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將軍들의 전쟁] #26. “항공모함 보내달랄 땐 언제고…” 게이츠 국방장관 격분
G20 앞두고 오락가락한 MB 정부 김태영 국방장관, 줄타기하다 미·중 동시 반발 불러
2010년 6월 하순의 월요일 아침. 집무실에 출근한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부관에게 벌컥 화를 냈다. 7월6일로 예정된 신임 합참의장 취임식을 전후한 자신의 일정이 온통 만찬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떠나는 이상의 전 합참의장 환송 만찬, 새로 오는 한민구 합참의장 취임식과 환영 만찬, 떠나는 황의돈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환송 만찬, 새로 오는 정승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취임식과 환영 만찬 등 온통 이·취임 행사들이었다.
한 주 내내 밥 먹고 건배하다가 시간이 다 갈 판이었다. 2008년 6월 부임한 월터 샤프가 겪은 한국 합참의장은 김태영·이상의 대장에 이어 한민구 대장까지 2년 동안 벌써 세 사람째다. 한국 합참의장은 한미연합사령관과 군사 문제를 협의하는 주요 파트너다. 이렇게 자주 바뀌는 한국 합참의장을 상대하는 일은 언제나 버거웠다.
말귀를 알아들을 만하면 얼굴이 바뀌기 때문이다. 자신의 휘하에 있는 한국 측 최고 선임자인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도 이성출 대장에 이어 황의돈·정승조 대장까지 세 번째다. 지난 2년간 월터 샤프와 군사 문제를 긴밀히 협의하는 한국 측 핵심 요직에 모두 6명의 한국군 대장이 거쳐간 것이다. 사람 좋은 월터 샤프도 정신없이 바뀌는 한국의 대장 인사에 “이게 무슨 후진국형 인사란 말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통상 미국에서는 합참의장 취임이 6개월 전부터 내정된 인사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준비된다. 그런데 지난 2년간 한국의 군 인사를 보면 새로운 군사 정책에 대한 아무런 비전과 개념도 준비하지 않은 장성이 하루아침에 합참의장으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으로 등장했다가, 조금 업무를 알만 하면 또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한국의 국내법에 의하더라도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은 법으로 2년 임기를 보장하는 직위지만 1년, 심지어 6개월 단위로 대장들이 마구 교체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왼쪽부터 2010년 당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 김태영 국방장관, 량광례 중국 국방부장. ⓒ 연합뉴스·사진공동취재단
일주일 내내 만찬 일정에 샤프 사령관 분통
한국군 수뇌부에 대해 월터 샤프는 오래전부터 불만이 있었다. 합참에서 의장에게 보고되는 주요 보고서가 생산되는 단위는 13명의 부장, 즉 소장급 장성들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해 합참 기능이 강화된 이후, 합참의장이 부장급에서 생산되는 보고서를 제대로 읽고 컨트롤하려면 하루에 잠을 4시간 자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런데도 한국군 대장들은 아예 그런 개념조차 없이 매일 사람이 바뀌고 이·취임식을 반복하는 ‘인사 군대’ ‘의전 군대’였다. 월터 샤프는 이동 중에도 차 안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이메일을 통해 업무를 처리한다. 작은 시간이라도 쪼개서 효율성을 높이지 않으면 사령관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판이었다. 그런데 한 주를 온통 만찬에 허비해야 한다는 데 제대로 짜증이 난 월터 샤프는 마침 이날이 김태영 국방부장관과 회동이 예정돼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잘됐다’고 여기며 중요한 현안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2010년 5월20일 국방부 민군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중어뢰에 의해 폭침당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5월24일에는 국방·통일·외교부 장관이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특별조치를 발표했다. 이 대북 조치에는, 전방에서 확성기를 동원한 대북 심리전을 재개하고, 미국 항공모함이 동원되는 서해 한·미 연합 해상 훈련을 실시하며, 제주해협에 북한 선박 통과를 불허하는 등 지난 노무현 정부 때의 남북 군사 협력 합의 사항을 대부분 파기하는 것으로 그 방향이 설정되어 있었다.
이날 오후 김태영 장관을 만난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대북 심리전 재개에 따른 우려를 우선 제기했다. 그는 남북한 간 합의로 중단된 심리전이 재개된다는 데 대해 “첫째, 왜 하는지 모르겠다. 둘째, 재개해서 효과가 뭔지 모르겠다. 셋째, 북한이 반발하고 도발했을 때 대비 계획이 뭔지 모르겠다”며 이 조치에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이에 김 장관에게서 뜻밖의 반응이 나왔다. “전방에 확성기를 설치한 것만으로도 이미 대북 심리전의 효과를 거두었다”며 “굳이 방송은 안 해도 된다”고 말해 샤프 사령관의 우려를 간단히 수긍해버렸다.
