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랑을 위하여(5탄)(벽을 넘어서)
해병대원상회복운동에 대해 회고하면
- [제1차 해병대원상회복운동]은 ’97년 8월에 현역사령관이 불을 붙인 후 예비역으로 확산 진행되었으며, 경주조선호텔에서 발대식을 가짐으로 본격적으로 원상회복운동이 전개되었지만, 정부에서는 통수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협박했는가 하면 예비역들은 상위 일수록 관망, 반대하는 편이 많았던 같고, 주로 앞에서 국내.외를 누비며 외쳤던 분들은 하위 계급으로 전역한 예비역들 위주로 전개한 결과 1998년 12월에 가서야 [지휘체계개선]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종료되었는데 결과는 원상회복을 하는데는 미흡한 결과로 종료되고 말았습니다.
- 그 후 10년이 지난 2007년인 오늘의 시작은 현역사령관도 예비역사령관도 아닌 80만 예비역중에서도 병들 기수의 중간이하인 병685기 김현진과 병768기 정일진 두 젊은이가 순검문제, 행사장의 해군기 등장 문제 등으로 사령부를 방문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렇게 가다가는 모군 해병대의 모습은 영원히 회복불능일 수도 있다라는 위기의식에서 처음에는 [해병대독립운동]을 외침으로 시작되었고, 30년 이상 해병대 복무를 하며 사랑을 받았던 해병대예비역준장 정도영이 무모하게 글을 띠우면서 [제2차 해병대원상회복운동]으로 정리되고 꼭 이루어야할 시대적 사명이며 소명으로 자각하게 된 것이라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단결력이 강하다는 해병대전우들의 모습은
- 국내에는 단결력이 강한 단체로 이야기되기를 호남향우회(지역), 고대 동문회(대학), 대한민국해병대전우회(군) 등 3개 단체가 있다고 함은 잘 알려진 이야기인바, 그 중에서도 해병대 전우회가 전국방방곳곳에 있음은 물론이고 외국에도 두 사람만 있으면 전우회가 결성된다고 할 정도로 3단체 중에서도 제일 단결력이 강한 단체로 인정됨은 자타가 공인하고 다 아는 사실이지요.
이렇듯 단결력이 어느 단체들보다 탁월한 단체로 국민 속에 각인된 것은 선배님들이 [해병대 혼] [해병대 정신]을 창출하며 훌륭한 전통을 수립해주신 결과이기에 그 고맙고 감사함은 한참 후배인 제가 감히 서투른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너무 외소하게 생각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자랑스럽고 국내. 외 어디를 다녀도 어깨가 으쓱해지며, 해병대출신들은 [한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라는 큰 자부심과 긍지로 살아가고 있으며, 헌신적인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해병대전우회]가 조직되어 운영되는 것이 아닐까요?
- 그런데 실제로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면, 80만 예비역이나 현역들이나 간에 단결은커녕 상상할 수 없는 반목과 갈등과 오해와 시기 같은 화합과 단결을 저해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즉 단결의 저해요소들을 짚어보면, 있어서는 안 될 출신 및 파당의 고질적인 병이지요. 사회에는 정치인부터 각종 조직에 다 있다하더라도 해병대예비역내에는 없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장교단은 사관학교출신 비 사관학교출신으로, 부사관단은 장기 단기로, 병들은 지원 징집으로 갈려 상대방을 가슴 아프게 하는가 하면, 6,25참전세대다, 월남참전세대다, 그 이후 세대다 하고 선.후배간 부드럽지 못한 분위가 조성되어왔다 하고, 또 장기복무자간에는 진급과 보직으로 인한 문제들이 오래시간을 두고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단 1개 기수 차이만 나도 꺼뻑 죽는 해병대출신들이 질서도 없이 [해병대전우회중앙회]의 중앙회, 연합회가 위, 아래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붙이는 형국들이니 바로 우리 모두가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해병대특유의 단결력]을 저해하고 망가뜨리고 있음을 우리 가슴속 깊이 되짚어보고 정말로 이것이 오른 길인가 ?하고 깊이 진심어린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해병대출신 모두의 모군인 해병대를 위해서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욕심 때문이요, 체면 때문에 그렇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하나의 욕심과 체면 말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욕심이 없을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해병대 전체를 위하여 도움이 되고, 좋아지는 일이라면 나 개인의 몫은 양보할 수 있어야 [영원한 해병대]의 참 일원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 한 예로서 우리는 [1997년 해병대원상회복운동] 당시 일부는 반대하고 심지어는 현역사령관을 내치라고 호소하고 다녔다 합니다만, 그래도 원상회복운동의 결과는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그 당시의 사령관의 위상 보다는 높였고 지휘관리도 개선되게 하였습니다. 