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將軍들의 전쟁] #23. 제2롯데월드 반대한 공군총장 옷 벗겨
MB, 인사 문제 빌미로 김은기 총장 교체…노무현 정부 군 인맥 거세 나서
찜통 같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89년 8월24일 늦은 오후. 서울 삼청동 경북궁을 따라 늘어선 은행나무 길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와 국군 수도통합병원으로 들어섰다. 임기 9개월을 남겨놓은 공군참모총장 정용후 대장은 보안사 요원들에 의해 차에서 내려져 곧바로 입원 조치됐다. 56세의 정 총장이 돌연 입원한 사유는 공군 진급 비리 관련 조사 때문으로 알려졌다.
약 25일간 보안사로부터 조사를 받은 정 총장은 전역식도 치르지 못하고 31년 군 생활을 마감했다. 이 사건은 3년 후 한국 정치를 격랑으로 몰아간 대변혁의 불씨가 된다.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4월24일. 정용후 전 총장은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놀라운 사실을 폭로했다. 1989년 8월의 조사는 진급 비리 조사가 아니라, 한국형 전투기 사업(KFP) 선정 기종을 둘러싼 공군과 청와대의 갈등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공군은 F-18을 주장했으나, F-16을 선호하는 청와대와 국방부 고위층의 압력으로 자신이 강제 전역하게 됐다는 폭로였다.
정 전 총장은 “1988년 1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차세대전투기 기종을 F-18로 해야 한다는 건의를 하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기 직전,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이 서울 하얏트호텔로 나를 불러 F-18뿐만 아니라 F-16도 장점이 있다며 두 기종을 함께 건의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수사한 검찰도 “당시 김 수석이 ‘노 대통령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기회니 내 말대로 하라’며 정 총장에게 압력을 가했으나, 이를 거절한 후 노 대통령에게 F-18을 채택하도록 건의해 최종 재가를 받았다고 정 전 총장이 진술했다”고 밝혔다.
2008년 10월1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 경축연에서 김태영 합참의장 등 군 지휘부와건배하고 있다. 맨 왼쪽이 김은기 당시 공군참모총장. ⓒ 연합뉴스
정 전 총장이 강제 전역하고 후임 공군참모총장으로 한주석 중장이 발탁되었다. 한 총장은 전임자의 F-18 고수 방침을 번복하고 청와대 지침대로 F-16으로 기종을 바꾼다. 그 결과 1991년 초, 한국 정부는 F-16으로 한국형 전투기 대상 기종을 변경한다. 더불어 정 전 총장 측근으로 분류됐던 공군본부의 핵심 인재들을 거세한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고 정 전 총장의 폭로가 도화선이 되어 군 무기 도입 전반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감사원의 특별감사, 일명 ‘율곡 비리 특감’이 이어졌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의 기종 변경 의혹을 핵심으로 한 군 무기 도입 전반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김은기·류희인 등 노무현 공군 인맥 제거
그로부터 20년 후인 2008년 8월 초.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은 잠실의 제2롯데월드 건립을 허용할 경우 인근 성남의 서울공항에 미칠 영향을 검토해 이상희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했다. 서울공항의 군사적 중요성과 전투기 비행 안전 문제, 그리고 유사시 외국인 철수 문제를 고려할 때, 공항으로부터 불과 2㎞ 남짓 떨어진 인근에 초고층 빌딩인 제2롯데월드 건립을 허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내용이 보고의 핵심이었다. 5월에 이명박(MB) 대통령이 경제단체장과의 회동에서 제2롯데월드를 허가하겠다고 말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보고였다. 8월 중순부터 청와대에서는 “공군참모총장이 대통령에게 항명하겠다는 거냐”는 불만이 공공연히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 무렵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는 김은기 총장이 공군 인사에서 전횡을 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들어갔다. 2008년 당시 공군본부의 핵심 보직인 참모총장·참모차장·정보작전참모부장·인사참모부장이 공군본부 훈련처 출신에 편중돼 있었다. 작전의 핵심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작전사령부 출신 인사는 배제되고 공군본부 내 주요 보직에서 근무 인연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김 총장 재임 중에는 공사 24기들이 소장으로 버젓이 근무하고 있는데, 노무현 정부 말기에 들어오자 후배 기수인 25기에서 중장 진급자가 나왔다. 이는 김 총장과 류희인 전 NSC 사무차장(예비역 공군 소장) 등이 유착되어 추진한 인사의 결과라는 게 MB 정권 권력 핵심부의 논리였다. 따라서 김 총장 이하 인사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공군 내 주요 직위는 노무현 정부 사람들로 계속 채워질 것으로 보고 김 총장 교체를 건의하는 문건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으로부터 청와대에 전달되었다.
