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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將軍들의 전쟁] #27. “한국군이 어떻게 이라크군보다 못하단 말인가”

머린코341(mc341) 2015. 10. 10. 22:43

[將軍들의 전쟁] #27. “한국군이 어떻게 이라크군보다 못하단 말인가”


한미연합사 정보작전부장, 연평도 포격 때 합참 장군들 무능 질타 


2010년 11월11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서해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취소한 데 이어 매달 실시하던 해상 포사격훈련도 일절 하지 않았다. 매년 10월 실시하던 호국훈련도 정상회의가 끝난 이후인 11월22일부터 30일까지 실시하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됐다. 정상회의를 하는 동안 북한에서는 그 어떤 군사적 특이 동향도 없었다. 마치 이명박 대통령의 G20 정상회담에 대한 애착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북한은 조용했다.


11월20일 집무실에서 국정원의 특별보고서 한 건을 집어든 김인종 청와대 경호처장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김정일 유고 가능성’에 대한 비밀 보고서였다. 어쩌면 북한이 저토록 조용한 것은 북한 내부에서 무언가 중요한 사건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국정원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미 평양이 프랑스 의사에게 보낸 김정일 뇌 사진을 입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11월 초, 김숙 국정원 1차장이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해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 문제를 6자회담과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입장을 전달하고 돌아온 터였다. 은밀하게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에 큰 태풍이 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서해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해 2010년 11월23일 저녁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을 방문해 현황 보고를 받은 뒤 김태영 국방부장관(왼쪽), 한민구 합참의장과 함께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11월16일 합참은 23일에 연평도 남서쪽 수역에서 해상사격훈련을 한다고 발표하고, 이를 국립 해양조사연구원의 항행경보란에 공지한 상황이었다. 서해에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북한은 사격훈련 전날부터 국제 상선망을 통해 우리에게 “사격훈련을 감행하면 군사적 대응을 하겠다”는 경고를 보내왔다. 훈련 당일인 23일 아침에도 북한은 전화통지문을 통해 “군사훈련을 중지하라”는 통지문을 또 보내왔다.


이날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한민구 합참의장은 해병 연평부대장인 이상도 대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만일의 사태에 만전을 기해 대비하라는 지시였다. 남북 비밀 대화가 은밀히 추진되는 상황에서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결전을 불사하는 강경한 군사적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지, 모든 게 애매한 상황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세력은 대부분 북한이 곧 붕괴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북한과의 대화는 결국 망하게 되어 있는 북한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남한에 대해 군사적 위협을 가하지 못하게 하려는 일종의 ‘관리’였다.


‘화력 도발’ 경고 무시한 합참작전본부장


합참 작전본부는 사격이 임박함에 따라 육·해·공군 작전부대를 차례로 호출하며 점검했다. 공군 작전사령부에서는 박병진 대령이 화면에 나와 있었다. “공군!”을 호출하자 박 대령은 “예, 공대공(空對空) 대비하겠습니다”라고 응답했다. 이 말은 중앙방공통제소(MCRC)를 통해 북한의 항공기 위협에 대비한 초계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합참은 “대비 잘하고 합참의 상황을 작전사령관께 즉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화가 오가던 시각에 서해 일원에서 북한의 수호이 전투기(미그기) 몇 대가 출격했다는 경보가 발령돼 공군은 즉시 초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F-15K 3대를 출격시켜 서해 쪽으로 비행하도록 했다. 우리 전투기가 서해에 나타나자 북한 전투기는 곧바로 귀환했다. 통상 북한의 항공기 위협에 대비하는 공대공 임무는 3분 대기, 5분 대기, 15분 대기와 같은 즉각 출격 태세다. 만일 북한 전투기가 나타나면 공군 작전사령부는 합참에 보고하지 않고 먼저 전투기를 출격시킨다. 그런데 분 단위 출격 대기와 같은 공대공 임무와 달리 지상의 목표물을 타격하는 공대지 임무는 2시간, 3시간 대기로 임무 수행에 시간이 소요된다.


오전 10시15분부터 연평도 서남쪽 방향, 즉 북한의 해안 쪽으로 사정거리 2~3㎞의 벌컨포 사격이 시작되었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는 사정거리 13㎞의 105㎜ 견인포 사격이 이어졌다. 북한 쪽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나타났다. 국방부 정보본부의 정보참모부는 11시15분에 ‘긴급 수시 첩보’로 “접적 지역 일대에 화력 도발 및 NLL(북방한계선) 근접 무력시위 비행 가능성이 있어 화력·공중 도발 징후를 집중 감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11시30분에도 “북한 해안에서 탄약 차량 움직임을 포착했고 레이더와 필수적인 통신망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휘관이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한 후 “접적 해역 일대에 (북의) 화력 도발 가능성”을 경고하는 긴급 수시 첩보를 청와대·국방장관·합참의장에게 배포했다.


