평양에 수백 명 모이는 최고인민회의 연다는 北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 회의를 4월 10일 평양에서 열겠다는 것도 코로나 사태와 상관없이 우리 국회 격의 정기회의를 개최해 국가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전국 선거구에서 선출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687명으로, 내달 평양 한복판에서 700명 가까운 인원이 모이게 되는 셈이다.
이런 최고인민회의 강행을 두고 북한이 선제적 봉쇄정책을 펴 코로나 상황이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게 아니라면, 최고인민회의 규모를 축소해 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 등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낼지도 관심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북한 경제도 휘청이는 만큼 김 위원장이 대내 결속을 강조할 거란 전망이 많다.
지난해 4월 11일 북한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사진은 조선중앙TV가 12일 오후 공개한 영상에 나온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왼쪽 붉은 원)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오른쪽 붉은 원)의 모습. [연합뉴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중앙일보] 202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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