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빈동 전투의 잔상(13) - 지원부대 도착.
관측반: "미도파(대대 상황실), 미도파 여기는 촉성루(OP)"
대대작전: "여기는 미도파, 촉성루수고 많었다. 임무 끝 OVER!"
포병대대가 평소에 일주일 내내 포를 쏘아도 다 발사를 못할
포탄1500발을 불과 3시간 30분정도에 퍼부어대었다.
포병대대의 모든 대포 가신(대포를 지지하는 포 다리)이
땅속으로 거의 반이나 박히는 처절한 사격 임무를 마쳤고 한다.
편각, 고각, 사각, 편사각, 장약, 탄종중에
어느 하나 라도 각기 맡은 병사중에서 한명이라도 오차가 있을 수 없는게 포 사격이다.
그런데 전체 대대장병이 성공적으로 사격을 완수한 것이다.
그러고도 "모든 공훈(功勳)은 보병에게로" - 라는
대대장의 호소를 조용히 또 충직하게 그 명령을 받아드리지 않었는가?
이 점이 해병 포병의 정신적 승리를 입증하는 모습이었다.
헬기로 지원부대 2대대 6중대 병력이 도착하였다.
또 부상자 후송헬기가 선착하자 20여 부장자들을 부축하며 탑승장으로 갔다.
그중에서 제일 먼저 복부 관통상을 입은 중환자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부축도 받지않고 헬기에 올라타는 기적도 보였다.
나는 머리에 압박 붕대만 착용하고 오직 생명을 구해준
구멍 난 철모만 손에 들고서 다낭 해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후속으로 청룡부대장 김연상 장군을 위시한 많은 지휘부 장교단이과
특종기사를 송고할 조선일보 특파원 목사균 기자도 속속 진지에 도착하였다.
참고로 한국군으로는 최초로 전세계 각국 신문기자들이 모인 기자회견
(주월미사령부 작전공보실)에서 중대장 정경진 대위의 답변을 상기해 본다!
사회자 : “왜 여단 본부에서는 즉시 헬리콥터로 지원 병력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정대위 : “헬리콥터를 보내려면 지원포격(支援砲擊)을 중단해야 하는데
포의 중단은 곧 우리중대의 전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원 헬리콥터를 보내지 말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투에 지친 병사들은
지원 온 병사나 격려차 방문한 장교단과 인사를 나누기 보다는
목숨까지도 전우를 위하여 내던진 해병11중대원들의 주검을 두고
이국의 산골짜기에서 자꾸만 하늘을 보고 눈물을 참아야 했다.
살아남았다는 기쁨보다는
승화한 전우를 생각하며 맨땅에 주저 물러 앉아 어깨를 들먹이었다.
처절하였던 짜빈동 대첩은 이로서 완전히 종식을 내렸다.
(9중대로 짜빈동 방석을 구축하고 철수했다가 - 15일 아침 다시 지원부대로 짜빈동을 찾은 권용학 전우 -가운데)
간간히 내리는 안개비 속에 강력한 치누크(Chinook)헬기의 회전익이 먼지를 날렸고
20여명의 부상병들을 태운 후 전장의 먼지를 일으키며 수직으로 하늘에 솟구쳐 올랐다.
피에 젖은 붕대로 몸을 지탱하던 부상자들이 탄 헬리콥터기는
전진(戰震)에 얼룩진 피와 온갖 한이 맺힌 전흔(戰痕)을 날리며
처절하였던 생사의 역사 현장을 떠났다.
공포와 전율에 휩싸인 월남 촌민들을 뒤로 한 채로
군데군데 바나나 나무가 가득한 짜빈동 부락위를 치솟으면서 비행기는 몸부림친다.
세상을 떠난 말없는 영웅들의 명복을 비는 눈물과
비감(悲感)어린 기억들을 함께 싣고
조용한 월남의 아침 하늘위에서
바다가 보이는 동쪽으로 무겁게 날아갔다.
짜빈동 대첩에 참가한 아군 부대 및 장비를 살펴보면,
전투기간 : 1967년 2월 15일 04시 10분~08시 30분
통제부대 : 해병 제2여단 제3대대
배속 및 파견 : 해병 제2여단 제1대대 1중대 3소대
해병 제2여단 제3대대 통신소대 파견대, 106미리 무반동총 1반
해병 제2여단 4.2인치 중 박격포 2소대
참가주요장비 : 경기관총 60미리 3문, 81미리 박격포 2문, 4.2인치 4문, 중기관총 1정, 3.5인치 4문, 106미리 1문
아군병력 : 장교 10명, 사병 284명
적 병력 : 1개 연대(증강)
아군 피해 : 전사 17명, 전상 33명
전과 : 확인사살 243명, 추정사살 60명, 포로 2명, 체코제 화염방사기 3문, 대전차 유탄발사기 5문, 기관총 2정,
M15소총 11정, M56자동소총 17정, 각종 실탄 6000여발, 전화기 1대, TNT 100개, 탄창 52개, 기관단총 7정, 권총 1정,
따발총 1정
작전이 끝난 다음날인 1967년 2월 16일에는 월남군 최고 사령부 참모부장과 주월 한국군 사령부 작전참모가 부대를 방문했고, 17일에는 정일권 국무총리를 비롯한 해병대 사령관 출신의 '김성은' 국방부장관, '신상철' 주월 한국대사가 방문했다.