문제는 합참 작전본부였다. 작전본부장인 이홍기 육군 중장을 비롯한 대다수 작전본부 요원들은 “북이 포를 쏜다면 바다에 쏘기밖에 더 하겠느냐”며 별다른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후 1시쯤부터 연평부대는 사정거리 40㎞의 K9 자주포 사격을 시작했다. 연평 앞바다에 굉음과 함께 일제히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이 정도 화력이면 방향만 약간 바꿔도 해주의 4군단사령부를 포격할 수 있는 위력이었다.


그로부터 90분여가 지난 2시34분쯤. 우리의 사격훈련이 종료된 지 1시간쯤 지나 북한은 76.2㎜ 평사포, 122㎜ 대구경포, 130㎜ 대구경포로 연평도 군부대 및 인근 민가를 향해 무차별로 포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연평도 전체가 검은 연기에 휩싸이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2010년 7월9일 존 맥도널드 한미연합사 정보작전부장이 연합사를 방문한 해사 66기 생도들과 오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전협정 체결 이래 남북한 군이 최초로 지상 포격전을 벌인 이날, 우리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은 붕괴되었다. 먼저 청와대는 이 대통령 주재로 긴급 안보장관회의를 소집했으나,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있던 탓에 이날 교전이 거의 다 끝난 시점에야 청와대로 들어왔다.


게다가 해병 연평부대가 대응사격을 하던 오후 3시가 넘은 시각에도 군사적 대응보다는 “우리 군이 왜 연평도에서 사격훈련을 했느냐”며 주로 우리 측 원인을 따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이 순간 김인종 경호처장은 순간적으로 북한 내부에 김정일 유고와 같은 급변 사태가 발생해 북한이 주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발한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었다. 그는 위기관리센터 요원들에게 “지상의 군사분계선 상황도 점검하라”고 독려했다. 한민구 합참의장은 이 대통령이 호출하자 화면에 등장했다.


이 대통령은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하지 말라”는 지시를 했다. 어느 정도 상황이 진정되는가 싶던 3시11분쯤 북한이 두 번째로 포격을 가해왔다. 다시 이 대통령과 한 의장이 화상회의로 통화를 했다. 여기서도 전투기 출격과 같은 추가적인 군사적 대응은 논의되지 않았다. 훗날 이 대통령이 “전투기를 동원하여 응징하려고 했는데 군이 반대해서 하지 못했다”고 밝힌 것과 달리, 한 의장은 지난 6월29일 있었던 국방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전투기 동원과 같은 지시는 없었다”고 이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한민구 합참의장 “전투기 동원 지시 없었다”


한편 이날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안보관계장관회의가 개최되고 있던 청와대 지하 벙커에 들어온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김인종 경호처장이 휴전선의 안정적 통제에 관심을 두는 모습이 마치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는 이 대통령의 지침 때문인 것 같아 보였다. 누군가 김 대변인에게 대통령의 첫 지시가 “확전 방지”였음을 메모로 확인해주었다. 김 대변인이 대통령 국방비서관인 김병기 육군 준장에게 이 메모를 보여주며 “맞느냐”고 문의하자, 김 비서관은 몇몇 구절을 손질까지 해주었다.


김 대변인은 이 메모대로 춘추관에 대기 중이던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도록 지시했다. 교전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3시40분쯤 모든 방송에 이 대통령의 이 메시지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각 한민구 의장은 청와대와 상의 없이 자신의 직권으로 “공대지 무장을 한 F-15K 전투기를 현장으로 보내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여기서 또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지시를 받은 공군작전사령부가 즉시 공대지용 F-15K를 출격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절차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 공군 조직 절차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먼저 원거리에서 공대지 타격이 가능하려면 냉장고에 진공포장으로 보관 중이던 SLAM-ER 미사일을 반출해 포장지를 뜯어야 한다. 한 번 포장을 뜯으면 20억원을 호가하는 이 미사일의 수명은 크게 단축된다.


그 다음으로 전투기에 탑재하려면 차량으로 운반해야 하는데, 첨단 정밀 무기를 실은 차량은 최저 속도로 기동해야 한다. 그 다음엔 미사일에 타격할 표적의 좌표를 입력해야 한다. 이러는 동안 전투기 조종사는 표적을 브리핑 받아야 한다. 그 다음에 출격하는데, 여기까지 걸리는 총 시간이 2시간이다. 1000억원짜리 공중 자산에 20억원짜리 미사일 두 발을 탑재하고 뜨는 데 이렇게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게 해서 서해에 이 전투기를 띄웠다면, 그 다음엔 또 어떻게 될까.


