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8. 인천으로의 이동명령 (2) C埠頭

머린코341(mc341) 2014. 8. 1. 15:10

국방의 멍에 - 8. 인천으로의 이동명령

 

(2) C埠頭

 

  LST 단양호에서 병력을 하선시키기 시작했던 시각은 간조(干潮)시인 25일 아침 8시경이었다. 그때 나는 국회의원들 일행에게 군복을 제공하여 군속들처럼 군복을 걸치고 하선을 하도록 했다.

 

  모선(LST 단양호)으로부터 상륙주정(LCVP나 LCM) 등의 작은 주정에 옮겨 탄 대원들은 간조시에 한해 이용되고 있는 물골(인공수로)을 따라 인천항의 C부두로 향했다.

 

  너비가 5미터 내지 10미터 정도가 되고 절벽 같은 뻘투성이의 물골 양쪽벽(壁)과 그 물골 수면과의 거리(높이)가 3~4미터 정도되는 몰골은 인천항의 C부두와 연결되어 있었고, 20~30평 규모의 C부두는 만조시에는 해면 위로 부상하고, 간조 시에는 물골 양벽(兩壁)의 뻘 위로 주저앉게 돼 있었다.

 

  날이 밝은 후 물골은 해상에 정박해 있는 덩치가 큰 수송션에서 하역된 군수물자들을 실어 나르는 작은 주정들이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마치 주말의 고속도로처럼 붐비고 있었다.

 

  내가 소 주정에 옮겨 타고 월미도(△105) 옆을 지나갈 때 목격했던 것은 빨갛게 탄 월미도의 모습이었다. 인천항의 관문이며, 인천항으로 접근하는 모든 접근로를 지배하는 월미도는 9월 15일 아침 6시 미 해병5연대 3대대에 의해 제일 먼저 점령이 된 격전지였다. 그 섬이 초토화(焦土化)가 되어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많은 포탄이 집중되었기 때문이었다. 해병들이 C부두에 집결 완료한 시각은 그날 오전 10시경이었다.

 

  인천항 부두의 하역장에는 미 해병대의 보급물자가 산적이 되어 있었다. 대원들은 현장에 있던 미 해병대의 보급관이 제공해 준 깡통과 담배와 껌, 휴지, 쿠키(과자) 등이 들어 있는 작은 레이션박스 한 통 씩을 받아 들고 그 길로 미 해병에서 지원해 준 50~60대의 트럭에 분승하여 이동해 갈 목적지로 향했다. 그때 행선지가 남양주군의 금곡(金谷)이라고 했던 임흥순 국방위원만은 나와 함께 떠나고, 나머지 의원들은 서울이 탈환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인천에서 작별을 고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