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68) - 청룡의 몸값
포로로 잡히 부하 한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작전게획을 늦추었다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 상황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월남전 같은 특수상황에서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본다.
부대장이 부하 한 사람의 목숨을 그렇게 값지게 여겼다는 사실은 전 청룡장병들에게 큰 자랑이요 긍지였다.
해병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고 청룡의 신화를 창조한 원동력이었다.
제2대 청룡부대장으로 활약한 김연상(金然翔) 장군은 1968년 베트콩 구정(舊正) 공세 때 난처한 보고를 받았다. 청룡부대 중사 한 명이 호이안 인근 민가에 은거하면서 정보 획득활동을 하다가 적에게 포로로 잡혀갔다가 신분이 노출되어 도주하다가 어깨에 적탄을 맞고 쓰러져 월맹군에게 생포 되었다고 했다. 난감해진 김 장군은 즉시 작전참모 오윤진(吳允晉) 중령을 불러 대책을 숙의했다.
오 중령은 '이대로 작전을 수행하면 포로의 목숨이 위태롭다' 라고 했고 김 장군도 부대원들의 사기문제를 고려해 구출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잡혀간 동료의 목숨에 무관심한 지휘관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문제는 구출 방법이었다.
막막하기만 했던 김 장군에게 오 중령은 적과 협상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적이라도 필요에 따라 꼭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것이 이익이다. 피가 튀는 전선에서도 간혹 그런 거래는 이루어지는 법이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더 큰일이 무었이겠는가.
김 장군은 오 중령이 제안한 협상 조건이 월맹군사령관의 귀에 들어가도록 책략을 썼다. 일부러 정보를 월맹군 쪽으로 흘려보냈다.
"청룡부대장은 원래 조용한 성격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으면 공격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포로로 잡힌 해병 중사를 돌려보내면 몇 달 동안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얼마 되지 않아 오 중령이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다. 구정 공세가 끝난 직후 베트콩으로 부터 겉봉에 '김연상 장군 귀하' 라고 쓴 서신이 왔다. 편지에는 한글로 "원하는 날짜에 지정된 장소로 포로를 보내겠다" 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문장이나 글씨로 보아, 당시 베트콩을 돕던 북한 심리전 요원이 작성한 것 같았다.
그렇게 하여 포로로 붙잡혔던 중사가 풀려났다. 부대원들은 마치 죽었던 전우가 살아 온 것처럼 그를 반겼다. 문제는 베트콩에게 한 약속이었다.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약속을 파기해도 그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적과의 약속이라도 신의는 지켜야 한다. 그것이 청룡의 신사도이며 의리이기도 하다. 작전참모 오 중령의 건의대로 얼마간 공격을 늦추었다.
제2대 청룡여단장 김연상 준장(왼쪽)과 당시 명 작전참모였던 오윤진 중령.
오 중령은 소장으로 예편해 뒷날 해병대전우회 총재를 지냈다.
약속을 지키는 휴전기간 중 사기가 충천한 청룡 장병들은 전투력을 재정비해 약속기간이 지나 뒤 대대적인 수색전을 전개했다. 오 중령의 빈틈없는 작전 계획에 따라 크고 작은 승리를 거두어 포로 구출을 위해 불가피했던 휴전(休戰) 기간을 깨끗이 만회했다.
보은(報恩)의 맥주값 60달러
김연상 장군이 재임 중 나에게 들려준 일화 한 토막도 청룡의 의리와 기개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청룡부대 해병 둘이 다낭에 휴가를 나갔다가 미군 해병 몇 명과 어울려 맥주홀에서 거나하게 대접을 받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술을 얻어먹은 두 해병용사는 한국 해병의 자부심도 있고 하여, 한턱으로 보은(報恩)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주머니가 문제였다. 그렇다고 그냥 헤어질 수 없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미 해병들에게 "잠시 기다리면 근사하게 한 턱 쏘겠다"라고 호기를 부렸다.
기다리라고 하고 맥주홀을 나선 두 사람은 불문곡직하고 첫눈에 보이는 해병의 휴양 텐트에 쳐들어갔다. 총을 겨누고 "돈 내놔!" 하고 고함을 질렀다. 혼비빅산한 피서객들이 주섬주섬 거둔 돈이 모두 500달러였다. 두 사람은 그중에서 20달러짜리 지폐 석장을 집어 들고 맥주 집으로 돌아가 미 해병들에게 푸짐한 파티를 베풀었다.
그러나 바로 문제가 생겼다. 피해를 당한 천막은 미 해병 영관장교 임시숙소였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한국 해병에게 강도를 당했다고 흥분했다. 그러나 500달러 가운데 60달러만 가져간 사실에 주목하게 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돈으로 미 해병대원들에게 술을 사 주었다니 얼마나 멋진가?"
이런 말이 나오자 그들은 쉽게 결론을 내렸다. 이튿날, 청룡부대장 김 장군에게 이 사건이 보고되기도 전에 미 해병 영관장교 2명이 찾아와 부대장 면담을 신청했다. 두 사람은 간밤 '사건'의 자초지정을 설명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쳐들어 "한국 해병 넘버 원!" 이라고 말했다.
뒤늦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김 장군은 한바탕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면서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것을 알아주는 미 해병이 넘버 원!"
그후 김 장군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 어깨가 으쓱했던 기억이 난다.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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