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서살아남기 <7> 자연속의 보금자리- 은신처 (국방일보, 2009.02.20)
‘눈 집’ 자연적인 폭설로 오목한 곳 좋아
◆눈 속에 집을 짓다.
지난해 2월 초 부대 산악회원들과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하기 위해 태백산맥의 ‘선자령’에 갔다. 늦은 저녁에 도착했으므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해가 뜨기 전까지 약 6시간의 시간이 있었는데 자연의 공기를 느끼며 정상에서 자 보자는 의견에 텐트를 가져가지 않고 침낭과 판초 2개를 준비해 갔다. 추위를 많이 겪어본 베테랑들이었으므로 나름대로 추위를 각오한 복장과 장비로 무장했다. 밤하늘의 별은 맑았으며 컴컴한 하늘 아래 멀리 출렁이는 동해 바다는 우리 가슴에 잔잔한 감동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있던 곳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장소였다. 바람도 30∼40m 높이의 대형 풍력발전기를 돌릴 수 있는 세기였다. 우리는 금세 위축되기 시작했다. 특히 얼굴과 손가락은 입김으로 녹이면 그 입김이 수분으로, 수분은 다시 얼어서 마스크가 안면에 달라붙을 정도였다.
이때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결론은 한 가지, 눈 속에 집을 짓는 것이었다. 원래 은신처는 바람을 등진 후사면이나 반사면에 만드는 것이 원칙이나 당시는 그럴 여건이 되지 못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었으므로 여러 달 동안 쌓인 눈은 낮에는 녹고 밤에는 얼면서 사람이 올라가서 밟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게 다져져 있었다. 깊이도 무릎 높이에서부터 2m가 넘는 것까지 다양했다.
바람이 가장 많이 부는 선자령 기념비 일대를 눈삽을 이용해 파 들어갔다. 3명이 누워 쉴 수 있는 크기의 3배 정도의 공간을 파 들어갔다. 판초를 연결해 입구를 막고 그 바깥에서 다시 눈으로 판초를 견고하게 눌러 다졌다. 약 1시간 동안 작업한 끝에 아주 훌륭한 눈 속의 집이 탄생했다. 그 안에서 불을 피워 따뜻하게 아침을 해 먹고 희망찬 태양을 본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혹한에서도 우리 생명을 지켜 줄 보금자리, 오늘은 바로 은신처를 만드는 방법이다.
◆육체적·심리적 안정감 주는 은신처
모든 전투원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팀으로부터 격리되거나 적 지역에 고립돼 주야 연속된 도피생활을 할 수도 있다. 은신처는 이런 전투원들이 태양·비·바람·고온과 저온·곤충, 그리고 적의 관측과 수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다. 은신처에서 생존자는 육체적·심리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으며, 생존 의지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은신처는 경우에 따라 물이나 식량보다 중요할 수 있다.
은신처는 기후와 지형을 고려해 적절히 운용해야 하고 특히 혹한기 및 혹서기 적응과 충분한 휴식이 가능해야 한다. 그렇다면 심리적·육체적으로 안도감을 받을 수 있는 은신처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군인에게는 물어보나마나 가장 우선순위는 바로 적이다. 적의 관측과 수색으로부터 은폐할 수 있는 지역인지 따져야 한다.
생존의 경우에 민간인과 군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노출과 비노출의 차이라하겠다. 다음은 위장된 도피로가 있는지, 통신이 가능한 지역인지, 야생동물과 암반 추락·눈사태·침수 등 위험 요소는 없는지, 은신처를 위한 위장재료와 공간이 충분한 지역인지 등등이다.
적과의 접촉 여부와 상황의 긴박 유무에 따라 시간을 고려해 단순 급조할 것인지, 지상에 만들 것인지, 굴토와 설치를 병행할 것인지도 고려할 수 있다. 인간이 생존하기에 가장 부적절한 조건을 가진 겨울에는 어떻게 은신처를 구축할까? 동계 은신처는 눈·바람·추위를 막고 연료와 식수 획득에 지장이 없는 곳이라야 하며, 산악지대에서는 눈사태와 낙반의 위험을 고려해야 하고 주위 환경과 잘 조화될 수 있도록 위장해야 한다.
◆폭설지역, 큰 나뭇가지 밑 적당
혹한기의 생존자는 무엇보다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추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작고 아늑하게 만들어야 한다. 폭설 지역에서는 눈을 쌓아 만드는 것보다 눈을 파서 만드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그러나 지상에 돌출된 은신처는 쉽게 발견되기 때문에 가능한 자연적인 폭설로 오목하게 된 곳을 은신처로 사용해야 한다. 눈이 주변에 쌓여 있다면 숲에 널려 있는 큰 가지나 침엽수 밑의 공간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중간 크기의 나무는 기둥 주변에 적당한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큰 나무는 가지 밑의 눈 속에 공간이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퍼져 있는 가지가 있는 나무 밑을 파보도록 한다. 동계 은신처 구축의 가장 큰 목적은 보온을 통해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람이 통하는 입구는 막고 내부 온기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은신처 내부의 벽은 나뭇가지·갈대·산죽·덤불·이끼 등으로 엮어서 대어주면 냉기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입구는 좁게 하고 천막·나뭇가지·갈대 등을 엮어 이중으로 막아준다. 찬 공기는 입구 주위에 있으므로 잠자리는 입구 바닥보다 높은 것이 좋다. 지면의 보온을 위해 보온단열재(낙엽·짚·덤불 등)를 30cm 정도 깔아준다.
최대의 보온 효과를 얻기 위해서 내부 공간의 크기는 신체의 3배 정도가 적당하다. 내부에서 불을 피울 수 있다면 모닥불을 피우거나 달궈진 돌, 뜨거운 물을 넣은 수통을 침낭에 넣거나 몸에 품으면 체온유지에 도움이 된다.
시간적 여유가 충분할 경우 자신의 신체에 맞춰 땅을 파낸 후 달군 돌을 깔고 그 위에 뜨거운 재나 흙을 뿌려 편평하게 다진다. 그 위에 다시 마른 풀이나 낙엽·깔개 등을 깔고 자면 따뜻하게 잘 수 있다. 주의할 사항으로는 불을 피우면 그 열로 은신처 상단부가 녹아 물방울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비스듬하게 깎아내 녹은 물이 벽을 타고 내려가게 하며 내부에도 수로를 만들어 몸과 장비가 젖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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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방일보, 임승재 대위 육군특수전교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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