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초대사령관 신현준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1) 조선해안경비대에 입대

머린코341(mc341) 2014. 7. 2. 17:20

 

老海兵의 回顧錄 - 4. 해병대 창설과 초창기

 

(1) 조선해안경비대에 입대

 

  나는 1946년 5월 10일 귀국한 뒤 만주군 시절 봉천군관학교 제5기 동창생이었던 정일권(丁一權) 대위를 찾아 갔다. 당시 정 대위는 태릉(泰陵)에 위치한 남조선 경비사관학교(南朝鮮警備士官學校:육군사관학교의 前身)에 재직중이었다.

 

  한편, 같은 만주군 출신으로 후배였던 백선엽(白善燁) 중위는 부산에서 현지 부대 근무를 하고 있었다. 정 대위와 백 중위는 나보다 한 걸음 앞서 귀국하였으므로 국내 사정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합심 협력하여 해방된 조국의 국군(國軍)을 조직 편성하는 일, 즉 창군(創軍)의 과업을 위해 헌신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찾아 가자 반갑게 맞이한 정 대위는, "이제는 해방도 되었으니, 신 형(兄)은 앞으로의 인생 진로에 대해 좀 방향을 바꿔 볼 생각이 없소? 우리 동기생 가운데 김석범(金錫範)이 지금 진해(鎭海)에 내려가 있는데 그쪽으로 한 번 가보도록 하지요."라고 권유하였다. 이어서 그는, "지금 국방경비대(國防警備隊:육군의前身) 쪽은 이미 만원 상태랍니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정 대위의 친절한 권유에 감사한 뒤, 곧바로 진해에 있는 조선해안경비대(朝鮮海岸警備隊) 총사령부를 찾아 갔는데, 그날이 1946년 6월 22일이었다.

 

  대한민국 해군(海軍)의 모체(母體)이자 전신(前身)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해안경비대는 7개월 전인 1945년 11월 11일 서울에서 창설되었는데, 총사령관은 손원일(孫元一) 소령이었다.

 

  나는 총사령부에서 먼저 손원일 소령에게 인사를 드린 다음, 인사국장(人事局長)인 간도특설대(間島特設隊) 출신의 김대식(金大植) 소위를 만나 입대 절차를 마쳤다.

 

  나는 비록 만주군에서의 군 경력이 있었으나, 입대와 동시에 임관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선 견습사관(見習士官)이라는 신분으로 기관(機關) 제2분대(分隊)에 소속되어 대기하게 되었다.

 

  그 뒤 나는 봉천군관학교 시절의 동기생인 김석범 견습사관과도 만나서, 그간에 쌓였던 지나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처 : 예비역 해병중장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