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회중앙회 총재 연임한 제24대 사령관 김명환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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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대 사령관 중장 김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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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임기간 1999.10.18 ∼ 2001.10.11
- 생년월일 1946년 1월 30일
- 출 생 지 서울
- 학 력
- 1968 해군사관학교 졸업(22기)
- 1979 육군대학 수료
- 1981 미 해병학교 상륙전 고군반 수료
- 1987 국방대학원 수료
- 1979 육군대학 수료
- 경 력
- 1968 해병소위 임관
- 1969 2여단 5대대 27중대 5소대장(월남전 참전)
- 1973 1사단 31대대 2중대장
- 1983 1사단 71대대장
- 1987 한미연합사 작전계획처장
- 1989 해병대 연평부대장
- 1994 해병대 6여단장
- 1996 해병대 2사단장
- 1997 합참 전비태세 검열실장
- 1999 제24대 해병대 사령관
- 2001 해병중장 예편
- 1969 2여단 5대대 27중대 5소대장(월남전 참전)
- 상 훈
- 1969 인헌 무궁훈장
- 1983 화랑 무공훈장
- 1989 대통령 표창
- 1995 보국훈장 천수장
- 2000 보국훈장 국선장
- 2001 미정부공로훈장(The legion of merit)
- 1983 화랑 무공훈장
서울출신(1946년생)으로 양정고등학교를 거쳐 64년 3월 해군사관학교 22기로 입교하여 68년 3월 해병소위로 임관했던 김명환 장군은 2여단 5대대 27중대의 제5소대장으로 근무 중에 있던 69년 월남전선으로 출동, 동 소대의 소대장으로서 5대대가 수행한 여러 작전에서 소대장의 직책을 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인헌무공훈장과 월남정부 은성훈장을 받은 영예를 누렸으며, 특히 1사단 71대대장 근무기간 중인 83년 8월 3일 01시 월성지구의 해안방어선을 침투한 5명의 무장간첩을 조기에 발견함으로써 교전 끝에 1명을 사살하고 1명의 부상자와 함께 도주한 2명은 아군의 포위망 속에서 전원 자폭한 전과로 월남전 이래 세 번째의 무공훈장인 화랑무공훈장을 타는 행운의 지휘관이 되었다.
그리고 그 후 한미연합사 작전계획차장, 연평부대장을 거쳐 준장으로 승진했던 김명환 장군은 94년 6여단장, 96년 2사단장, 97년 합참전비태세 검열실장을 거쳐 마침내 99년 10월 19일 부로 제24대 사령관으로 취임하는 영광을 누렸으며, 재임기간 중 특히 김명환 사령관은 미 해병대에서 2003년부터 주관해 왔던 환태평양 해병대사령관 회의(미국 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5개국 해병대 사령관의 모임) 참가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제6차 회의를 한국해병대 사령부에서 주관함으로써 모군의 위상을 제고하고 한국의 발전상도 시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했다고 하는데, 3박 3일간의 일정으로 개최된 그 회의기간 중 김명환 사령관은 그 귀빈들을 신라호텔에서 투숙하도록 융숭한 대접을 했고, 또한 삼성전자를 시찰할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선진화된 산업의 현주소를 견학하도록 역할도 수행했다고 한다.
또한 재임기간 중 김명환 사령관은 타군에도 있는 여군 장교의 필요성에 대한 정책적인 판단을 한 끝에 이를 국방부에 건의하여 승인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데 매년 해병대 사령부에서 공모하여(자격요건은 사상과 신체가 강건한 미혼 대졸자) 포항 교육단에서 14주 교육을 받은 후에 소위로 임관시킨 그 7명의 여군 장교들은 현재 대위의 계급으로 사령부를 비롯한 여러 부대의 행정장교로 근무 중이며, 또한 그 후 매년 7명씩 모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재임기간 중 모군의 전력강화와 발전을 위해 성력을 다해 기여했던 김명환 사령관은 2001년 10월 11일 그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는데, 특히 퇴임한 해인 2001년 두 번째의 보국훈장(국선장)과 미국 정부의 공로훈장을 받았다.