먼저 표적이 정확히 확보되어야 한다. 이날 적의 포격 원점은 무도와 개머리 두 군데였기 때문에 이건 해결되었다.

두 번째는 표적을 정확히 타격해야 한다. 이건 자신이 없다. SLAM-ER 미사일은 적의 전략 목표를 타격하는 첨단 미사일이지, 소규모 해안포 진지를 타격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무기일뿐더러 맞힌다는 보장도 없었다. 만일 이런 고가 장비를 투입하고도 정확히 타격하지 못할 경우 우리의 심리적 패배는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타격의 결과 확인인데, 이 역시 시간이 소요될뿐더러 다양한 정찰 감시 자산이 필요하다.

네 번째는 인근에 있는 북한의 다른 대공 미사일, 예컨대 SA-2, SA-5가 반격할 수 있고 추가 도발이 있을 수도 있는데 여기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함부로 전투기를 동원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 당시 연평부대의 대응 포격 역시 대부분 북한의 진지를 타격하지 못하고 인근 논과 밭에 떨어졌다. 연평부대는 평소 북한의 포진지를 식별해 좌표를 자주포에 입력하고 있지만, 문제는 풍향·풍속과 같은 기상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작전상의 이유로 합참의장이 전투기를 동원하는 데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면, 그때 이명박 대통령은 “전투기 타격은 유엔사령부 정전 시 교전규칙에 의해 미군의 협조를 받아야 투입할 수 있다”는 엉뚱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교전규칙에 의하면 “표적 선정과 항공 작전은 미 7공군 사령관 소관이므로 그 협조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우리 대통령 마음대로 때리라 말라 지시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설명이었다. 이튿날 이 대통령이 잔뜩 화가 나서 “교전규칙을 개정하라”고 지시하는 등 논란이 확대되자 정작 놀란 당사자는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이었다. 한민구 합참의장으로부터도 “국지전에서 전투기로 타격하는 것이 교전규칙 사항인가, 아니면 한국 정부가 자위권 차원에서 독단으로 결정할 일인가”에 대한 질의서가 날아왔다. 이미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교전규칙 사항으로 우리 독단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국회에도 이를 보고한 상태였다.


그러나 샤프 사령관은 11월30일께 우리 국방부에 답신을 보내 “한국 정부가 자위권 차원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이 답변서가 도착하기 이전까지 합참의 장군들은 자위권이냐, 교전규칙이냐로 양분되어 논쟁을 하고 있었다. 쉽사리 결론이 내려지지 않자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어디에 해당되는지 국제법 학자에게 연구 용역을 발주하기로 했다”는 희대의 브리핑을 한다.


2010년 11월23일 북한의 포격으로 연평도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 ⓒ 옹진군청 제공


샤프, “국가 주권의 핵심인 자위권 차원”


누구도 전쟁하는 방법을 몰랐다. 오랜 기간 미국에 안보의 모든 걸 의존하면서 우리 스스로 작전을 결심할 수 있는 군사 주권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많은 국민이 의아해하는 것은 “왜 한국군 장성들은 작전권을 단독으로 행사하는 걸 거부하는가” 하는 문제다. 장교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군대를 직접 지휘하고 통제하기를 원하지 외국 군대의 휘하에 들어가길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우리 군의 장성들은 미군이 한국군에 대해 작전을 통제해주길 바란다.


교전 다음 날 한미연합사 간부회의에서 연합사 정보작전부장인 존 맥도널드 소장이 불같이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다. 이라크의 신생 군대도 자기 목숨이 걸린 상황이 되면 스스로 판단한다. 그런데 어제 합참에서 뭘 해도 되느냐는 전화가 매 시간, 매 분마다 수도 없이 왔다. 어떻게 한국군이 이라크보다 못하단 말인가?” 연평도 사태로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경질되었다.


뒤이어 부임한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전임 장관의 말을 뒤집고 “전투기로 타격했어야 했다”며 이는 “국가 주권의 핵심인 자위권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을 들은 한민구 합참의장은 전투기를 출격시키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지고 김 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과연 한민구 합참의장이 부적절하게 판단했느냐에 대해 선뜻 “그렇다”라고 답할 수는 없다. 이날 이 대통령 지침과 한 의장의 작전 목표는 “북한의 추가적 도발 억제”에 있었다. 그렇다면 구태여 전투기를 동원해 상대방의 영토를 타격한다는 것은 전면전을 불사한 최고 강도의 위기 대응을 의미한다.


그런 전쟁 불사의 강경 논리는 우리에게 초래될 국가적 재앙의 결과를 예상하고 또 감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전쟁 상황을 당시에 우리가 감수한다는 것은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았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냥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우리 군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었다.


[시사저널] 2014.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