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39) 뒤돌아 보며/ 선배들의 먹거리
6.25 당시 해병대 전차 중대장
내 나이에 가까운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6.25전쟁 당시 전투군경들의 먹 거리에 대해 많은 얘기들을 듣고 자랐다.
내 고등학교 때의 담임선생은 자신이 사범학교를 막 졸업 했을 무렵 우연히 어떤 길을 가다 불심검문을 당한 후 무조건 트럭에 태워진 채 어느 육군의 병영으로 끌려가 입대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으로 맞는 식사 시간이 되자 지휘자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긴 막대기를 들고 연병장에 열을 서게 했는데 밥을 먹는 규칙은 차례로 주먹밥 한 덩어리를 왼 손으로 받게 한 다음 오른 손으로는 검지를 펴서 밥통 다음에 놓인 나무통 안의 된장을 찍어서 지나가게 했다는 것이다.
주먹밥과 검지에 된장을 묻힌 사람들은 밥과 된장의 양을 보아가며 적당히 먹고는 그 배고픔을 한 동안 달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데 우리는 그 코미디 같은 얘기를 듣고는 매우 크게 깔깔 거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경북 예천에서 징집에 응해 같은 형제가 제주도의 육군 신병훈련소에 동시에 입소했던 지금 80을 바라보는 어떤 선배의 말을 들으면 웃음보다는 오히려 애환을 느끼게 했다.
갑작스럽게 제주도에 신병훈련소가 생기는 통에 지금으로 치면 시설이라는 말을 하기조차 하기 힘든 거의 맨 바닥이나 진배가 없는 상황 속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우선 물이 귀했던 제주도라 목이 너무 말라 한 여름의 땡볕에서 무척이나 고생을 했던 것은 말로 다 형언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매 끼니 주는 식사의 양이 너무 작아 국가를 위해 최 일선에 나가 목숨을 바칠 사람들에게 이런 홀대를 하는 군대가 이 세상 또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무언의 항변을 수 없이 했었다고 한다.
주식인 잡곡밥은 개인별로 항고의 뚜껑에 한 번 담아주는 것이 고작이었고 국은 항고에 가득 담아 두 사람이 함께 먹도록 했는데 감자는 으레 굼벵이가 파먹은 것이었고 무우는 얼었다 녹은 조각을 썰어 넣었는데 그나마 한 조각이라도 항고 통에 들어오면 그 날은 재수가 좋은 날로 여겼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한 갑씩 배당 되는 화랑담배는 훈련 기간 중 내내 한 번도 받아 본적이 없었고 총기검사를 하는 날이면 아하~ 오늘은 화랑담배가 나오는 날이구나 싶은 생각부터 들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기간책임자가 총기청소의 검열을 적당히 마쳐주는 대가로 담배를 향도가 배급이 되기도 전에 모두 바치기 때문에 담배는커녕 담배가 나오는 날만 늘 상 눈치로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몇 개월의 훈련이 끝난 다음 선배의 아우는 전방으로 배치(포천 전투에서 이듬해 전사)가 되는 한편 자신은 운이 좋게도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에 배치가 되었는데 그 당시에도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먹었던 개인 단량이 실질적으로는 우리 국군들이 먹는 개인 단량 보다 더 나았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마침 미군들과 협조를 해야 했기 때문에 아침마다 스리쿼터로 날라다 주는 물에 탄 커피는 한도 없을 정도였지만 입에도 대지 않았던 자기로써는 무슨 소용이 있었겠느냐는 씁쓸한 얘기였다.
그러나 더욱 참당했던 얘기는 이러한 국군의 얘기가 아니고 같은 때에 바로 지리산 토벌 전투에 참가했던 우리 전투경찰들의 어려움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만나고 있는 6.25당시의 전투경찰 출신 선배의 말을 들으면 공비 토벌 차 지리산에 집결했던 군인들을 보자 당시 자기들로써는 그렇게도 부러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깔끔해 보이는 신발과 군복에 일정한 식사는 물론 화랑담배에다 건빵까지 배급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을 알고는 전투 경찰의 입장으로써는 그것이 마치 그림의 떡처럼 느껴졌었다는 것이다.