결국 우리의 요구가 오른 길이었고, 바른 주장이었기에 돌아온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당시 우리 80만 해병대예비역이 찬. 반으로 갈리지 않고, 하나로 똘똘 뭉쳤더라면 ’73년 이전의 모습을 찾는데 훨씬 더 가까웠으리라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뭉치지 못했습니다. 반목과 갈등, 오해와 시기의 장벽을 깨지 못한 결과 또 다시 2007년의 [제2차 해병대원상회복운동]을 전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작지만 강한 해병대]의 미래를 위해 80만 해병대예비역 하나되어 ’73년 이전의 모습 회복을
- 1997년 이후 10년 만에 다시 해병대원상회복운동으로 ’73년 이전의 해병대로 회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73년 통폐합으로부터는 실로 34년이나 지나갔는데, 나타나는 현상이나 조짐들로 볼 때, 더 늦어지면 이대로 굳어질 수 있다는 느낌을 80만 예비역들이 받고 있다고 보고, [해병대원상회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다][하면 된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대] 정신으로 흘러간 서로의 잘. 잘못의 과거를 되씹지 말고, 잊고 모두 용서하고, 해병대 특유의 단결력으로 재 결집하여 기필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자고 애원합니다.
이토록 애원하는 것은, 이번 기회에 80만 해병대예비역들이 대오 각성하여 대동단결하지 않고서는 1997년에 [해병대원상회복운동]을 한번 추진하였으나 1973년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 했던 것처럼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절호의 기회마저 놓친다면, 순검을 없애라, 해병대행사장에 해병대기가 아닌 다른 기를 달아라, 해병대군표가 검토도어야 한다. 등 우리가 사랑하는 모군 해병대가 [적지만 강한 해병대]로 존속할 희망은 영원히 물건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해병대 정신으로 반목과 갈등, 오해와 시기의 장벽을 넘어서
- 우리 모두는 이번 기회에 깊이 집어보고, 반성하고, 새롭게 변하다면 영원히 발전하는 해병대 현역과 예비역이 될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필히 이번 기회를 놓지면 안됩니다. 반드시 이 기회를 잡아야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모두는 해병대라는 큰 용광로를 거쳐서 해병대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정말 [누구나 해병대원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는 강하고 자랑스러운 문구를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80만 예비역 고급장교나 부사관 출신에게는 해병대가 1개 이상이고, 병출신들에게는 해병대가 1개인가요. 아니지요 80만 예비역 모두에겐 1개의 해병대만 존재하지 않습니까? 남이 잘한 것에 대해서는 입 모아 칭찬해주고, 잘 못한 것에는 젊잖게 지적과 조언으로, 내가 잘 한 것에 대해서는 교만하지 말고, 잘 못한 것에 대해서는 용기 있게 시인하고 사과와 용서를 비는 것이 참 다운 해병대출신, 가장 용기 있는 해병대출신들이 아닐까요?
즉, 이런 자세와 마음이 모아질 때에 ’73년 해병대통폐합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고 돌려 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80만 해병대예비역 여러분! 반목의 벽을 한번 넘어봅시다. 정말 초심으로 돌아가 해병대특유의 단결력으로 재결집하여 80만 예비역의 소망이요 사명인 [‘73년 이전의 해병대 모습]을 찾는 데 매진합시다. 다 함께 뛰어갑시다.
[한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 여러 선배님, 동료, 후배여러분들이여!
2007년, 4월 8일
제2차 해병대 원상회복운동 추진 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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