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45) 뒤 돌아 보며/ C- 레이션의 추억
해방 후 미군들이 한국에 진주했을 때 나는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께서 잘 아는 미군이 있어 덕분으로 C-레이션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거저 맛있는 과자쯤으로 알고 많이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6.25 사변이 터져 부산 대신동에 있던 공설 운동장은 물론, 학교라는 학교 모두가 징발을 당해 미군들이 부대로 사용했었는데 그래서인지 어딜 가나 가게에는 C-레이션의 깡통을 낱개로 파는 곳이 많았고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는 웬만한 집 자식들의 소풍 준비에는 의례 C-레이션에 들어 있는 깡통 한 개쯤이 들어 있었던 것이 예사였다.
세월이 지나 내가 해병대 장교가 되어 월남전을 위해 그 곳 땅을 밟은 후 제일 먼저 식사로 제공 받은 것도 바로 C-레이션이었는데 일인 일식 분으로 포장이 되어 있긴 했지만 그 각각의 메뉴는 약간씩 다른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우리는 작전을 수행 할 때는 C-레이션으로 식사를 하고 작전을 마치고 진지에 돌아 와서는 월남 정부에서 주는 쌀로 밥을 짓고 반찬은 한국에서 보내 오는 K-레이션과 미군들이 보급하는 C-레이션에 있는 고기를 조금 넣어 주로 국이나 찌개를 끓여 먹었다.
한 번은 소대장들끼리 그래도 이런 전쟁은 잘 먹고 얼지도 않은 가운데 전투를 하는데 못 먹고 추운 겨울에 얼어가며 전투를 했었던 선배들은 얼마나 어려웠겠느냐는 말들을 주고 받았던 적이 있다.
물론 목숨을 걸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야 모두가 같겠지만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처럼 죽어도 약간은 덜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구정공세를 당했을 때는 보급이 끊겨 먹을 것은 물론 물조차 마실 수 없었던 중대들도 많았지만 우리는 다행히 아홉 끼니를 C-레이션만 가지고 때워야 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맨 먼저 드러나는 부작용은 비타민 C가 부족해 잇몸으로부터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었고 다음으로는 음식이 물리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 일곱 끼 째를 먹었을 때는 너무 질려 깡통에든 과일마저 목구멍에 넘어 가지 않아 마치 닭이 물을 삼키듯 목을 빼고 하늘을 쳐다보며 내가 이것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을 스스로해가며 겨우 삼키곤 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C-레이션에는 비타민 C를 보충하느라 토마토 쥬스를 삶은 콩에다 첨가해 만든 것이 있긴 했었으나 사실은 별로 맛이 없어 모두가 잘 먹지를 않았다.
그러던 중 한 번은 우리 소대가 수색을 하다 고추 밭을 지나게 되었는데 내가 밭으로 가면 노출되기 쉬우니 숲으로 들어오라고 했는데도 대원들은 참지 못하고 그 폭탄 같이 매운 월남의 고추를 씹기 위해 우루루 몰려 간 적도 있었다.
얼마 전 누가 요즈음 미군 부대에서 흘러 나왔다는 C-레이션을 몇 개 갖다 주었다. 예전과는 달리 모두가 부드러운 팩에 들어 있고 무게가 가벼워져 작전 시에는 매우 운반이 용이 하겠구나 싶은 생각은 들었으나 어찌나 메뉴가 단순하고 맛이 없던지 매우 실망을 했다.
그리고 C-레이션이 깡통으로 되어 있었을 시절 깡통들을 배낭에 넣고 그것을 메는 신참들은 그 모서리가 등을 찌른다고 불평을 했다.
그럴 때면 으레 고참이 핀잔을 주며 등을 찌르지 않게 깡통을 넣는 방법을 가르쳐주곤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다양한 메뉴에 맛이 그럴듯했던 우리 입맛의 그 옛날 C-레이션이 마냥 추억으로 남는 것은 맛도 맛이지만 그 보다는 우리의 젊음을 함께 했던 그 인연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그런 것은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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