샤프는 더 황당해졌다. 그러면 하지도 않을 대북 심리전 방송을 위해 확성기를 설치하느라 예산을 허비하고 국민들에게 발표한 것은 또 뭔가. 이날 두 사람의 회동에서는 말만 무성했던 서해상에서의 한·미 연합 대잠 훈련에 대해서는 일정조차 협의되지 못했다.
“항모 보내달라”는 김 장관 부탁 단호히 거절
우리 국방부와 합참은 점점 초조해졌다. 이미 국민들에게 미국 항공모함을 불러들여 연합 해상 훈련을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미국은 전혀 항공모함을 보내줄 의사가 없었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무언가 강경한 군사 정책을 구사하려고 하면, 한반도의 분쟁에 연루될 것을 우려한 미국은 선뜻 응하지 않고 갖은 구실을 대며 빠져나가려 했다.
연합사령부 작전처장을 역임하고 있던 김왕경 육군 준장은 거의 매일 “항공모함을 보내주겠다는 미국 측의 약속을 받아내라”는 국방부와 합참의 독촉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미국 국방부와 태평양사령부에 온갖 연줄을 다 동원해 항공모함을 모셔오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미국 국방부는 “1년 스케줄이 다 계획된 항모를 갑자기 보내줄 수 없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웠지만, 사실 항모 전단 전개에 소요되는 예산 자체도 미국에는 큰 부담이었다. 원자력 항공모함은 출동을 위해 시동을 거는 데만 1억 달러 이상이 소요된다.
2010년 7월26일 동해상에서 열린 한·미 연합 훈련에서 미군 전투기가 해군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 호에서 이륙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G20 이유로 한국에 문전박대 당한 미 항모
그러나 펜타곤(미국 국방부)의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6월 초, 미국과 중국의 긴밀한 외교적 협조로 이란 핵 개발에 따른 유엔 안보리의 이란 제재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만일 서해에 항모를 보낸다면 중국과의 공조 분위기를 훼손하게 될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6월 말 싱가포르 샹그릴라 안보 대화 때 김태영 장관이 직접 부탁했음에도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6월26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항모 전개를 직접 부탁하자 무심코 오바마가 이를 수락해버렸다.
이에 게이츠는 “이러면 내가 국방장관을 그만두겠다”며 화를 내며 반발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7월에 항모는 서해가 아닌 동해에 출동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특별한 대북 메시지도 없는 형식적인 훈련이었다. 펜타곤은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에 가급적 연루되지 않으면서, 대중국 관계를 기본으로 동북아 정세를 관리하는 강대국 정치에 충실하고자 했다. 한·미동맹은 어디까지나 그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8월부터 우리나라 서해를 둘러싸고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국제 정세의 급반전이 일어났다. 중국이 7월 말부터 남중국해에서 서해에 이르는 해양교통로에 대해 ‘핵심 이익’을 언급하며 “배타적 주권을 행사하겠다”고 공언하자 미국의 매파 현실주의자들이 이를 중대한 도발로 간주하고 일제히 “중국 견제”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워싱턴 정가에서 중국과의 공조 분위기가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반전되던 8월 초, 미국 국방부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서해에서 추가로 실시하며, 조지 워싱턴 항공모함을 참가시킬 것”이라고 발표해버렸다.
이로 인해 서해에 미국 항공모함이 들어올 것을 예상한 중국이 연일 관영 매체를 통해 이를 극렬히 비판하면서 미·중 양국 간에 새로운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었는데, 그 무대가 바로 서해였다. 미국은 “서해는 공해이므로 우리는 그곳에서 군사 훈련을 할 자유가 있다”고 했고, 중국은 “서해는 중국의 근해이므로 미국 항모가 들어와 위협하면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무렵 중국은 미국 항공모함을 서해로 끌어들이는 한국에 대해서도 ‘괘씸죄’를 적용해 김태영 장관의 중국 방문을 전격적으로 취소시킨다. 이로 인해 중국을 방문해 량광례(梁光烈) 국방부장과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의 양국 간 군사 협력 방안 등을 협의하려던 김 장관의 방중 계획이 전격 취소된다. 천안함 사건으로 조성된 서해에서의 남북한 간 대결 국면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고, 미·중 강대국 간의 대결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그러자 이제껏 목소리를 높이던 남북한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강대국 눈치나 보는 궁색한 상황으로 전락했다. 한편 중국 정부는 “만일 서해에 항공모함이 들어오면 후진타오 주석은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한국 정부에 최후통첩을 보내왔다.
