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51) - 87고지 공방전
1대대 지역 전초진지들이 중공군 추계 대공세에 시달리던 10월 5일, 2대대 전초진지 87고지도 공격을 당했다. 이곳에는 3중대 3소대를 기간으로 2개 소대가 증강 배치돼 선임장교 이성길(李成吉) 중위가 지휘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3천여 발의 포탄이 고지에 날아들어 경기관총 진지가 박살났다. 사수 6명 가운데 4명이 폭사하고 소대장 이성기 소위가 부상을 입어 초전부터 병사들 사기가 떨어졌다.
적의 집중포화 때문에 어떻게 대응해 볼 엄두를 못 내는 사이 적의 돌격대가 들이닥쳤다. 선임장교 이 중위까지 적에게 포로로 잡혀 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미 해병대 지원으로 잠시 점령
87고지가 적에게 점령되자 그 후방 50고지에 본부를 두고 있던 6중대가 적의 위협에 노출됐다. 이렇게 되자 2대대 본부에서는 6중대를 구하는 길은 87고지 탈환밖에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시 87고지 탈환작전이 시작됐다. 7중대에 그 임무가 부여됐다. 7중대장 함석륜 중위가 6일 미명을 기해 탈환작전을 시작하려는데, 작전계획이 바뀌었다는 연락이 날아왔다.
미 해병1사단 지원을 얻게 됐으니 작전을 중지하라는 것이었다. 작전은 그날 아침 10시에 다시 시작됐다. 미 해병대 전폭기 편대가 적진의 저공을 날면서 후사면을 강타하자 2, 3소대 대원들이 좌측방 능선으로 붙기 시작했다.
87고지 탈환작전은 2소대 최학순 분대장 같은 용감한 대원들의 활약으로 잠시 고지 탈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날 밤 적의 총공세에 밀려 다시 고지를 내주고 말았다.
87고지를 다시 빼앗기자 전투단 본부는 1대대와 교체한 5대대를 탈환전에 투입했다. 좌일선 고지 공방전에서 너무 많은 전력을 상실한 1대대를 김포지구로 빼버린 것이다.
탈환작전 임무는 5대대 53중대에 주어졌다. 2대대 6중대 잔여 부대에는 조공 임무가 부여됐다. 7일 새벽 작전이 개시되자 적은 공격개시선 전방에 탄막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탄 사이로 진격하던 선임장교 김대열 중위가 직격탄을 맞았다.
“선임장교가 전사했다. 돌격하라!”
공격소대장 김정용 소위의 명령에 따라 선임하사관 김갑 하사와 각 분대장, 그들의 뒤를 따르던 대원들이 벌떡 몸을 일으켜 질풍같이 적진으로 달려들었다.
고지 위에서 백병전이 벌어지는 사이 다른 공격로를 지휘하던 53중대장 박병호 중위가 중상을 입었다. 고지 후사면에서도 적의 탄막사격에 노출된 지원소대 병사들이 많이 죽고 다쳤다. 6중대장 김경산 중위가 부상을 입었다. 공격소대장 김정용 소위도 적의 수류탄 파편으로 대퇴부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다.
소대장 전령 김수현·김흥수 두 해병은 김소위 시신이라도 모시고 가기로 했다. 고지 위에 흩어진 통신선을 잘라 소대장을 들것에 동여매고 끌고 내려갔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 김소위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앰뷸런스로 업고 뛰었다. 김소위는 그렇게 살아났다.
박병호 중위도 선임하사관 안길수 중사에 의해 구조됐다.
“선임하사!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속히 돌격을 하란 말이야! 내 소지품을 거두고 나를 쏘고 가라고.”
중대장의 명령에도 안중사는 소대원들을 시켜 중대장을 후송했다. 결국 탈환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게 많은 피와 눈물을 뿌렸는데도, 운명의 신은 사천강 건너편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되자 미 해병1사단장 에드윈 폴락(Edwin A. Pollock) 소장은 10월 7일 정오를 기해 탈환작전을 중단시켰다. 부임 첫 마디인 "빌어먹을 중공군 포로를 잡아라(Get God Damn Chinese)!"로 유명한 야전지휘관 폴락이 제2의 전진진지선(OPL)으로도 주저항선 방어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해병은 불사조다. 김성은 전투단장이 부임한 뒤인 10월 말 제2차 추계 공세에서 우리 해병대는 깨끗이 원수를 갚았다.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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