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6대사령관 공정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49) - 박스마인(Box Mine) 포격

머린코341(mc341) 2015. 1. 29. 02:16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49) - 박스마인(Box Mine) 포격

 

휴전회담이 조금씩 진척되면서부터 전투가 진지쟁탈전 양상으로 변했다. 판문점이 가까워 대규모 전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선의 제일 앞에 있는 전초진지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되풀이됐다. 하룻밤 사이에 진지의 주인이 바뀌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빼앗거나 빼앗긴 진지는 얼마 안 돼 또 주인이 바뀌었다.

 

아군의 전초진지는 사천강 가까이 있는 36고지와 67고지에 있었다. 이 진지들은 적진의 높은 고지에서 보면 발 아래 깔린 평지나 다름없었다. 1952년 8월 들어 사천강 수위가 낮아져 도강이 쉬워지자 적은 수시로 두 진지를 괴롭혔다. 자기네 전초진지와 불과 1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두 진지가 눈엣가시 같았던 것이다.

8월 말 어느 날 한밤중 36고지에 적의 기습공격이 시작됐다. 전차포와 자주포 탄우가 고지 꼭대기에 집중돼 이중으로 된 견고한 진지도 맥을 쓰지 못했다. 진지 북측 벽이 뚫리고 지붕이 무너져 3대대 10중대 2개 소대가 배치된 진지는 반 매몰 상태가 됐다.

 

VT신관 진내포격

 

중공군 포격의 탄착점이 고지를 넘어가는 연신(延伸) 상황을 기다린 2소대장 성광식(成光植) 소위는 중대장에게 ‘박스마인(Box Mine) 포격’을 요청했다.

 

목표지점 10미터 상공에서 터지는 VT 신관 포격을 아군 진지 위에 가함으로써 돌격상태에 진입한 적군을 섬멸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 사이 아군은 진지 안에 몸을 숨겨야 한다. VT탄 포격이 개시되는 시간에 아군은 전원 진지 안으로 대피시켜 적군만 탄막에 노출시키려는 의도였다.

 

작전은 멋지게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상황이었다. 적 공격선에 대기하던 2진이 들이닥치면서 고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인해전술에 대처하는 방법은 피비린내 나는 육박전뿐이었다.

 

그러나 중과부적, 쓰러지고 쓰러져도 적병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통신선이 끊겨 본부 또는 진지 간의 연락이 두절돼 힘겨운 백병전의 연속이었다.

적은 ‘파괴통’ 폭탄을 사용해 아군 진지를 유린했다. 파괴통이란 견고한 진지를 폭파할 목적으로 상자 안에 여러 개의 수류탄을 넣어 동시에 터지게 하는 무기였다. 진지 안으로 고춧가루 폭약까지 터뜨려 눈을 뜨지 못할 때도 있었다.

 

“소대장님, 선임하사님 다 전사했습니다. 나머지 소대원들은 어떻게 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악전고투 상황에서 한 해병이 탈출에 성공, 중대본부가 있는 31고지에 당도해 이렇게 보고했다. 상황은 즉시 연대본부에 보고됐다. 그런데 그때 연대본부로 성소위 전화가 왔다. 진지가 무너져 선임하사관 김복현(金福鉉) 중사와 함께 흙더미에 깔렸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출됐다는 것이었다.

 

“성소위! 혹시 적에게 붙잡혀 있는 것 아니오?”

“중대장님 그렇게도 절 못 믿으시겠습니까!”

죽었다는 소대장에게서 전화가 왔으니 포로 상태로 생각한 것이었다. 연대본부에서 이 대화를 감청하고 있던 나는 성소위가 엉엉 우는 소리를 듣고 그의 진정을 알았다. 진지가 무너져 흙더미에 깔렸다가 의식을 되찾은 소대장은 소대장 안부를 걱정하는 부대원들 대화를 엿듣고 소리를 질러 구출됐던 것이다.

나는 즉시 포대에 박스마인 사격을 요청했다. 중대장에게는 즉각 지원 병력을 이끌고 달려가도록 했다. 그 사이 박스마인 공격이 시작돼 날벼락을 맞은 적은 산산이 흩어졌다. 우일선 67고지로 몰려가던 적들도 혼비백산해 달아나 버렸다.

그렇게 해 두 전초진지를 사수할 수 있었다. 그때 만일 두 고지를 잃었다면 아군의 주저항선은 큰 위협에 직면했을 것이다. 판문점 동쪽 우일선의 미 해병대에도 연쇄적인 악영향이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의 상황이었다.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