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멍에 - 20. 國防部長官 時節
(5) 1차 파병
진해별장에서 거론된 파병과 관련된 일화는 이것으로 끝이 나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박 의장의 지시에 따라 일단 미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 대비한 기초적인 대책을 세워 박 의장에게 보고하는 등 바로 그 무렵부터 적극적인 관심을 집증시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 이듬해 1964년 5월 9일, 그러니까 1963년 12월 17일 민정으로 이양된 박 대통령의 제3공화국 정부가 출범한 지 약 5개월이 지난 뒤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로부터 1개 이동외과병원을 파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그러한 요청을 받은 나는 드디어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5·16 군사정변 이후 계속 압력을 가해 오고 있던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한국 정부에 아쉬운 소리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쉬운 요청은 단 한 차례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효시가 되어 마치 지면에 박히는 말뚝의 원리처럼 큰 힘으로 작용될 때까지 계속 되풀이 될 것이란 생각도 했다.
미국 정부로부터 그런 요청을 받게 되자 나는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합동참모본부로 하여금 이동외과병원의 파견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그리고 외무부에서는 신상철(申尙澈) 주월대사로 하여금 정부의 결정사항을 월남 정부에 통고하고 월남 정부에서 파병을 요청하면 이동외과병원을 파월하겠다는 정부의 뜻을 전하게 했다.
외무부에서 그러한 절차를 밟게 된 까닭은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파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침략전쟁을 겪고 있는 월남 공화국 정부의 요청을 받은 한국 정부의 자주적인 판단과 결정에 따라 보내게 된다는 명분론적인 근거를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에 그러한 근거없이 파병을 할 경우 우리가 북한 정권을 공산 종주국인 소련과 중공의 괴뢰라고 일컫고 있었듯이 우리를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 또는 괴뢰하고 일컫고 있는 북괴로부터 무슨 혹독한 욕설을 듣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트란 반 후웅 월남 수상 명의로 된 월남 공화국 정부의 파병요청 공한이 주월 한국 대사관을 거쳐 외무부에 도착한 날짜는 7월 15일이었다.
그 공한이 도착하자 정부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했고, 그 안건을 접수한 국방위원회에서는 7월 28일에는 상임위원회, 30일에는 외무위원회와의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대정부질의를 거쳐 "공산 침략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는 월남공화국을 지원하기 위하여 대한민국과 월남공화국 간의 협의 또는 대한민국 정부가 정하는 기간까지 장병 130명으로 구성하는 증강된 1개 이동외과병원과 10명의 장교로 구성하는 태권도 지도요원을 월남공화국에 파견한다" 는 정부원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다음 7월 31일 본회의에 상정시켜 대령급 210불, 이등병급 18불로 책정되어 있는 해외특수근무수당을 대령급 180불, 이등병급 30불로 조정하는 조건을 붙여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날 출석의원의 수는 157명이었다.
그 동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가 되었던 것은 140명으로 구성된 파견부대(이동외과병원 130명, 태권도교관단 10명)의 주체가 적십자정신과 인도주의 정신을 구현하는 의료지원단이었고, 6·25때 우리를 도와 준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국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명분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특수근무수당을 원화로 지급하지 않고 달러로 지급한 이유는 달러가 아니고서는 현지에서 필요한 생필품을 구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한편 월남 수상의 의료지원단 및 태권도 교관단 파견요청 공한이 도착한 후 국방부에서는 지령 제1호로 월남에 파견할 선발대를 편성하여 선발대로 하여금 주월 미군 지원사령부와 월남 정부 간에 이루어져야 할 제반 실무사항에 대한 합의를 보게 했다. 6명으로 구성된 선발대의 단장으로 임명된 사람은 합참 군수기획부 차장 이훈섭 소장이었다.
육군 제7후송병원을 모체로 하여 편성한 제1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을 월남으로 파견한 날짜는 그해 9월 11일이었고 목적지에 도착한 날짜는 9월 22일이었다.
그렇게 하여 월남으로 파견된 그 이동외과병원은 비교적 안전한 지역인 사이공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붕타우'의 월남 육군 정양원(靜養院)에서 의료지원 업무를 개시하고 10명의 태권도 교관단은 월남 육군보병학교, 육군사관학교 및 해군사관학교에 분산 배치되어 태권도를 지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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