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집 (3) - 군의 꽃, 사단장(1956년 2월~1958년 2월) 시절
사단장 해병대 소장인 필자
사단장 시절(1958년 4월 22일) 자유중국 방문 때 총통관저에서 장개석 총통과 함께. 당시 유리 외교의 중심은 반공으로 특히 육이오 전쟁 참전국과 동남아 제국에 대한 외교가 주류였다. 좌로부터 필자, 그 옆이 자유중국 해병대사령관, 김홍일 주중 한국대사, 장개석 총통, 김대식 해병대사령관, 자유중국 해군참모총장, 자유중국 미 해병대고문관
사단장 시절의 어느 날, 좌로부터 필자, 김대식 해병대사령관, 김용국 해병대 대령
사단장 시절 집무실 앞에서 김동하 장군(좌측끝)과 필자(우측끝). 김동하 장군은 5.16혁명시 해병대 혁명참가를 주도했다.
야전훈련을 참관하고 있는 미 육군 지휘관과 필자(우). 내 뒤에 서 있는 홍영식 대위, 미 장성 뒤에 서있는 사람이 이항문 대령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수석대표 최석 소장(좌)과 임무교대. 나는 국방대학원을 졸업 후 부사령관으로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수석대표를 맡았다. 최석 소장은 육이오 전쟁 때 3사단장으로 붕괴된 정선의 9사단 지역을 맡은 분으로 우리 해병대가 정선지구전투에서 적을 괴멸시키고 육군들을 도울 때 만났었다.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미 해병소장 다우슨을 환영하는 필자(우). 군사정전위원회 한미 수석대표가 모두
해병대가 맡은 특수한 경우였다. 이를 무척 기뻐한 다우슨 소장은 '정전 할 것이 아니라 전투 잘 하는 한미 해병대가 합동으로 저놈들을 때려 부숩시다.' 하며 농담을 하기도 한 아주 유쾌한 분이셨다.
총성없는 전쟁터, 군사정전위원회. 한반도 냉전의 모든 모습을 볼 수 있는 현장으로 정쟁이 끝난 지 5~6년이 지났지만 한반도에 흐르는 기류는 더욱 차가웠다. 창문을 열어 놓고 취재에 임하면서도 우리 측을 향해 시비를 벌이는 듯한 북한 경비원들의 살벌한 모습이 보인다. 북 대표의 발언을 듣는 필자(우측줄 가운데)와 다우슨 소장(우측줄 척 번째)
출처 : 前 국방장관 김성은 화보집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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