또한 21일에는 월남공화국 국가원수인 티우 대통령과 구엔 카오키 수상 및 월남군 1군단장인 람 장군 일행이 방문, 장병들을 격려해 주어으며, 특히 월남군과 미군사령부에서는 연구반까지 파견하여 진지 견학과 방어 전술에 대한 연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월남전 사상 중대단위 부대로서 최대의 전과를 올린 청룡 11중대 장병 전원에게 일계급 특진이 내려졌고
태극무공훈장 : 중대장 대위 정경진, 1소대장 소위 신원배
을지무공훈장 : 하사 배장춘, 중사 김용길, 상병 이학현(전사), 일병 조정남(전사)
충무무공훈장 : 중위 김세창, 중위 김기홍, 소위 김성부, 일병 이영복 등
특히 뛰어난 공훈을 세운 장병 8명에게 훈장이 수여되었다.
화랑무공훈장에는 중령 이갑석, 대위 양백수, 대위 김세기, 소위 정정상, 하사 김현철, 상병 김구보, 상병 김진수, 일병 김승욱, 일병 이영복에게 수여되었다.
※ 위 명단의 수상자 보다 더 많은 수훈자(受勳者)가 있는데도 본인 확인이 불가능해서 올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이같은 전 부대장병 일계급 특진이 내려진 것은 대한민국 건군사상 두 번째 일이었다. 그 첫 번째는 6·25전쟁 당시 진동리 지구 전투에서 해병대의 김성은 부대 전 장병에게 내려졌던 일계급 특진이었다.
꼭 거론되어야 할 용감 무쌍한 자랑스런 배속소대를 추가로 기록한다. 1대대 1중대 3소대 소대장 정정상 소위가 인솔한 1개 소대역시 전사자 명단에서 보듯이 전사자가 4명이나 발생하였다. 전투 발발 되기 직전인 초저녁에 11중대에 합류하였기 때문에 지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황이엇다.
그런데 갑자기 기습을 한 적들과 현지 부대와 합류하여 합동 전투를 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인데도 용맹스럽게 선두에서 전투를 잘 하였다. 또 전사자들의 위치가 육박전이 제일 심한 11중대 3소대 지역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들은 보충 병력으로 배속된 소대였지만 소대장 정정상 소위가 평소 얼마나 실전훈련을 성실하게 시켰는지를 보여준 결과이며 이런 위험천만의 지경에서 막중한 일을 완수한 참으로 장한 소대였다고 찬사를 보낸다.
청룡 11중대 전원과 더불어 1중대 3소대 전워은 김성은 부대 이후에 또 다시 이룩한 자랑스러운 해병대의 기록은 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짜빈동 대첩 전사자 17명 명단>
11중대 소속 : 12명
하사 강경희(姜景喜), 병장 김남섭(金南燮), 상병 이학현(李學現),
상병 최흥식(崔興植), 일병 도성룡(都成龍), 일병 이중석(李仲錫),
일병 양영호(梁永浩), 일병 조정남(趙正男), 일병 송용섭(宋容燮),
일병 김동재(金東宰), 일병 이내수(李乃洙), 이병 오준태(吳準泰)
1대대 1중대 3소대 소속 : 4명
병장 김희도(金熙道), 상병 이다성(李多成), 상병 김정석(金正錫)
일병 오정규(吳正圭)
중포중대 소속 : 1명
일병 오용섭(吳龍燮)
장렬(壯烈)하게 전사하신 열일곱 해병군신(海兵軍神)님들의 명복을 빕니다.
(동작동 국립묘지 짜빈동 묘비는 내용이 똑 같습니다 - 1967년 2월15일 월남에서 전사 -)
-- F I N --
천자봉 후배님이 짜빈동 현장을 다녀와서 보여준 사진에 노병의 눈은 또 침침해져 왔읍니다.
청룡 전우님들과 후청룡들께서 짜빈동 현장을 직접 찾아주시고
대승을 이루도록 자신을 산화시킨 전우들을 위해 제를 올려주시고
해병대 깃발을 걸고서 그 자리에서 저에게 국제 전화를 걸어왔읍니다.
-- 짜빈동 입니다, 제를 마치고 전화 올립니다 -- 들려오는 음성도 떨리고 있었고
--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 저의 목소리도 떨고 있었읍니다.
마침 현충일이 다가왔읍니다.
짜빈동 전우들이 묻힌 곳을 당연히 찾아갈 것입니다.
그동안 댓글과 전화로 격려를 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천자봉 쉼터를 통해 해병 전우 여러분과 소식을 나누길 희망합니다
-- 마지막회 음악은 천자봉님이 넣겠다고 하였고 많은 기대를 하여 왔읍니다
-- 음악을 메일로 보내왔읍니다
-- 과연 천자봉 후배님 다웠읍니다
-- 청룡은 간다 - 월남 수송선에서 목청껏 부르던 청룡가를
-- 짜빈동의 15인의 순국영웅들을 생각하며 불러봅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6월 3일 북한산 자락 개운산 밑에서 - 해병 중위 김세창,
출처 : 파월 제2진 청룡부대 포병관측장교 김세창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아! 청룡이여 제1권, 캄란에서 호이안까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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