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4대사령관 김성은

국방의 멍에 - 20. 國防部長官 時節 (4) 韓國軍의 越南派兵

머린코341(mc341) 2014. 9. 14. 06:26

국방의 멍에 - 20. 國防部長官 時節

 

(4) 韓國軍의 越南派兵

 

  1964년 9월부터 1966년 10월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자유월남 공화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1개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을 비롯하여 비둘기부대로 명명된 주월한국군 사원조단과 청룡, 맹호, 백마부대 등 도합 약 5만명의 병력을 파월하여 그때 이미 파월되어 있었던 미국, 호주, 뉴질랜드, 태국 등 월남 정부를 지원한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약 7년간 공산침략에 직면하여 사투를 벌이고 있는 자유 우방국의 평정사업과 촌락재건사업을 지원했다.

 

  한국군의 월남 파병은 실로 역사적인 일이었으며 역사적인 일이 나의 국방장관 재임기간 중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만큼 나 자신에게는 감회가 깊은 일로 간직되고 있다.

 

  그런데 월남 파병과 관련된 첫 거론이 있었던 곳은 진해 해군기지내에 있는 대통령의 별장이었다. 그 시기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인 1963년 8월 초순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해 여름철은 한해도 심했고, 또 일부 지역에선 태풍피해까지 겹치게 되어 설상가상 농촌이 피해가 켰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시기에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한해와 피해극복을 위해 애쓰고 있는 농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박경원(朴璟遠) 내무장관과 필자, 그리고 민기식 육군참모총장, 이맹기 해군참모총장, 장성환 공군참모총장, 김두찬 해병대사령관 등 군 수뇌부 요원들을 대동하여 한해와 태풍 피해지구를 순시했었는데, 그때 시찰을 마치고 진해별장에서 박의장은 이런 운을 떼며 월남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즉 그날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박 의장은 미군의 본격적인 개입이 예상되고 있는 월남전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기 위해 "만약에 미국 정부에서 한국군의 파병을 요청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말을 했었는데 나로서는 군부의 수뇌들이 합석한 자리에서 박 의장이 그러한 거른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좌중의 요인들은 분명한 태도 표명은 하지 않았지만 미국 정부에서 정식으로 요청해 온다면 적극 검토를 해서 파병하는 방향으로 대처해 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던 나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주고 있는 듯했고, 박 의장의 표정도 그러한 느낌을 갖게 했다.

 

  그 당시의 국내정세는 한해(旱害) 뿐 아니라 간접군원인 PL-480호에 의한 무상식량원조의 감축으로 인한 가중된 식량난과 미국의 군원이관(軍援移管) 정책에 따른 국방비의 추가부담 요인 등으로 경제적인 압박감이 컸고, 또 경제기반의 취약으로 인한 국제경쟁력의 약화 등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을 때였다.

 

  따라서 민정이양을 서두르고 있던 당시의 군사정부로서는 정치, 경제적인 양면에서 미국의 지원이 극히 필요한 때였던 만큼 만약에 한국군의 파병을 요청해 올 경우 그 요청을 거절하기가 어려운 실정이었고, 우리가 처한 어려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예상되고 있던 미국 정부의 요청이 있기 전 오히려 우리 정부쪽에서 능동적인 지원책을 강구할 필요성을 느끼기까지 했었다.

 

  내가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은 그러한 노력이 곧 5·16 군사정변으로 미국 정부의 불신과 정치적, 경제적인 압력을 받고 있던 군사정부의 활로를 개척하고 미국 정부로부터 사상(思想)을 의심받고 있던 박정희 의장에 대한 인식과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국방의 멍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