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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將軍들의 전쟁] #10. “청와대 그 자리는 호남 장교 몫 당신은 국방부로 돌아가라”

머린코341(mc341) 2015. 8. 18. 14:12

[將軍들의 전쟁] #10. “청와대 그 자리는 호남 장교 몫 당신은 국방부로 돌아가라”


대구 출신 육군 대령 NSC 부임 사흘 만에 방출…호남 장교들이 요직 독점 


인사 문제는 어느 역사에서나 사람의 기본 욕구인 명예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잡음이 나지 않는 때가 없다. 이럴 경우 현명한 리더는 ‘내 사람’이라는 사적 판단보다 국가공동체와 조직의 발전이라는 공적인 판단을 앞세워야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반면 리더가 자신의 명예욕을 충족하기 위해 내 사람 심기에 급급한 행태를 보이면, 조직의 사기와 단결을 훼손함으로써 실패의 운명을 겪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군 조직만큼 이 평범한 진리가 외면되고 정치권력의 사적인 판단에 따라 군 인사가 좌지우지되는 불행을 겪은 나라도 흔치 않다.


김영삼(YS) 대통령 시절은 하나회 숙군 이후 군의 중심축이 PK(부산·경남) 인맥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되는 이들은 윤용남(육사 19기, 부산), 김희상(육사 24기, 경남 거창), 김판규(육사 24기, 경남 마산), 엄항석(육사 28기, 경남 밀양), 박종달(육사 29기, 경남 밀양) 등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회 측은 숙군 작업으로 자신들이 거세당하자 새로운 군의 주류 세력인 이들도 하나회에 대항하는 비밀 사조직을 결성했다며 이를 일컬어 ‘만나회’라고 불렀다. 하나회에 맞서 만나회의 존재 여부는 노태우 정권 말기부터 거론되던 문제였다.


1998년 10월1일 김대중 대통령이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거행된 건군 50주년 기념식에서 사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또 하나의 군 사조직 ‘만나회’ 실체 못 찾아


개신교 신자인 김영삼 대통령과 ‘소통령’으로 불리던 아들 현철씨 부자와 친분이 있는 경남 출신의 장교 그리고 개신교 신자 장교를 지칭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분위기였다. YS 정권 말기에도 이 문제가 재차 거론돼 만나회의 존재를 어느 장교가 언론사에 폭로하는 투고를 했으나, 해당 언론은 이를 군부 내 또 다른 암투로 판단하고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내일신문이 이를 특종으로 보도하면서 당시 육군본부의 인사참모부 출신 인물들이 집중적인 견제 대상으로 부각됐다. 그 주된 인물로는 관리처장을 역임한 김판규, 후에 인사참모부장으로 진출하는 박흥렬(육사 28기, 부산, 현 대통령 경호실장), 훗날 인사참모부장·인사사령관으로 진출하게 되는 한홍전(육사 32기) 등 육군 인사 라인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만나회의 존재를 입증할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시중에 떠도는 설에 불과하다는 해석에서부터 숙군에 불만을 품은 하나회나 그 아류 조직의 창작물이라는 등 갖은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실제로 기무사는 이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주요 인물들에 대한 미행·감청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으나, 그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 문제는 새로 등장한 김대중(DJ) 정권에서나 그 이후 노무현·이명박(MB) 정권을 거치면서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군을 이간질하거나 인사를 교란시키는 문제로 표면 위로 떠오른 것을 보면 기이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런 괴소문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실제 사조직이 없었다 할지라도 군인을 줄 세우려는 정치권력과 줄 서고 싶어 하는 장교 집단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만큼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 움직일 수 없는 증거는 바로 영남 정권이 등장하면 영남 장교가, 호남 정권이 등장하면 호남 장교가 진급과 보직에서 특혜를 누리는 지역 패권 경쟁 양상이 군 내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즉 출신 지역을 배경으로, 또는 유력자와의 근무 인연에 의해 권력과 밀월 관계에 있는 실세 장교 그룹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했다는 점이다.


만나회 명단이 적힌 괴문서는 YS 정권 시절부터 지금까지 총 9번 나왔는데, 나올 때마다 명단이 달라 이제는 그 신빙성을 신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군에 사조직이든 출신 지역을 배경으로 한 실세 집단이든, 하나의 군사 권력이 사적인 원리로 형성되는 것은 매우 치명적이다. 장교단의 집단정신, 즉 명예와 동질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적 원리가 권력과 명예에 대한 인간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굴복하는 순간 군은 항상 심한 몸살을 앓았다.


