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46) 뒤 돌아 보며/ 맥아더 장군은 선배들의 친구입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확인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본주의 경제를 기조로 한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소위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을 신호로 그 세력을 굳히기 시작했던 공산주의는 한 때 자유민주주의와 대치했던 막강한 세력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사상과 이론에만 점철되고 인간의 본능적 심성과 욕구를 무시했던 결과 80여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마치고 인류 역사의 무대에서 점차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사실상 역사를 크게 보면 세계 제 2차 대전 후 우리는 비록 일본의 군국주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는 났지만 자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와의 와중에서 양자택일을 하여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되는 약소국가가 되었고 자의건 타의건 간에 우리 한반도는 두 양대 진영의 정치, 경제, 사상, 제도 등의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며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남쪽의 대한민국은 국민의 다수에 의해 그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써 우리 스스로가 지켜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힘겨운 속에서 1950년 김일성은 구 소련과 중공을 등에 업고 6.25 남침을 일으켜 우리의 삶을 파괴했으며 그러한 가운데서도 국제연합군과 우리 국군 특히 해병대는 희생을 마다 않고 공산주의자들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지켜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참전 16개국의 유엔군 중 미국은 5만 여명이라는 젊은이들의 희생을 치러가면서도 만리타국에서 군사적, 경제적 도움으로 우리를 지켜주었던 것이며 작금의 친북 파들이 주장하는 소위 “소련군은 해방군이었고 미군은 침략군 이었다” 또는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켜준 것이다”라는 도식적이고도 모순적인 왜곡의 논리는 매우 경계를 해야 할 주장들인 것입니다.
여기서 긴 얘기를 할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특히 “남한이 자유 진영으로 되던 공산 진영으로 되던 간에 6.25 때 북한에 우리가 대항하지 않고 또 국제연합군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통일은 되었을 것이 아니냐?” 라는 빨갱이들의 선동은 우리 대한민국을 부정한 극악무도하고도 몰지각한 무지의 주장인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미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로써는 이러한 인간의 행복을 추구 할 수 있는 이념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증명까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어떤 야욕을 품은 주장을 거듭한다면 그 것은 응당 우리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할 존재들이라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속담으로 “친구 따라 천리를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같이 했던 친구의 의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6.25 때 국제 연합군으로 참전했었던 16개국과 원조를 해 준 30여 개국들의 나라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요?
그리고 백전백승의 해병대라는 우리의 존재는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던가요?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더욱 아군과 적군을 분명히 해야 하며 목숨을 바쳐 지켜온 우리의 지난 역사를 빨갱이들에게 조금도 매도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우리 선배들과 함께 공산 침략자들을 물리친 훌륭한 우리의 선봉장이었습니다.
그리고 6.25를 치르고 나라를 지킨 역전의 우리 선배들은 세계의 전사에 한 페이지를 남긴 맥아더 장군의 친구들입니다.
미국의 주구라는 말도 전연 적절치 않으며
“6.25 때 준 원조 식량은 자기들이 먹고 남은 잉여농산물을 바닷물에 쳐 박는 대신 주었던 것이다”라는 말은 그야말로 거지의 근성을 드러내는 치욕적인 말이 되기 쉽습니다.
6.25 때 우리에게 먹 거리를 준 나라는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무려 30여 개 국이나 된답니다.
그리고 만약 우방들의 잉여 농산물을 우리들에게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내가 추측하기로는 지금의 먹지 못한 아프리카 난민의 처지가 된 것은 물론, 춥고 얼어서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을 것입니다.
거듭되는 강조하는 말이지만 “국군이 대항하지 않았더라면 통일은 되었을 것이 아니냐?” 라는 말은 그야말로 우리 사회를 전복시키려는 의도의 뜻이 담겨있음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비록 맥아더 장군의 동상 앞에 서서 지키지는 못 할지라도 항상 자유를 지키려는 행사에 몸을 던지고 있는 우리들의 팔각모 전우들에게 모두 찬사와 박수를 보내야 옳을 것입니다.
** 이 글은 2005년 해병대 전우회 중앙회 사이트의 게시판에 맥아더 장군 동상 수호에 앞장선 우리 전우들을 ·비판하는 글에 대한 반박문으로 올렸던 글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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