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35) 뒤 돌아 보며/ 전쟁 공포증

머린코341(mc341) 2015. 7. 24. 12:23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35) 뒤 돌아 보며/ 전쟁 공포증 



내가 후보생시절 훈련을 받다 발목을 다쳐 5일 정도 의무실에 입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의무실에서 근무 하던 해군 중사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특히 나에게 친절을 많이 베풀었고 나는 그에게 매우 고마운 생각을 가졌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나보다 한 두 어살쯤 더 나이를 먹은 것 같아 보였는데 자그마하고 마른편인 체구에다 그의 성깔은 졸병들이 슬슬 기어 다닐 정도로 날카롭고 엄했다.


세월이 흐른 후 내가 월남에서 말단 소총소대장을 하던 시절.


작전을 마치고 미 해병대 수륙 양용 차를 타고 중대 본부로 귀대를 하다 그만 대전차지뢰의 폭발로 구사일생 살았다는 얘기는 이미 “저승의 색깔”에서 얘기를 했지만(만약 모래 위가 아니고 마른 땅이었다면 박살이나 아무도 살아남지 못 했을 것으로 추정 된다) 내 전령과 나는 고막을 다친 결과 며칠 간 의무대 신세를 지게 되었고 바로 이 때 진해 후보생 시절 만났던 바로 그 해군 위생중사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그는 의무실의 근무자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바로 환자로 와 있었던 것이다.

 

잠시 살펴보니 해군 중사는 직접 사람의 얼굴을 향해 쳐다보는 일이 없이 그저 물끄러미 힘없는 동작으로 먼 곳만 쳐다보고 있다는 것과 벌써 몸동작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챈 나는 매우 의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얘기로는 그 해군 중사는 전투 중대로 배속이 된 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어느 와중에서 그만 정신이 돌아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칼날 같은 성격과 용감무쌍 할 것 같았던 열정의 소유자가 그만 돌아 버리다니? 나는 인간의 심성이나 정신분석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언 듯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내가 고참이 되어 작전을 나가지 않고 진지를 지키는 부중대장을 잠시 하고 있을 때였다.


한번은 중대가 작전을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이었는데 병사들 셋이 멀리서 중대진지를 향해 걸어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중에 보니 작전에 처음 투입된 신병 한 명이 두 고참 사이에서 부축을 받으며 진지로 안내 되어 오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가까이 가서 보니 덩치 큰 신병의 눈은 너무나 빨갛게 충혈이 되어 있었고 두 눈동자는 이미 고정이 되지 못하고 계속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었다.


적의 로켓포가 처음 전투에 투입된 신병 가까이에서 바로 폭발해 너무나 놀랜 나머지 그만 정신이 돌아버렸던 것이다.

 

6.25전쟁 때도 부모 형제를 잃고 부산으로 피난을 온 열 살이 갓 넘은 어린 아이가 전쟁의 어떤 충격으로 “아~ 아~” 소리를 질러가며 매일 시장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던 것을 본적이 있었다.


전쟁이 필요악이라면 그 역사의 뒤안길에서 살아가야하는 우리는 과연 어떤 각오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실로 가늠하기가 어렵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