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빈동 전투의 잔상(9) - 비장(悲壯)의 투혼으로 !!!
한편 제 2소대 동쪽 전선에서도
소총 총격전이 몇 번이고 되풀이 되었으나 전황 변동은 없었다.
여전히 3소대의 돌파된 지역 탄약고 부근에서는
적의 화염방사기까지 공격에 합세한 다는 전황보고가 왔다.
상식으로는 상상이 안 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용사들이 여기저기에서 맹열히 활약하였다.
당시 화기소대장 김기홍중위 보고는 진지 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철조망 쪽으로 도주 하는 적이 보였다는 전황 보고를 하고는 다시 접전지로 달려간다.
아마 이때가 3소대 1분대원 반이 전사 전상한 상태였고,
2소대 일부와 정정상소대(2대대에서 전날 밤에 지원군으로합세)의 일부 병력이 3소대에 합류하였다.
또 살아남은 4.2인치 포대 포분대원까지 합세하여 진지에 진입한 적군과 격전을 치를 때이다.
이때쯤이 거의 5시 전후이었고,이학현 상병이 아군의 돌격에 피신하는 적군 서너 명을 발견하였다.
적이 어둠속에서 웅덩이같이 파여진 분뇨통에 급히 뛰어들자
수류탄을 투척해 그 일대가 오물 천지가 된 시기이다.
(작전 당시의 부대 배치도 / 1= 짜빈동 11중대 / 2= 여단 본부 / 3= 3대대 / 4= 포병대대)
그 후 부상을 심하게 당한 이학현 상병은 처참한 몰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 수류탄으로
교통호에 밀려드는 적을 끌어안고 수류탄을 터트린 영웅적인 전사를 한 시간 이었다
3소대에 배속된 화기소대 LMG반 사수들의
처절한 사투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이었음은 강조하고 싶다.
아무리 칭송해도 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 경기관총 사수 김낙성 상병이 무수히 적을 사살하며 혈전을 거듭하며 실탄을 발사하다 전사하였다.
-- 그 다음 임무를 맡은 부사수 이내수 일병도 계속 LMG를 사격하는 용전 후 부상 ,
-- 또 1번 탄약수 오준태 일병이 임무 수행중 부상,
-- 다시 2번 탄약수 송영섭일병이 전사하기 까지 이들이 발사한 경기관총에 얼마나 많은 적군이 사살 되었을까?
기관총 사수가 4명이 전사와 부상을 당하면서 발사한 기관총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나?
그 용맹과 사명감은 이들의 전공과 함께
천추(千秋)에도 귀감이 될 장하고 장한 해병의 투혼들이었다.
기관총 사수가 4명이나 교대되며 전선을 유지한 투혼을 무어라고 찬사를 해야 하는가?
잊혀져서는 않될 해병정신의 진수(眞髓)이다.
출처 : 파월 제2진 청룡부대 포병관측장교 김세창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아! 청룡이여 제1권, 캄란에서 호이안까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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