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글/7대사령관 강기천

나의 人生旅路 - 9. 해병대사령관 시절 (16) 쓰치야 요시히코 씨

머린코341(mc341) 2015. 3. 28. 23:27

나의 人生旅路 - 9. 해병대사령관 시절

 

(16) 쓰치야 요시히코 씨

 

사령관으로 취임한 직후 나는 일본의 저명한 정치인 한 분과 친교를 맺게 되었다. 그 당시 일본 참의원(參議院)의원으로서 일본 방위청(防衛廳)의 정무차관을 지낸 쓰치야 요시히코(土屋義彦)씨가 바로 그분이다.

 

범(虎)띠 동갑(同甲)인 쓰치야 의원과 나는 쓰치야 의원을 잘 알고 있던 어떤 분의 소개로 서로 통성명을 한 그 시각부터 마치 십년지기와도 같은 친밀감을 느끼는 가운데 교분(交分)을 쌓아 왔었다.

 

그리하여 그 교분이 날로 더 두터워져 내가 동경을 방문할 기회가 있거나 쓰치야 의원이 서울을 방문할 시에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반드시 만나서 우의를 나누게 되고 또 가족간의 친분도 다지곤 했다.

 

일본 정계의 인사들 가운데 내가 가장 존경을 하고, 또 가장 두터운 친교를 맺어 왔던 쓰치야 의원은 마치 자기 나라의 일처럼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씨 한·일 양국의 이해증진과 우호친선을 위해 많은 기여를 했던 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분이었기에 쓰치야 씨가 방위청 차관으로 재임하고 있을때는 류근창(柳根昌) 국방차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는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수교훈장(修交勳章) 1등장을 받았다.

 

일본 방위청의 고급 관료로서 한국을 방문했던 예도 그 때가 처음이었지만 처음 방문한 방위청 차관에게 그러한 훈장을 수여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 당시의 방위청장관은 그 후 총리대신을 역 임 한 나카소네(中曾根) 씨였다.

 

그 후 쓰치야 의원은 오랜 시절 집권 여당인 자민당(自民黨)의 간사장(幹事長)을 지낸 바 있었는데, 그의 간사장 재임기간 중인 1985년 일본을 방문했던 나는 그의 주선으로 나카소네 총리를 예방할 기회를 약속받았으나 나카소네 총리의 돌발한 사정으로 예방이 취소된 대신 전화를 매체로 한 간접적인 면담을 할 수가 있었다.

 

그 때 나카소네 총리는 나에게 "자신의 사정으로 직접 만나 뵐 수 없게 되어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한 다음 전두환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즉 유엔에서 한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겠다. 88올림적의 성공을 위해 정치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한국이 취하고 있는 대북정책과 기타 정치적 사항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한·일간의 경제적 현안문제에 대해 적극 대처해 나가겠다. 전두환 대통령 내외분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 것 등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카소네 총리에게 정중한 사의를 표명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귀국 후 나는 전경환(全敬煥) 새마을중앙회 회장을 통해 그 뜻을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또한 쓰치야 씨가 자민당 간사장으로 있을 때, 한번은 그의 안내로 명승고적(名勝古跡)이 많고, 또 그의 출생지인 이즈반도(伊豆半島)를 방문하여 그의 생가(生家)도 둘러보고 관광도 했다.

 

그의 출생지인 그 이즈반도의 시모다항(下田港)은 명치유신(明治維新:1853~1877) 초기 미국의 페리함대가 상륙을 했던 일본 최초의 개항지(開港地)이며 외국(미국)공관(헤리스공사)이 제일 먼저 설치된 유서 깊은 역사를 간직한 항구로 알려져 있다.

 

한편 1979년 11월 3일에 엄수된 고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 때 사토(佐朧) 수상과 함께 일본국 조문사절단의 일원으로 내한한 바 있었던 쓰치야 간사장은 전두환 대통령 집권 2년째가 되던 해의 1월 9일 집권당 총재 비서실장의 초청으로 또 한 차례 내한한 적이 있었는데, 신라호텔 귀빈실에 여장을 풀고 3박 4일간 한국에 체재했던 그 시기에는 청와대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독대(獨對)하여 한·일 양국의 관심사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도 하고 새마을운동 본부를 방문하기도 했다.

 

쓰치야 씨가 정계의 거물로 등장하게 된 것은 환경청 장관을 거쳐 1989년 4월 그가 일본 참의원의 의장이 됨으로서였는데, 그가 참의원 의장이 된 후 나는 간혹 동경에서 그를 만나 상호 관심사에 대한 의견도 교환하고 교분도 더욱 두텁게 했다.

 

그리고 참의원 임기를 마친 후 쓰치야 씨는 1992년 자신의 참의원선거구인 사이다마현(埼玉縣)에서 지시(知事)선거전에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는데, 출마할 당시 자민당에서 참의원 의장을 지낸 분이 지사 선거에 출마하려느냐며 만류를 하자 그는 20년간 자신을 키워준 선거구민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려는 것이 자신의 소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사이다마현 지사로 당선된 그 이듬해 6월이었다. 나는 어떠한 일로 일본을 같이 방문했던 2~3명의 수행원과 함께 사이다마현의 현청으로 쓰치야 지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쓰치야 지사는 우리 일행을 정중하게 맞이하여 현정(縣政) 현황을 설명해 준 다음 점심시간에는 부지사와 각 국장급 간부직원 및 비서실장 등이 자리를 같이한 가운데 성대한 오찬을 베풀어 주었고, 또 떠나을 때는 현관으로 나와 배웅해 주는 등 극진한 예우를 해 주었던 것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출처 : 예비역 해병대장 강기천(姜起千) 제7대 해병대사령관님 회고록 "나의 人生旅路"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