DJ 정권 출범 후 호남 출신 군 요직 장악


DJ는 1998년 대통령 취임 첫해에 국가의 주요 요직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장·대법원장·감사원장·국정원장·대통령비서실장 등에 호남 인물을 단 한 사람도 기용하지 않았다. 그만큼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인 그 자신이 이제는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역사상 최초로 국민 대통합을 성취하는 밝은 면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얼마 못 가서 무너졌다. 그 무렵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 위기 판단 업무를 수행하게 될 직위에 새로 부임한 ㅇ 대령(육사 30기, 대구)은 부임한 지 사흘 만에 “당신은 청와대 근무에 부적합한 것으로 판단되었으니 다시 국방부로 돌아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미 일을 시작한 지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충격을 받은 ㅇ 대령은 곧 기무사가 자신에 대한 음해성 자료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에 제출한 것을 알고 격분했다. 대대장·연대장 시절에 있었던 몇 가지 일화를 악의적으로 조작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소명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후 ㅇ 대령은 기무사가 “청와대 그 자리는 호남 장교 몫이다”라는 말을 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


무언가 인사에서 격변이 몰아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DJ 정권 출범 직후인 1998년 3월 말, 김동신 대장(육사 21기, 광주)이 사상 최초로 호남 출신 육군참모총장으로 부임하면서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왔던 호남 장교들을 배려함으로써 인사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인사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더불어 설로 떠돌던 정체불명의 군내 사조직에 대한 재조사 요구가 육군 인사참모부에서 제기되었는가 하면, 학생군사교육단에서 부적절한 포교 활동으로 헌병 조사를 받던 한 중령에게서 “나를 건드리면 배후 세력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며 “국방부 차관이 그 명단을 보관하고 있다”는 폭탄선언도 터져 나왔다.


오랜 기간 차별에 시달려온 호남 장교들이 고위직 장성으로 진출하는 데 영남세에 밀려 어느 정도 불이익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한꺼번에 이를 바로잡는다는 건 인사의 자연스러운 도리를 거스르는 만큼 갑작스러운 인사 정책의 변화는 군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 흐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군의 최고 요직에 호남 출신들이 포진하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1998년 12월11일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 만찬에 앞서 김동신 육군참모총장(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맨 왼쪽은 천용택 국방부장관. ⓒ 연합뉴스


 DJ 정권 첫해인 1998년에 천용택 국방부장관(육사 16기, 전남 목포), 김동신 육군참모총장(육사 21기, 광주), 이남신 기무사령관(육사 23기, 전북 전주)이 핵심을 장악했고, 주요 인사 라인에 오점록 국방부 인력차관보(육사 23기, 광주), 고기원 육군 인사운영처장(육사 29기, 광주) 등이 포진됐다. 새로운 정권의 실세로 국방부 획득실장 문일섭(육사 23기, 전남 강진), 정책차장 차영구(육사 26기, 광주), 획득국장 이원형(육사 26기, 광주) 등이 꼽힌다.


청와대 국방비서관 역시 하정렬 준장(육사 31기, 광주)이 발탁되었다. 이후 핵심 권력직에 진출한 호남 인사로는 이한구(육사 29기, 광주), 기무사 참모장을 거쳐 기무사령관을 역임한 문두식(육사 27기, 전남 화순), 군복을 벗고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진출한 안주섭(육사 24기, 광주), 육군참모차장을 거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진출한 신일순(육사 26기, 광주) 등이 꼽힌다.


“내 비리 조사하면 뇌물 전모 밝히겠다” 협박


사실 호남 장교들이 오랫동안 핍박을 받았다고 하지만 군의 각 분야에 엘리트 호남 장군들이 어느 정도 포진돼 있다가 DJ 정권을 만나 일제히 약진하게 되는 호남 인재 풀이 있었던 것이다. 핵심 요직에 호남 출신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상대적으로 영남은 위축돼 군의 지역색이 강화된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이 육군의 인사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소문은 정권 초기부터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사실 과거 국방부 일원에서 숨죽이며 살던 이들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동향끼리 만나 자유롭게 식사라도 하던 때는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억눌린 지역의 한을 푸는 일종의 해원(解寃)이라고 할까. 다소 소박한 지역 균형의 바람을 실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군사의 지역 패권을 형성하는 또 다른 권력 개편으로 이어지는 건 우리 군엔 엄청난 비용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여기에 과거 사조직 논리가 악용됐다.


이렇게 시작된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군은 여전히 비리와 청탁, 줄 서기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또 하나의 자화상을 만들어냈다. 군이 특정 인맥으로 재편되는 것은 정치화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전반적인 혼란과 함께 도덕 수준의 저하로 이어지는 경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DJ 정권의 오점록씨는 훗날 도로공사 사장으로 영전했으나 행담도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았다. 문일섭 획득실장은 나중에 국방부 차관으로 영전했으나 운전병에 의해 현금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차관 신분으로 구속되었다. 이원형 획득국장은 후에 품질관리소장으로 영전했으나 역시 뇌물 수수로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신일순 부사령관은 후에 부대비 횡령으로 구속됐다.


당시 군에는 병역 비리나 납품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비록 일부에 국한된 것이고 대다수 호남 장교들은 나름으로 전문성을 갖춘 인재로서 정당한 진출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일부가 호남 전체를 욕되게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 있다. 이상용 예비역 중령이 21년간 군대 생활에서 보고 겪은 일을 담아 실화소설이라는 형식으로 2001년 <장군의 밥상머리>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발간 즉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여기서는 진급을 위해 이리저리 청탁하고 돈봉투가 건네지며, 상급자의 부인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영관급 장교 부인의 시선이 녹아 있다. 출판사 서평은 다음과 같이 이 책을 묘사하고 있다.