전우회 총재로서 남긴 업적
제24대 사령관을 역임하고 퇴임했던 김명환 장군은 2004년 11월 5일부터 4년간 임기 2년의 해병대전우회 중앙회 총재직을 1회 연임하는 가운데 전우회의 조직 강화와 발전을 위해 괄목할 만큼의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김명환 총재와 강신길 사무총장을 비롯한 새로운 임직원들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여 진군하려고 하는 김 총재를 중심으로 굳게 뭉쳐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함으로써 그와 같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김명환 총재가 남긴 업적 중에서도 가장 큰 업적을 손꼽는다면 해병대전우회중앙회를 국가 기관으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는 사단법인체로 등록하여 국가 안보의 수호를 위해 적극 기여했던 일이며, 이 이슈를 해결함으로써 전우회 중앙회는 부차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던 예산과 관련된 지원도 받게 되었으니 현명한 정책의 구현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미 알려지고 있는 바와 같이 그 사단법인체는 행정자치부의 소방방재청과 유관한 법인체이다. 한편 김명화 총재의 재임기간 중 특히 인천 상륙작전 55주년 기념일인 2005년 9월 15일부터 3개월 간 전우회 중앙회에서는 맥아더 동상의 수호를 위해 전국 시도연합회로 하여금 2박 3일간씩 교대로 투입하는 사상 유례없는 홍역을 치렀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연합사의 전시 작전 통제권의 환수를 일방적으로 밀어 붙임으로써 한미동맹과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했던 2006년과 북방한계선(NLL) 문제로 불안을 증폭시켰던 2007년 등 우리들의 기억 속에 지워질 수 없는 3년 간 해병대 전우회는 국가 안보의 수호를 위해 때로는 보수단체들과 연대하여 투쟁을 했고, 때로는 전국 시도 연합회가 동참한 중앙회 단독으로 세인이 주시하는 가운데 언젠가는 서울시청 앞 잔디밭 광장에서 언젠가는 서울역전 광장에서 궐기대회를 개최함으로써 국민들의 마음속에 해병대 전우회에 대한 강한 이미지를 심어 주었었다.
그리고 금년 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에 일어났던 그 불법폭력 시위 현장에도 김명환 총재가 이끄는 해병대 전우회는 법을 수호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던 것을 우리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김명환 총재가 전우회의 조직 강화와 전우회의 발전을 위해 남긴 또 다른 주요업적은 모군의 창설기념일인 4월 15일을 상징하는 1.5(일오) 봉사의 날을 정해 각 시도연합회 별로 국민 생활 현장에서 각종 봉사활동을 전개토록 했던 일과 각 시도연합회(16대)의 순회 간담회 개최 및 전우회 회원증 발급과 회원 명부 발간 해외전우회의 방문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며, 특히 2006년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는 전우회 중앙회 창립 후 처음으로 해외지원 봉사단(단장 강신길 사무총장을 포함한 11명)을 현지(반다이체지방)로 급파하여 10일간 재난 구조 활동과 방역 봉사활동을 하는 실적을 남겼다.
그리고 그 해외지원 활동은 3천만원의 성금을 선뜻 지원한 당시의 해병기독교인 선교회 이명복 회장(전우회 자문위원)과 (주)단해 엄주섭 회장(전우회 자문위원)의 재정적인 뒷받침 하에 이루어졌고, 또한 당시의 해병기독군인선교회 사무총장 황문식씨의 말에 따르면 그 봉사단을 파송할 때 구 해병대 사령부(용산)에 소재하는 해병대의 초대교회에서는 김성은 전 장관과 김명환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파송예배를 보았다고 하니 모두가 감동적인 화제로 기억될 것이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 3 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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