전투경찰들의 경우 추운 겨울날 민가에서 날라다 주는 주먹밥은 이미 얼음이 된지 오래되어 살그머니 불을 피워 그것을 녹여 보면 밥이 줄어들어 겨우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양밖에는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신발은 헤어 질 대로 헤어지는 것을 물론 앞창이 벌어져 으레 새끼줄이나 나무 넝쿨로 묶어서 다녀야 했고 면도도 하지 못 한 채 마치 빨치산이나 진배없이 산을 타고 전투를 하고 다녀야 했던 신세여서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그런 가운데서도 목숨을 걸고 악전고투를 해야만 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슬프기 그지없다고 했다.
더구나 지금은 그 전투 경찰들이 맞대고 싸워야 했던 적들이 오히려 희생양인양 철없이 떠드는 세상이 되었으니 한때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위해 청춘을 바쳤던 그 선배들의 마음이 오죽 하겠는가? 라는 반문에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전쟁 얘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월남에서도 6.25사변 때의 선배들을 떠올려 본 적이 있다.
물론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는 것은 매 한가지겠지만 그래도 얼어서 고생을 하거나 굶어서 고생을 하지 않는 현실에 대해 매우 풍부하고도 다행스러운 전쟁을 하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월남전에서의 예상치 못했던 한 가지 먹 거리에 대한 얘기는 보통 신참들이 도착하여 부대 진지에만 있지 않고 작전을 자주 나가게 되면 한 달쯤 뒤에는 잇몸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혀를 갖다 대고 간지러움을 없애려고 빨면 그 때서야 잇몸으로부터 피가 쏟아지는 것을 알게 되고 그 피 냄새가 어떻게나 자극적인지 처음에는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알고 보니 작전을 하느라 C-레이션만 먹게 되어 비타민 C가 부족하므로 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하 기사 영양을 철저히 다루는 미군들이야 비타민 C를 보충 하느라 토마토 주스를 넣은 음식을 넣었지만 그 맛이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는 별로여서 잘 먹지를 않았던 것이 또한 문제였던 것이다.
물론 우리가 당일 작전만 계속 나갈 때는 K-레이션에 들어있는 파래와 멸치조림 그리고 김치를 먹게 되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렇지 않고 진지를 떠나 장기 작전을 할 때는 바로 그러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어떤 심한 대원은 마치 드라큐라처럼 자신도 모르고 피 묻은 이를 드러내며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 흉한 느낌까지 들었다.
또 다른 얘기로는 월남에서도 모두 피난을 떠난 마을에서 주인을 잃은 닭이나 돼지를 몰래 잡아먹는 수가 있었지만 6.25 때 참전을 했던 어떤 선배의 말을 들으면 하도 배가 고파 낙오되었던 병사 일곱 명이 소를 한 마리 잡았는데 모두가 몇 점씩만을 먹고는 더 먹지 못하고 서로 물끄러미 잡아 놓은 소를 쳐다보고만 있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말하자면 소금이 없어 그렇게 배가 고파도 더는 목구멍에 넘어가지를 않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월남전에서 소대장을 하고 있었을 때 후임 소대장들에게 고추 밭이나 상추 와 쑥갓 밭을 지날 때는 아예 경계병들을 세우고 그대로 채소를 어느 정도는 수집하게 해야 된다고 늘 상 강조를 했다.
한 번은 작전을 하느라 무려 3일간을 C-레이션만 먹은 후 소대가 고추밭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때의 상황이란 마치 마라푼타 개미가 고추 밭을 휩쓰는 광경 같아 보였고 대원들은 적들이 어디에 있는지 경계도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연해진 내가 고추를 따지 않는 소수의 대원들과 함께 혹시나 적들이 이 기회를 노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외곽 경계를 서서 한 동안 그대로 고추를 따도록 묵인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의 방심이라도 불행을 불러 오는 전쟁터라 간부들은 특히 대원들의 먹 거리에 대한 심리를 잘 파악하고 수시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사실도 직접 체험을 하고서야 크게 깨닫게 되었다.
먹 거리 얘기만 나오면 이러한 사실들을 아는 대로 그리고 경험했던 대로 내가 열을 올려가며 항상 젊은 사람들에게 떠들어대는 이유는 그 어려웠던 시절, 대우는커녕 춥고 허기진 배로 총칼을 잡고 나라를 지켰던 선배들이 있었기에 오늘 날 이토록 대한민국을 세계 속의 나라로 발돋움하게 했다는 사실을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선배들의 애국심과 희생에 경의를 표하는 한 편 결코 그러한 과거가 영원히 헛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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