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49) 뒤 돌아 보며/ 38년만의 만남
숲속을 누비며
200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해병대 전우회 중앙회의 인터넷 싸이트를 통해 월남에서 함께 전투를 했던 전령 두 사람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한 대원은 상진부 출신인 공 영표 병장이었고 다른 한 대원은 삼척 출신인 윤 선근 병장이었다.
사실은 그동안 내가 전연 찾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과거 PC가 없었던 시절, 내가 강릉에서 잠시 머물고 있었을 때는 삼척을 갈 때마다 혹시나 하고 고개를 빼고는 지나가는 사람을 예사롭게 보지 않았던 적이 있었고 상진부에는 직접 들러 이름이 같다는 사람을 찾아보기까지 했다.
물론 이름은 같았으나 그 사람은 가스 집을 하는 동명이인이었고 나는 그만 실망을 해 무거운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
2005년이 되자 이번에는 해병대 전우회의 싸이트를 통해 수소문을 했는데도 잘 찾아지지를 않아 거의 포기를 하다시피 했는데 마침 친절한 평창의 우리 전우회에서 애를 쓴 끝에 먼저 공 해병의 소식을 전해와 즉시 공해병과 통화를 하고 바로 윤해병도 연락이 닿을 수가 있었다.
6월도 저물어 가는 어느 날 먼저 서울에 사는 윤 해병을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났다.
둘이서 부둥켜안고 울면서 풀었던 회포가 어언 4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였다.
환갑이라는 그는 두 아들 모두를 장가를 보냈고 정년퇴직을 한 뒤라 우선은 나빠진 건강을 추 스리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는 총알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무사했다는 지난 얘기와 용궁작전 때는 윤 해병이 결국 배를 맞아 고꾸라지면서 큰 일이 벌어진 것으로 알았는데 다행히 총알이 방탄조끼와 웃옷의 사이를 치고 자나가는 통에 그나마 살았다는 얘기며 함께 수륙 양용차를 타고 가다 대 전차 지뢰가 터지는 통에 그만 모두 고막을 다쳐 함께 병원으로 직행 했었다는 전투담들을 서로가 한마디씩 하기가 바빴다.
그리고 8월 어느 날은 제대와 동시에 타향인 대구에서 줄곧 살았었다는 공 해병을 결혼식 참석차 서울에 온 것을 기회로 잠시 만났다.
그도 역시 올해가 환갑인지라 윤 해병이나 마찬가지로 이미 백발이 성성했다. 마침 다른 사람의 결혼식 문전에서 만났기 때문에 자리를 옮길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 공 해병도 교회의 장로인데다 모두 교인들의 잔치 같은 분위기라 따로 시간을 가질 수가 없어 서로가 섭섭하게 헤어졌다.
이제 모두가 늙어버린 노 해병들이지만 내가 윤 해병이나 공 해병을 만나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주름이 얼굴을 덮고 백발이 머리를 덮었을지라도 반짝이는 그 눈빛만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어 우리 모두를 그 옛날 20대 때의 시간으로 되돌려 놓은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그것은 말보다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생사고락을 같이 해서 그런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한번 해병은 가문의 영광”이라는 말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나는 해병대를 보거나 해병대의 군가를 들으면 청춘을 불태운 전쟁터에서의 내 전우들과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하염없는 눈물로 감회에 젖으며 울먹일 때가 있다.
해병대여, 영원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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