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8. 인천으로의 이동명령
(1) 불야성의 인천 앞바다
9월 23일 오전 11시 30분경 통영 부두를 떠난 LST 단양호가 목포(木浦)를 거쳐 서산(舒山)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그날이 음력으로 8월 며칠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보름달과 같은 크고 둥근 달이 수평선 위로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그 달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오늘이 추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잠시나마 고향생각에 잠겼다.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그 누리 속에 유난히 크고 밝은 그 달이 중천높이 떠올랐을 때 LST의 갑판 위에는 중대장들과 국회의원들이 올라와서 나와 함께 전쟁에 얽힌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전쟁기간 중에 겪었던 체험담도 나누었고, 라디오와 신문지상에 보도된 인천상륙작전에 관한 고무적인 전황 얘기도 했다. 그러한 얘기를 나눌 때 나는 6·25동란이 발발한 후 유엔군과 국군이 수행해 왔던 그 지연작전기를 반격작전기로 전환시킨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에 9월초 부산항 부두에 집결해 있던 우리 해병대의 3개 대대 병력이 미 해병 제1사단과 함께 상륙선봉군으로 참가하여 온 세계에 그 용맹을 떨친데 대해 말할 수 없는 긍지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고, 또 우리부대가 조금이라고 더 빨리 인천으로 가서 목하 서울로 진격 중에 있을 한·미 해병대의 상륙군 선봉부대와 합류하여 수도랄환작전에 참가해야 할델데 ‥‥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생각이 거기에 미치고 있던 나의 가습은 한없이 설레이고 있었다.
LST 단양호가 인천 앞바다에 당도한 시각은 25일 새벽 2시경이었다.
한데, 인천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불야성(不夜城)의 도시를 이루고 있는 휘황찬란한 불빛이었다. 불빛들은 각종 함정에 켜져 있는 울긋불긋한 네온의 불빛이었는데, 불빛들이 넓은 해면에 반사되어 그토록 휘황찬란한 광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온 바다가 요란한 네온의 불빛으로 수놓인 듯했던 환상적인 야경을 처음 목격했을 때 나는, 이곳이 혹 인천 앞바다가 아니라 일본의 동경만이나 요꼬하마의 미 해군기지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기까지 했었다.
그 당시 인천항에는 인천상륙작전 때 병력과 장비 및 군수물자 등을 싣고 왔던 수많은 수송함선 중의 일부가 그때까지 해상에 정박하여 군수물자를 하역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유엔군이 제공권과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LST 단양호가 휘황찬란한 불빛을 누비며 닻을 내릴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때 나의 기분은 전쟁을 하러 가는 사람의 기분이 아니라 마치 환상적인 밤의 수도(水都)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기도 했다. LS T 단양호가 닻을 내린 곳은 월미도(月尾島)로부터 약 3킬로쯤 떨어진 해상이었다.
그때 팔미도(八尾島) 앞에 덩치가 유난히도 큰 성과 같은 배 한 척이 울긋불긋한 네온 불빛에 휩싸여 있는 것이 목격되었는데, 갑자기 거대한 배에서 고막이 떨어질 것만 같은 굉음과 함께 무서운 섬광이 번쩍이는 것을 목격했던 나는 그 거함이 곧 라디오 방송을 통해 크게 보도된 바 있던 전함 '미조리'호란 것을 쉬이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 후에 귀담은 얘기지만 16인치포를 장착한 전함 미조리호의 승무원들은 귀마개를 하지 않을 경우 창자가 터져 나을 것 같은 충격을 받게 된다고 하는 무서운 굉음의 압력으로부터 고막을 보호하기 위해 포탄을 발사할 시엔 반드시 귀마개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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