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불꽃처럼" (1966 백령도) (52)/ 의리의 사나이

머린코341(mc341) 2015. 8. 9. 21:31

"불꽃처럼" (1966 백령도) (52)/ 의리의 사나이



(2) 의리의 사나이


우리는 백령도를 고기 없는 섬이라 비하했다.


사실은 바로 코앞의 대청도는 황해를 바라보며 대청어장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먼 남쪽 어항에 선적을 둔 배들까지도 조업을 하기 위해 모이곤 했지만 백령도는 바로 바라다 보이는 황해도의 장산곶과 대청도 사이에 끼어 있어 그런지 우리가 흔하게 아는 생선들마저 별로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내가 듣기로는 연평도에서 잡히는 조기는 굴비를 해도 백령도 근해에서 잡히는 조기는 이미 알을 낳아 기름이 빠진 후라 굴비를 할 수가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까나리가 잡히는 봄철은 한동안 많은 배들이 모여 여느 때와는 다른 진풍경을 보였다.


해안가 움막들은 까나리 삶는 냄새를 진동 시켰고 배고파 지나치다 얻어먹었던 사병들은 곧잘 까나리 기름에 설사를 하기도 했다.


한편 백령 중대 소대장들은 중화기중대 소대장들을 매우 부럽게 생각했다. 작은 낚시 배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항 포마다 초소를 두고 배들을 통제하는 일이 모두 중화기 중대에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매일 배가 조업을 마치고 들어 올 때면 인사치례로 약간의 생선은 늘 상 얻어먹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부대본부에서 장교들의 교육이 있어 갔다가 중화기 중대의 소대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중화기 중대의 후배 소대장들을 모아 놓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의리 없이 자기들만 생선을 먹는다고 비아냥거렸다.


“야, 김 소위! 중화기 중대 장교들 밥상은 늘 고기로 꽉 찼다며?”


중화기 중대 소위들이 무슨 말인지 얼른 못 알아차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집에서 편지가 왔는데 울 엄마가 섬에 있다고 고기를 넘 많이 먹지 말래... 물린다고”


그때서야 주위에 있던 장교들이 깔깔거렸다.


이윽고 웃으면 눈이 없어지는 진해 사나이 김 소위가 그 것 뭐 어려울 게 있느냐면서 내일이라도 당장 보내주겠다는 말을 해 나는 고맙기까지 했다.


다음 날 오후 못 보던 사병 두 명이 앞뒤로 긴 막대기를 어깨에 걸치고 산을 타고 우리 중대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신발도 벗어 버린 채 바지마저 다리 위로 둥둥 걷어 올린 모양새가 마치 시골 동네의 일군들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막대기에는 그렇게도 백령 중대 장교들이 그리던 생선이 벗어버린 사병들의 군화와 함께 주렁주렁 새끼로 꿰어진 채 걸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진해 사나이 김 소위는 그 때부터 그야말로 의리의 사나이로 선배 장교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후일 나는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생선보다는 기합이 들어 있어야 할 군인들이 마치 짐꾼들처럼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생선을 매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다시 찾아 와야 할 일을 생각하고 이젠 안 먹어도 좋으니 다음부터는 절대 보내지 말라고 의리의 사나이 김 소위에게 신신 당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