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44) - 김일성·모택동 고지
홍천에서 부대 재정비와 훈련으로 1951년 여름 혹서기를 보낸 해병1연대는 8월 27일 다시 중동부 전선으로 행군했다. 피와 땀으로 빼앗은 캔자스 라인을 지키고 한 치 한 뼘이라도 더 전선을 밀어 올림으로써 장차 닥쳐올지 모를 휴전협정에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목적지는 펀치볼 북쪽 924고지와 1026고지 점령이었다. 도솔산 지역을 빼앗긴 적은 그 북쪽에 소련제 중화기로 무장시킨 인민군 최강부대(1사단 3연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첫 공격명령은 8월 31일 3대대에 떨어졌다. 월산령에 집결한 3대대 작전은 뜻하지 않았던 사고로 처음부터 파행이었다. 김대식 연대장이 지뢰 폭발로 부상을 입은 데에다 우군의 오폭으로 공격라인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김연대장은 고문관 맥거웨이 중위와 함께 공격선 전황을 살피다 지뢰를 밟아 두 사람 모두 부상을 입었다. 보급품을 등짐으로 져 올리는 KSC(노무자부대) 소속 노무자들에게 길을 비켜 주려고 길가로 비켜선 것이 화근이었다. 급히 손을 쓴 덕분에 연대장은 쾌유됐다. 그러나 맥 중위는 발목이 잘려 나간 상처를 제때 치료받지 못해 출혈과다로 전사하고 말았다.
해병대 KSC들은 군사지원뿐 아니라 전투에서도 늘 앞장섰다. 연대장도 그들을 매우 소중히 여겨 길을 비켜 주다 부상을 입었다.
미군은 후송 시스템이 잘 짜여 있어 웬만한 부상은 잘 치료됐다. 중동부 전선 산골짜기에서 부상을 입어도 들것에 실려 안전지대에만 가면 신속히 야전병원으로 이송되는 체제였다.
야전병원에서 안 되는 치료는 일본 사세보(佐世保)) 기지로 후송돼 적절한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피해 규모에 비해 전사자 수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맥 중위는 그렇지 못했다. 우선순위가 김 연대장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우방의 지휘관을 먼저 구하려는 차별 없는 미 해병대의 자세에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후송되면서도 “이제는 댄스를 못하게 됐군” 하고 조크를 잊지 않던 여유 있는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연대장의 부상으로 김동하 부연대장이 연대장, 선임대대장인 내가 부연대장을 겸직하게 됐다.
연대장이 부상으로 후송돼 김동하 부연대장이 연대장이 됐고 선임 대대장인 내가 부연대장을 겸직하게 됐다. 펀치몰 북방의 두 고지에 ‘김일성 고지’ ‘모택동 고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해병들에게 적개심을 심어 주기 위한 심리전이었다.
두 고지 일대에는 지뢰가 너무 많이 깔려 작전에 큰 지장이 있었다. 적정을 살피기 위해 보내는 첨병마다 지뢰를 밟고 실려 왔다. 1대대 한종영 제1중대장은 도리 없이 기만조(欺滿組)를 투입하기로 했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법이었다. 1소대 1분대에 그 임무를 부여했다. 그들을 기만조로 보내고 다른 방향으로 본대를 투입할 생각이었다.
특공대원 6명이 야음을 틈타 적 토치카에 접근해 졸고 있는 적병을 처치하고 토치카에 뛰어든 이용배 분대장이 수류탄을 던져 넣은 것이다. 토치카에 들어간 대원이 어둠 속에서 적 장교의 총을 맞고 숨지자 분대장이 뛰어들어 그 장교를 사살한 복수극이 벌어졌다. 이를 신호로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 온 최경림 1소대장의 명령으로 돌격전이 시작됐다.
또 한 차례의 백병전 끝에 어렵사리 고지 점령에 성공했다. 그러나 잠시 물러났던 적의 반격을 이겨내지 못해 고지를 내주고 말았다. 이렇게 빼앗긴 김일성 고지를 전열을 정비해 다시 공격해 성공한 것이 9월 2일 정오였다. 마치 김일성을 무찌른 기분으로 본대인 3대대 1중대 용사들은 만세를 불렀다.
김일성 고지 건너편의 모택동 고지는 다음날 2대대 5·6중대 용사들에 의해 점령됐다. 그 전날 인접 908고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 두 중대 용사들은 김일성 고지 탈환 소식에 고무돼 3일 오후 1시 모택동 고지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이 전투 중 지뢰와 적 포화로 인한 아군 피해는 500명이나 됐다.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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