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36) 뒤 돌아 보며/ 자만과 개죽음
전쟁터에서의 긴장은 항상 필요한 것이다.
게릴라전에서는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자만이라는 존재다.
게릴라전은 용감무쌍한 힘으로만 승패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 때 그 때의 지혜로 대처해 나가야하며 대단위의 전투 보다는 소단위 부대의 접전이 많기 때문에 특히 중대장을 중심으로 소대장이나 분대장들의 역할이 그만큼 더 존중되고 커져야 하는 것이다.
중국의 모택동도 월남의 호지명도 모두 대군의 약점을 노려 게릴라전으로 일관하여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다.
아무리 사기 충전하던 대군의 병사들이라 하더라도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조금씩 아군의 피해가 늘어나게 되면 병사들의 사기저하는 물론 자신감이 결여되기 때문에 직접 전투에 임하지 못하는 대대급 정보부서나 작전부서에서는 항상 최 일선의 소대장들이나 지휘관인 중대장의 정보나 건의에 귀를 기울이고 이에 많은 비중을 두어야한다.
1967년 월남에서의 짜빈동 전투는 한국군의 전사에 영원히 빛 날 대승의 전투였다. 그러나 이것은 방어전투에서의 뛰어난 우리 해병대의 능력을 과시한 일이며 게릴라전에서의 능력 과시와는 구분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1968년 구정공세 직후 나는 두 번씩이나 아군들끼리 접전을 했던 그 와중에 있었던 소대장이었다.
물론 잠시 동안에 일어나 끝이 났던 아군끼리의 응사나 포격이었지만 이 것은 중대장들 개개인의 자질도 자질이겠지만 그만큼 대대본부에서 중대 지휘관이나 지휘자들에 대한 존중 보다는 명령에만 길들여져 있었던 결과라고 하겠다.
처음의 접전은 강을 하나 사이에 두고 5대대 27중대와 26중대가 각각의 작전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먼저 강 건너 있었던 26중대가 마주보는 강 너머의 우거진 숲 사이에 있는 우리 27중대를 발견하고 적으로 착각하여 포병대대에 포사격을 요청했던 것이다.
갑자기 연막탄이 우리 부근에 터지는가 싶더니 곧 고폭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빨리 우리 중대 관측 장교가 포병대대에 무전으로 포탄이 우리 머리를 향하고 있다고 아우성을 쳐 간신히 모면은 했으나 벌써 한 대원이 파편을 맞고 고꾸라졌는데 그래도 큰 부상이 아니어서 천만 다행이었던 적이 있다.
아무튼 대대에서는 각각의 중대가 작전을 하는데 지도상으로만 그냥 먼 거리에서 서로 교차 할 것으로 알았던 모양이었으나 수색을 하다보면 때에 따라 장애물을 피해 우회를 해야 할 때도 있고 가끔은 아군들끼리 예기치 않게 가까이에서 지나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대본부 작전부서에서는 사전에 해당 중대장들에게 미리 당부를 했어야 했고 또 적어도 강을 넘어서 아군이 작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중대장들끼리도 서로가 숙지를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대본부의 작전 장교들이 함량 미달이었는지 아니면 중대장들이 함량 미달이었는지는 몰라도 결국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숲 속에서 작전 중 또 서로 적인 줄로 착각을 해 27중대와 26중대와의 교전이 벌어졌는데 우리 소대가 마침 맨 앞의 첨병 소대였기 때문에 나는 소리소리 질러가며 각 분대별로 진격을 시키고 있던 중 미 해병대 엥그리코맨(항공, 함포 유도 통신병)의 아군 같다는 보고로 신호탄을 급히 울리게 하여 간신히 모두가 무사했던 적이 있었다.
두 번씩이나 자칫 개죽음을 할 뻔 했던 일로 대원들과 분대장 그리고 소대장들의 중대장들과 대대본부에 대한 원성이 얼마나 컸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우리의 값진 자산이며 결코 수치스러운 일로 감추어 둘 일이 아니다.
일사불란한 명령과 복종은 군의 생명과 같다. 그러나 그러한 명령에만 젖거나 권위의식에만 사로잡혀 있는 지휘관과 무조건 복종에만 길들여진 군대도 많은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게릴라전에서는 싸워보지 않은 상급부대의 명령만으로는 큰 전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 한편 계급을 떠나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로써 전략을 짜는 그러한 세계 제일의 우리 해병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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