“오로지 진급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하는 고단한 직업군인들의 삶, 그 와중에서 독버섯처럼 돋아나는 각종 비리 그리고 장군과 그 사모님을 둘러싼 음흉한 각축전, 군 조직사회의 내면이 숨김없이 들춰지는데, 그 이면에는 한낱 운전병조차 사단 내 장군 숙소를 제 집 드나들 듯 허술하기 짝이 없이 내버려둔 군 지휘관 장군의 정신 상태가 그들만의 치부(약점)로 산재해 있었다.”


“나라의 안보를 책임져야 할 영관 장교들, 그 부인들, 고작 해야 하는 일은 허구한 날 장군과 그 장군 부인의 영화를 위해 술상무가 되어주고 춤추고 노래 시중드는 상대가 되어주는 일, 그리고 장교 부인들의 남편 진급을 위해 아양 떠는 서비스 노동, 진급 때가 되면 백화점에 가서 빳빳한 만원짜리 현금을 고급 포장지에 고이 싸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장군 사모님에게 전하곤 했다. 심지어 새벽 두 시! ‘5분 내에 이 방(장군 숙소)으로 술상을 차려온닷, 실시!’라는 거나하게 취한 장군의 구령이 떨어지자마자 어김없이 영관 장교와 그의 아내, 당번병으로 조직된 특수 임무 요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벌이는 긴박한 5분간의 스릴은 이 작품의 백미일 것이다.”


어느 서해안 부대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고발한 이 소설 때문에 당시 부대 지휘관의 부패가 문제 되었으나 나중에 4성 장군으로 진출한 문제의 인물은 만일 자신을 조사할 경우 “장군들의 뇌물에 대한 전모를 밝히겠다”는 언동을 해 육군에서는 없었던 일로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7월27일 오점록 전 도로공사 사장이 행담도개발㈜과 불리한 자본투자협약을 체결해 도로공사에 손해를 초래한 혐의로 서울지검에서 구속되고 있다. ⓒ 연합뉴스


현 정부 유력 인사 연루설에 수사 덮기도


호남 출신 장교들이 요직에 대거 진출한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호남 정권 5년 동안 군 인사의 판도에 어떤 변화를 초래했을까. DJ 정권 시기 마지막 시점을 기준으로 육사 27기에서는 중장이 9명 배출됐는데, 그중 6명이 호남 출신이었다. 육사 28기 중장 3명 중 2명이 호남이었다. 29기의 경우 소장 20명 중 8명이 호남이었고, 30기의 경우 소장 9명 중 4명이 호남이었다. 3사 17기의 경우 대령 1차 진급자 9명 중 8명이 호남이었다. 2000년 말을 기준으로 하면 이른바 ‘진급되는 자리’로 인식되는 군단 작전참모의 90%가 호남 출신 일색이다. 기무·헌병 등 이른바 힘 있는 보직에는 호남 지역 편중이 더 심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필자의 이 글이 호남 등 특정 지역을 비하하기 위한 의도로 쓰인 것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호남이냐, 영남이냐 문제가 아니라 군의 패거리 문화를 말하기 위함이다. 지난 MB 정권과 현 정부에서는 다시 영남 편중의 군 인사가 진행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미 국민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지역감정이 완화되고 있음에도 유독 공직자 집단, 특히 군에서 이런 지역 패권 경쟁이 지속되는 것은 공공 집단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우리 군에 암약하는 지역과 출신을 추종하는 근본주의자들은 타 지역 출신을 배제하기 위해 추후 경쟁자가 될 만한 인물을 사전에 제거해 경쟁 자체를 없앤다는 목적으로 고급 인력을 사장시키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여기에 특정 인사를 배제하기 위한 음해와 모략의 수단으로 기무사가 관리하는 장교 신원 자료가 악용되고 헌병의 범죄 정보도 활용된다.


그런 우려는 현 정부 들어서도 지난해에 있은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의 석연치 않은 경질이라든지, 군 출신인 국정원장과 청와대 안보실장 등의 영향력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비정상적인 진급 인사에서도 이미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다 지난해 말, 3군사령부에서 벌어진 한 대령의 비리 수사에서도 안보 라인 유력 인사 ㄱ씨의 연루설이 거론되자 석연치 않게 수사가 마무리된 사건도 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스템과 법치(法治)에 의한 국방이 아니라 인치(人治)에 의한 전근대적 요소가 우리 군에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등용’과 ‘발탁’이 무시된 ‘시혜’와 ‘은전’으로 군 인사가 전락하는 순간, 그 군대에는 미래가 없다. 군의 강력한 규율과 권위, 복종의 정신이 그렇게 정치적으로 악용됨으로써 국가 위기관리, 안보 태세, 조직 발전이 모두 희생되는 것이다.


[시사저널] 201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