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9. 首都奪還 作戰 (2) 捕虜 豊年

머린코341(mc341) 2014. 8. 2. 14:35

국방의 멍에 - 9. 首都奪還 作戰

 

(2) 捕虜 豊年

 

  그날 한·미 해병대에 의해 점령되었던 서울 시가지에는 '포로풍년'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많은 포로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착검한 해병들에 의해 도보로 연행되어 가고 있는 자들도 있었고, 차량에 실려 어디론가 압송되고 있는 무리들도 있었다.

 

  그런데 도보로 연행되고 있는 포로들 중 미국 해병들이 사로잡은 포로와 한국 해병들에 의해 사로잡힌 포로는 쉽게 구분이 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미국 해병들에 의해 끌려가고 있는 포로들은 모두가 팬티만 걸치고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깍지 끼고 있는 자세였고, 한국 해병들이 끌고가고 있는 포로들은 물론 검색은 했겠지만 아래 위의 옷을 그대로 입고 두 팔을 머리 위로 치켜 들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포로들을 눈여겨 보고 있던 나는 전쟁경험이 많은 미국 해병들의 포로 검색과 연행방법이 보다 철저한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또한 미국 해병들이 소탕전을 벌였던 시가지의 건물에는 성조기가 걸려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 건물에 대한 소탕전을 완료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긴 막대기에 성조기를 비끌어 매어 눈에 잘 띄는 건물 2층 창문 밖으로 내밀어 놓은 그 성조기들을 보면서도 역시 배워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미국 해병들 중에는 전투는 하지 않고 카메라만 가지고 다니면서 보병들이 싸우고 있는 생생한 장면과 전쟁터에서 빚어지고 있는 특별한 광경을 적고 있는 대원들이 있었다. 그러한 대원들을 보며 미국 해병대에서는 전쟁을 하는 일 못지 않게 기록을 남기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후에 알아본 바에 따르면 미 해병 제1사단 통신대대에는 1개 촬영중대가 편성되어 있어 그 촬영중대의 요원들이 전투 시 최전방에서 생생한 전투기록을 촬영하여 그 필름을 정리과정을 거쳐 미 국무성의 전쟁자료실로 보낸다고 했다.

 

  27일 오후 3시경 해병대의 지휘소가 한성중학교(서대문구)로 전진(轉進)해 있을 때 수색에 있을 때도 한 두 차례 다녀갔던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이 찾아와서 작전현황도 청취하고 사령관과 참모들의 노고도 위로했다.

 

  그리고 때마침 손 총장이 지휘소에 머물러 있는 동안 여류시인 모윤숙(毛允淑) 여사가 누군가의 안내로 그곳을 찾아와선 손 총장과 감격적인 기쁨을 나누었는데, 남루한 피난민 행색을 하고 있던 그 모윤숙 여사는 손 총장을 보자 "에드미럴 손! 서울이 탈환되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하며 눈물을 글썽이다가 피난길에서 겪었던 쓰라린 고생담을 눈물을 흘리며 꺼내고 있었다.

 

  한성중학교에서 나는 또한, 6·25동란 후 행방을 알지 못하고 있던 장교 한 사람을 만났다. 6·25동란 전 육군보병학교(초등군사반)에 입교해 있다가 전쟁이 터진 후 실종상태에 있던 김낙천(金洛泉) 소위가 곧 그였다.

 

  당시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던 김 소위는 전쟁이 일어난 바로 그날(일요일) 아침 심한 복통을 앓게 되어 회현동에 있는 해군본부 의무실을 찾아갔다가 급성 맹장염이란 진단을 받고 서울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28일 새벽녘 서울이 점령을 당하는 바람에 서울대학병원으로 갈 때부터 그를 도왔던 차일남(車一男) 해병(해군본부 위병분대 소속)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미처 수술한 상처가 아물기도'전에 병원을 빠져 나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26일 아침 서울역 전투를 마친 2대대 5중대가 남대문 쪽으로 진출하고 있을 때 숨어 있던 은신처로부터 뛰쳐 나오게 됨으로써 전우들과의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해병대 사령부가 위치하고 있던 한성중학교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 우물 속에는 인민군들이 학살한 민간인들의 시체로 매워졌다 시피하여 그 참상을 목격한 외국 기자들과 미군 장성들도 공산당의 만행에 치를 떨고 있었다. 그와 같은 시체는 서울 시가지의 도처에서 목격이 되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