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40) 뒤돌아 보며/ 제11군수지원대대와 538 도로
다낭 항구에서 월남의 젖줄인 1번 국도를 따라 20키로 쯤 남쪽으로 가다 디엔반 군청 앞에서 좌회전을 하면 538번 도로가 나온다.
호이안 시로 가거나 청룡부대 본부와 여러 지원부대로 가려면 누구든 이 마의 538번 도로를 지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538번 도로의 마의 구간을 막 지나 호이안 시로 바로 직진하지 않고 좌회전을 하여 0대대본부의 정문으로 들어 잠시 지나고 나면 다음으로는 오른편으로 포병대대가 나오고 다음은 얼마 가지 않아 왼편으로 약간 물러난 곳에 육군 십자성부대 제100 군수사령부 예하의 제11군수지원 대대와 육군 야전병원이 있고 그 다음은 도로변에 근무중대(해병대 보급부대)가 있었으며 좀 더 가서는 역시 왼편으로 공병 중대(나중에 이동)가 있었다.
또 그곳에서 청룡 도로를 따라 고개를 약간 들면 5대대 27중대가 700미터쯤의 전방 고지에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이며 계속 27중대가 있는 방향으로 직진을 하다 우측으로 200미터 정도만 더 가면 청룡부대 본부의 정문으로 들어 설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의 538번 도로는 특히 육군 제11군수지원 대대에게는 아주 끔직스러운 도로가 아닐 수 없었다.
다낭 항구로부터 청룡부대에 지원 할 물자를 싣고 오후 늦게 트럭들이 이동을 하다가는 곧잘 기습을 받는 말하자면 죽음의 도로나 마찬가지였는데 육군은 물론 다낭에 볼일을 보고 그 트럭을 이용하던 우리 해병대 장사병들까지도 죽거나 부상을 당하는 수가 가끔 있었다.
한 때는 우리 27중대가 작전을 마치고 그 부근을 자주 지나다니기도 했었는데 어느 날 보니 0대대 정문으로부터 약 350미터 쯤 되는 538번 도로상에 분대초소 정도의 벙커를 구축해 놓고 5~6명의 대원들이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도 그 모습이 보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든든한 느낌마저 들었는데 사실은 0대대 본부가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B교량이라는 암호로 그 초소가 운영이 되고 있었는데 지난 2월 초순 적의 기습으로 인해 그만 일곱 명의 인원이 모두 전멸을 하는 통에 한 동안 폐쇄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초소가 다시 생긴 후로는 한 번도 제11군수지원 대대의 트럭이 기습을 받지 않았고 이제부터는 안심을 할 수 있다고 모두가 해 흐뭇해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문제는 제11군수지원 대대의 차량이 문제가 아니고 이제부터는 바로 그 벙커의 위치와 그곳을 지키고 있는 대원들의 야간근무가 문제 되었던 것이다.
사실은 그 초소는 조그마한 내를 하나 끼고 북쪽으로 숲을 두고 있었는데 그 깊숙한 곳에 월맹군 1개 공병중대가 있다는 공공연한 사실을 0대대도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구정 직후 우리 5대대 27중대가 이미 그 곳의 정찰을 마쳤고 그 때 내가 첨병소대를 지휘했었는데 자그마한 개활지를 건너다 불시에 공격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앞세웠던 미 해병대의 수륙 양용차가 지뢰에 체인이 끊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칼로 두부를 자른듯 한 적의 교통호였으며 더욱 어두워졌을 때는 징을 울리며 사람의 마음을 흔들던 그러한 일도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후 결국 0대대에서 운영하는 538번 도로상의 초소는 야간에도 5~6명의 인원이 고정배치 되었고 가끔씩은 적들이 야밤에 기습의 전초전을 벌렸지만 초소 근무자들은 그럴 때마다 적을 그리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었다는데 이것이 바로 적들이 초소 병력을 일단 길들이는 게릴라전의 묘수였던 것을 미리 알아차렸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하자면 적들은 아군들로 하여금 까불면 녀석들을 혼내 준다는 자만의 심리에 빠지도록 유도한 다음 나중에는 어둡지도 않은 초저녁을 틈타 모두가 마음을 놓고 있는 사이 일시에 많은 병력과 화력으로 집중 공격을 해 순식간에 그만 초소를 휩쓸어 버렸던 것이다.
그런 후로 0대대에서는 즉시 그 초소를 다시 없애 버렸으나 우리는 538번 도로 북쪽의 월맹 정규군 공병 중대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로 내가 속한 5대대에서 0대대로 전달을 해 주었는지도 의문이며 적의 대 부대가 있는 코앞에서 고정된 초소를 왜 일정하게 고정적으로 운영을 했으며 아군들로 하여금 자만에 빠지도록 한 적의 심리전에 대해 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나중에 용궁작전을 통해 그 일대를 우리 청룡부대가 모두 장악을 한 뒤로는 아무 말썽이 없는 도로가 되었지만 그 동안 청룡부대와 육군 제11군수지원 대대 원들의 희생과 위험은 너무나 컸었던 것이 사실이다.
해병대라고 해서 목숨이 둘인 것이 아니다.
게릴라전은 사병에서부터 장군까지를 모두 동원한 지혜의 싸움이지 결코 권위와 고정된 전략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 말해 두고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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