이런 상황이 김왕경 한미연합사 작전처장을 또 다른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제 겨우 미국 항공모함이 서해에 들어오도록 일정을 조율하는 시점이 되니까, 이제껏 “항모를 모셔오라”고 닦달하던 국방부와 합참이 “미국 항모가 서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거꾸로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할 수 없이 “항모 훈련을 연기하자”는 김 처장의 통보에 미국 국방부는 “너희가 그렇게 보내달라고 해서 가겠다는데 왜 이제 와서 오지 말라 하느냐”며 화를 냈다.
김 처장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G20 정상회의에 모든 것을 올인하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은 서해에서 한·미 연합 훈련만 중지시킨 것이 아니었다. 매월 수행하던 서해 백령도와 연평도 일대에서의 우리 해병대의 해상 사격 훈련도 모두 중지시켰다. G20 정상회의 성사를 위해 북한이나 중국을 자극하는 그 어떤 군사행동도 삼가라는 지침이었다. 이 순간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5·24 조치는 사실상 증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천안함 사건 이전보다 서해의 군사 대비 태세는 더 후퇴했다고 할 수 있다. 8월에 우리 정부는 “한·미 연합 훈련을 10월로 연기하자”고 미국에 통보했고, 미국은 이를 수락했다. 그러나 결정적 사건은 10월19일에 일어났다.
연평도 북한 해안부대, 또 하나의 결전 준비
이날 11시쯤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항모 조지 워싱턴호를 10월20일 서해로 보내겠다”고 김태영 장관에게 전화로 통보했으나, 김 장관은 “청와대와 협의해야 한다”며 이를 유보시켰다. 마침 그날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이 대통령에게 무기 수출을 활성화하는 ‘국방산업 G7 전략’을 보고하는 날이었다. 이 회의에 김 장관이 배석하지 못하고 미국 항모 진입에 따른 대책을 청와대 안보수석실과 협의하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청와대 지시를 받은 김 장관이 오후가 되자마자 다시 게이츠에게 전화를 해 “항모 진입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하자 게이츠는 차갑게 반응했다.
“한국이 보내달라는 걸 보내주는데 거부하니까 나도 백악관과 이 문제를 협의하겠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날 오후에 한국과 미국은 G20 정상회의가 종료되는 11월 말로 또다시 연합 훈련 시기를 늦추었다. 이미 조지 워싱턴호는 요코스카 항에서 서해로 출항해 들어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9월에도 서해로 출항하던 조지 워싱턴호가 한국 정부의 서해 진입 반대로 필리핀의 마닐라 항으로 항로를 변경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또 한국 정부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 이 항모는 재차 마닐라 항으로 항로를 변경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필리핀은 정국에 파란이 일었다. 필리핀은 비핵화를 선언한 나라인데 연이어 두 달째 미국의 원자력 항모가 들어오자 야당 의원들이 일제히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대통령에게 “미국의 항모가 자꾸 들어오는 이유가 뭐냐? 미국의 핵무기를 몰래 반입하려는 음모 아니냐”며 거세게 추궁한 것이다. 그러나 그 까닭을 알 길이 없는 아키노 대통령의 답변이 시원치 않자 야당이 이를 문제 삼으며 정국 자체가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다 같이 욕을 먹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에 놓인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대북 군사 대비 태세 강화라는 군사적 요구에 부응하기도 어렵고, 정치권력의 요구에 마냥 부응하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국가 안보 정책의 중심이 크게 흔들리는 이런 상황은 지정학적 딜레마에 처한 중견국 국방장관이 처한 비운이자 운명이기도 했다. 이런 그의 궁색한 처지와 우리 국방부의 혼란스러운 행태는 결국 11월 말 연평도에서 일어난 더 큰 비극으로 연결된다. G20 정상회의가 종료되자마자 국방부가 이제껏 미뤄두었던 서해 해상 사격훈련을 재개하는 등 그간의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통상 10월에 진행되던 호국훈련도 11월 하순으로 조정되었고, 이때는 마침 조지 워싱턴호가 서해에 들어올 예정이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합리적인 군사적 결정처럼 보였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의 강경한 군사 대치 국면을 활용해 더욱 대담한 대남 군사행동을 결행할 절호의 호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고 유엔 안보리에 이 문제가 회부되었을 때도 중국은 대북한 제재 결의안의 통과에 반대했으며, 이후 미국에 맞서 더욱 결연한 군사행동을 과시했다. 북한은 중국이 자신의 든든한 배후임을 확신했다. 때마침 한민구 합참의장이 이끄는 합참은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한껏 커진 서해에서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연례적인 군사훈련을 계획하고 실행하고자 했다.
이러는 동안 연평도 일원의 북한 해안부대들은 또 하나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군의 군사행동에서 일말의 명분이라도 주어진다면 이제껏 비축된 힘을 한꺼번에 쏟아낼 수 있는 기회가 올 터였다. 그리고 이것은 천안함에 이어 한국군에 또 한 번의 쓰라린 패전을 예고하는 전주곡이 되었다.
[시사저널] 201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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