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불꽃처럼" (1966 백령도) (51)/ 장산곶 바라보는 백령 중대

머린코341(mc341) 2015. 8. 9. 21:28

"불꽃처럼" (1966 백령도) (51)/ 장산곶 바라보는 백령 중대


두무진에서


(1) 장산곶 바라보는 백령중대


인천에서 백령도까지 다니는 은하호는 그 당시 건조 된지 얼마 안 된 매우 신형의 여객선이었다.


그래도 소청도와 대청도를 들러다 보면 꼬박 10시간을 가야했지만 우리는 그 당시 그것을 쾌속정쯤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해군의 LSM이나 LST함을 타게 되면 해상 경비를 하면서 가야 했기 때문에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이 더 걸렸을 뿐만 아니라 군인들끼리만 서로 쳐다보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그 지루함이 더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군들은 오산에서 C-45 수송기나 미군의 C-46 신형 군용기를 타게 되면 대략 1시간 반 안에는 백령도의 모래사장에 사뿐히 내려앉을 수가 있어 매우 편리한 입장이었는데 가끔은 우리도 급할 때는 육지로 나올 때에 한 해 이용을 하곤 했었다.


다만 백령도에 파견을 나와 해병대 도서부대장의 지휘를 받아야 했던 육군 1개 고사포중대만이 무엇을 하나 마치 개밥의 도토리처럼 보여 매우 안쓰러울 때가 많았다.


그 당시 해병대 도서부대는 보병 부대인 벽령 중대와 중화기 중대 그리고 뚝 떨어진 연평도에는 있는 연평 중대로 구성 되어 있었는데 그 본부는 역시 백령도에 위치를 했고 파견대로는 인천 파견대, 소청 파견대 그리고 대청 파견대로 되어 있고 각 파견대의 병력이라야 불과 십여 명 안 밖의 소규모였다.


9월 하순 백령도의 색깔은 온통 메밀꽃으로 덮인 듯한 하얀 색깔이었다.


듣던 바로는 “겨우 내 세찬 진눈개비요 여름 내 해무(안개)” 라더니 아니나 다를까 기와집 처마는 겨울철의 세 찬 바람에 날라 가지 못하도록 맨 끝자락의 기와 한 줄은 으레 철사로 묶어 두었고 겨울에도 그렇지만 특히 여름에는 해무가 많이 끼어 비행기 결항이 매우 잦았다.


백령 중대는 백령도의 중심지인 진촌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해변 가까이에 있었다.


백령 초등학교를 끼고 고개를 하나 넘어서면 바로 백령 중대가 보이고 백령중대 끝에서 그 아래로 약 300m 정도만 더 내려가면 바로 해변이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왼편에 먼저 중대장실이 있고 다음은 BOQ(장교 숙소) 그리고는 1,2,3소대의 막사가 바로 늘어서 있었는데 그렇게 넓지 않은 그 후미에는 병기고며 발전 실이 매우 여유 없이 붙어 있어 답답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아래로 가파른 계단을 딛고 60계단쯤을 내려가서는 연병장이 큼지막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해변이 바로 이 연병장과 통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해안 쪽이나 연병장에서 중대의 막사들을 쳐다보면 꽤나 높은 언덕 위에 자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솔직히 말을 하자면 우리 백령 중대의 막사는 6.25 사변 때 쓰던 막사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마치 아프리카의 난민촌을 방불케 했다.


지붕은 녹슨 도단에다 막사 바깥은 낡고 썩은 판자였고 내무실 안은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흙을 바른 후 두터운 도배를 겹겹이 했기 때문에 대원들이 순검(점호)을 받기 위해 우선 도배한 벽에 먼지를 털면 도배지와 흙벽 사이로 쏴르르 쏴르르하고 흙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요란해 아예 말려야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더 웃음이 나오는 것은 대원들이 내무실 안에서 부동자세로 열을 서 있으면 조그만 게들이 어찌나 많이 기어 다니던지 순검을 대비해 빗자루로 쓸 만큼 쓸었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분대장들은 항상 불평을 했다.

그래도 때로는 그 게들이 배고픈 신참들의 간식거리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크게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들 기뻐하고 있었다.


저녁나절이 가까우면 삼삼오오 동네 아낙들이 때를 짓다시피 하여 백령 중대의 정문 앞에서 바로 보이는 길을 타고 해안가로 내려갔다.


그 해안에는 자연으로 자라는 굴이 많이 있어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내려가는 동네 아낙들의 모습이 매우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또 늦가을이 되면 남자들이 심해에 살다 알을 바위에 붙이기 위해 모처럼 올라온다는 꺽정이를 갈고리로 잡아 한 포대씩을 메고 고개로 올라오는 모습이 마냥 신기해 보였고 초겨울이면 작물을 거둔 밭에 콩새가 날아드는 것을 아이들이 용케도 휘파람을 불어가며 잡는 모습이 꽤나 신통하게 여겨졌다.


그럴 즈음 우리가 대포 집을 찾으면 으레 아이들이 잡아다 판 콩새들이 막걸리 집 처마 밑에 지푸라기에 꿰어져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또한 진풍경 중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