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42) 뒤 돌아 보며/ 월남 아가씨 "국이"

머린코341(mc341) 2015. 7. 26. 21:14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42) 뒤 돌아 보며/ 월남 아가씨 "국이" 


월남 시골 마을의 풍경


1968년 8월. 내가 마악 전투부대를 떠나 청룡 헌병대에 근무했을 때의 얘기다.


호이안 시내를 가려면 1대대 정문을 나와 좌회전을 해 지방 도로를 타고 한동안을 가야했다.


1대대 바운다리에는 께스 스테이션이 있었고 그곳에는 미 해병대원 한명이 관리를 하는데 누구든지 기름을 마음대로 셀프로 넣고는 미 해병대원이 가지고 있는 서류에 싸인만 하면 오케이가 되었다.


길을 나와 호이안 방향으로 가다보면 1대대 정문으로부터는 약 500미터 정도의 길가 왼편으로 집들이 두어 채 있었는데 그곳의 한쪽 큰 집이 바로 국이가 장사를 하고 있었던 식당 겸 가게였다.


내가 듣기로는 닭백숙도 잘하고 국이라는 처녀가 한국말을 꽤 잘해 한번은 가볼만한 집이라고 누가 말을 해 내가 호이안으로 순찰을 가던 도중 대원 한명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처음으로 잠시 들렸던 것이다.


이미 어느 대대 대원들인지 서너 명의 대원들이 바깥으로 트인 곳에 자리를 잡고는 말을 해도 무례할 정도로 욕과 고함을 섞어가며 국이와 나이든 다른 일하는 월남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왜 저러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내가 자리를 잡고 앉자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곧 그 시끄럽던 대원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국이라는 처녀에게 닭백숙을 시킨 나는 가게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거의 대부분이 6.25사변 때 임시 수도였던 부산 시내의 구멍가게들처럼 온통 미제 물건들 판이었다.


나는 역시 미군들이 치르는 전쟁터의 풍물은 어디를 가도 매 마찬가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국이가 내 옆에 닦아와 평상 위에 앉는 것을 의식했다.


국이라는 이름은 누가 어떻게 부르기 시작한 이름인지는 몰라도 그것은 분명 우리식 이름이지 월남의 이름은 아닌 것 같이 느껴졌으나 모두가 국이로 통하고 있으니 나도 따라서 국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오~ 국이 만나서 반가워요"라고 한국말을 하니

"저도 반가워요"하고는 별로 어색함이 없는 인사를 했다.


말이 처녀지 나이는 꽤 들어 보였고 반반한 인물에 덩치도 월남인이라기보다는 중국인의 외모가 더 강해 보였다.


갑자기 그는 나에게 하소연을 하듯 말을 이었다.


"군인들이 왔습니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갔습니다"하고는 셀쭉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연결이 안 되어 의아해 했으나 곧 나와 함께 갔던 대원은 그 말을 알아듣고는

"응, 누가 음식을 먹고 돈도 안내고 그냥 가 버렸다는 말이지?" 하고는 되물었다.


국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나는 당장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 줄 방법이 없었던 터라 알았다는 말만하고는 닭백숙이 나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닭백숙은 그야말로 냉동 닭만 먹었던 우리의 입맛에는 "바로 이 맛이야!"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식으로 마늘을 푸짐하게 넣고 그렇게 맵지 않은 붉은 고추도 약간 썰어 넣어 색깔마저 입맛을 더욱 돋구어 주었다.


음식을 모두 먹고 난 뒤 나는 함께 간 대원의 의견에 따라 씨레이션 박스를 얌전히 잘라 글을 써서 붙이는 작업을 했다. 말하자면 음식 값이나 물건 값을 치르지 않는 그러한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없도록 주의를 환기 시키는 경고판이었다.


국이에게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그 팻말을 붙여주고 나온 나는 한결 가벼운 걸음을 할 수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