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6대사령관 공정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47) - 피습과 보복

머린코341(mc341) 2015. 1. 26. 14:47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47) - 피습과 보복

 

지천에 널린 인삼 맛을 즐긴 것은 잠시였다. 적은 곧 우리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지리와 지형에 어두운 신참인데다 병력도 비교가 안 되니 얕잡아 본 모양이었다. 그들은 우리 전초 진지 주변에서 꽹과리를 치고 피리를 불고 다녔다. 반응도 떠볼 겸 위세를 과시할 의도였을 것이다.

1952년 4월 1일 밤 10시쯤이었다. 한밤중에 강 건너에서 포성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우리 진영으로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대대 1중대 지역과 3대대 10중대 지역이 목적지였다. 1대대는 즉각 반격을 가했다. 우군의 155mm 포 지원을 받아 강력한 화력을 적 침투방향에 집중시켰다.

전황은 금세 판가름 났다. 완강한 저항에 부딪친 적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퇴각했다. 수많은 시체를 남겨두고 갔다. 그러나 3대대 지역은 그렇지 못했다. 마침 10중대 본부가 이동 중이었기 때문에 전열을 가다듬을 겨를을 갖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주저항선이 뚫렸다.

적은 빈 진지마다 삐라를 살포하고, 아직 이동을 시작하지 못한 진지에서는 몇몇 대원이 포로로 잡혀갔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10중대원들은 분노했다. 경악했다. 감히 귀신 잡는 해병을 시험하다니…. 전 대원은 이를 갈면서 보복을 다짐했다. 며칠 후 작전이 감행됐다.


“해병을 시험하다니” 보복다짐

기습부대는 2개 소대, 10중대장 노원근 중위가 직접 지휘했다. 목적지는 사천강 건너 창내리 중공군 전초 진지였다. 준비물은 목적지까지 끌고 갈 통신선, 적의 지뢰 인계철선을 찾아내기 위한 회초리, 철조망을 타고 넘을 멍석 등이었다. 초저녁 진지를 떠난 기습부대는 낮에 정찰해 놓은 안전지대를 통해 사천강을 건너 공격개시선에 은밀히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어둠 속에서 인기척을 느낀 적 초병은 돌을 고지 밑으로 굴려 보내기 시작했다. 그 돌에 엉덩이를 맞은 대원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돌을 몇 개 굴려 보내도 기척이 없자 적 초병은 다시 등을 돌렸다. 이를 틈타 중대장은 야포지원을 요청하고 두 소대장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최병희(崔炳熙) 소위의 3소대는 정면에서, 김문년(金文年) 소위의 2소대는 우회해 적 후방에서 공격하도록 지시했다.

우군의 포 지원이 잠시 뜸한 틈을 타 기동이 개시됐다. 정면에서 적이 대응하기 시작했다. 적 기관총이 불을 뿜고 수류탄이 굴러 내려왔다. 일시 물러났다가 다시 공격을 시도해도 적 포화는 멈출 줄을 몰랐다.

두 번의 공격을 저지당해 초조해하던 차에, 고지 뒤편에서 요란한 총성과 우레 같은 함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배후공격을 맡은 2소대가 돌격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3소대로 돌격을 감행했다.

 

전후 협공에 당황한 적은 급히 땅굴 속으로 피해 달아났다. 굴속으로 따라 들어간 대원들이 수류탄을 던져 넣는 사이 미처 피하지 못한 적병들과 육박전 총격전이 벌어졌다. 속전속결로 보복을 마친 대원들은 적 지원부대가 오기 전 신속히 철수작전에 들어갔다. 중공군 포로 하나를 끌고서였다.

이때 마을 사람들이 국군을 따라 남으로 가겠다면서 피란 짐을 꾸려들고 따라 나섰다. 어떤 사람들은 소까지 끌고 나왔다. 말릴 수도, 그럴 겨를도 없었다. 대원들이 강변에 이르렀을 때 적의 포화가 강변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밀가루를 뿌려 도강지점을 표시해 뒀던 것이 불어난 강물로 지워져 잠시 우왕좌왕하게 됐다.

우군 진영에서도 적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해 철수로 후방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해 피란민들은 탄우 속을 헤매게 됐다. 아비규환의 혼란 속에 한 소년이 황소를 몰고 강을 건너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