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44) 뒤 돌아 보며/ 해병대의 눈물
1968년 1월은 유난히도 추웠다.
포항에 위치한 파월 장병 특수교육대에서의 한 달이 채 못 되는 교육 훈련에도 우리는 그 엄동설한이 힘들어 얼른 교육이 끝나고 더욱 열사의 땅으로 파병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막상 1968년 1월 28일 구정 직전에 월남 땅을 밟은 우리들에게는 여러 가지로 예상했던 기대와는 다른 큰 전황의 분위기가 닥쳤다.
그중에서도 맨 먼저 난처했던 것은 청룡부대가 아직도 추라이에서 호이안으로 부대 이동을 하고 있는 중이라 우선 현지에서 받아야할 사격훈련(당시 해병대는 M-1 소총이 소지무기라 현지의 M-16교육이 필수였음)등의 적응 교육을 받을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고, 다음으로는 구정인 1월31일을 가운데 두고 3일간의 피아간 휴전을 맺어 놓고도 벌써 구정 2일 전에 적의 불법적인 대 공세가 시작 되었던 것이 큰 문제였다.
월남 정부군, 미군, 한국군은 물론 모든 아군들이 표적이 되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1번 국도의 점거와 모든 군청들까지 적의 수중에 함락되거나 공격을 받았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새로 도착한 신병들은 확고한 진지도 없이 이동하는 자기 중대를 사정을 보아가며 재빨리 찾아서 합류를 해야만 했고 그나마 이동 중 예상치 않은 적들과 흔하게 조우를 해야 했기 때문에 신병들의 그 적응력이 오죽했겠는가?
그로부터 6개월여의 적들과의 쉴 새 없는 싸움은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를 내게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특히 청룡부대의 용궁작전은 게릴라전이 아닌 전면전에서의 통쾌한 승리였으며 작전의 개념을 달리했던 이때부터의 전투는 많은 전과를 거두기 시작 했던 것도 사실이다.
1969년 1월 28일은 1년 전 한국에서 출발 했던 제23제대가 임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날이었다.
연병장에서의 환송식에서는 참모장의 환송사가 있었고 그 내용 중에는 “이번에 귀국하는 23제대는 여태 그 어느 제대보다도 함께 와서 함께 돌아가는 전우가 적은 제대”라는 눈물겨운 환송사를 했고 그 말을 듣고 있던 우리는 모두가 흐느끼며 숙연한 마음으로 전우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 때 그 시절을 회상하며 나는 글을 쓰는 지금도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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