9월 중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과 국방부는 공군참모총장 교체를 건의하기로 하고, 조원건 공군작전사령관을 1순위로, 이계훈 합참차장을 2순위로 검토했다. 그 결과 한 고위관계자가 이 대통령에게 이 보고서를 가지고 들어간 날은 9월18일이었다. 이 대통령은 보고서를 받자마자 설명을 듣지도 않고 “이 사람으로 해”라며 이계훈 합참차장을 지목했다. 재가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30초 남짓. 그리고 이날 국방부는 이 차장을 새 공군참모총장으로 발표했다. 전광석화 같은 의사 결정에 공군참모총장 교체를 건의한 한나라당 관계자들마저 크게 놀랐다. 바로 이날, 서울공항을 이전하지 않고도 제2롯데월드를 건립할 수 있는 ‘윈윈(win win)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제2롯데월드 허용이 공군참모총장 교체와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은 당시 이 문제를 접근하는 모든 의혹의 시발점이었다. 김은기 전 총장이 과연 ‘제2의 정용후 총장’이 되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 국방위 핵심 관계자는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2008년 10월 김은기 전 총장에 대한 교체는 노무현 정부의 공군 인맥, 즉 공군본부 내 특정 부서 근무 인연을 청산하고 새로운 진용을 갖추기 위한 것이지, 제2롯데월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의문이 있다. 과연 10월 군 정기인사에서 새로 부임한 이계훈 공군참모총장이 특정 부서 인사 편중을 시정했느냐는 것이다. 막상 정기인사 뚜껑을 열어본 결과, 작전사령부 출신은 여전히 홀대받았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고위 장성일수록 그러한 현상은 두드러졌다. 그렇다면 갑작스레 공군참모총장을 교체한 이유가 새로운 인재의 진용을 갖추기 위해서라는 MB 정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실제 이명박 정부에서 공군 작전사령관 출신은 단 한 명도 공군참모총장으로 진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31대 이계훈 총장에 이어 32대 박종헌, 33대 성일환 총장은 모두 교육사령관 출신이다. 바로 이 점이 공군 인사에서 작전이 배제되는 이상한 풍조의 원인이 되었다.
이전 정부를 보면 24대 이광학, 25대 박춘택, 26대 이억수, 27대 김대욱, 28대 이한호 총장이 모두 작전사령관 출신이다. 항공작전을 관장하는 작전사령관은 공군 내에서도 최고의 전문가가 거치는 직위다. 긴박한 순간에 빠른 의사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전사령관을 역임해야 참모총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전례를 깨고, 주로 정권의 유력 인사와 가까운 인사·교육·정보 분야 출신들이 공군본부의 요직으로 진출하는 풍조는 공군의 정상적인 인사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2008년 4월28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 합동회의’에 참석해 경제 5단체장 및 대기업 회장들과 커피타임을 갖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작전사령관 출신, 공참총장에서 배제
공군 조종사의 경우 한 기수에서 조종사로 임관한 동기생 중 순직률이 10%가 넘는 기수도 있을 만큼 위험하고 난이도가 높은 직업이다. 공군 조종사는 민간 보험회사에서 생명보험도 잘 받아주지 않을 정도다.
이처럼 전격적인 공군참모총장 교체가 과연 제2롯데월드 허용과 관련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정치권력이 군사 지도자를 관리하는 데 정책으로 통제하지 못할 경우 항상 인사 문제에서 약점을 찾는 경향이 있었다. 이 대통령이 선뜻 이계훈 총장을 낙점한 배경에도 그런 시각이 있었다. 경쟁자인 조원건 작전사령관에 대한 문제점이 청와대에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에 의하면, 강원도 출신인 조 사령관이 노무현 정부에서 실세로 불린 이광재 의원의 후원을 받았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차별과 소외로 피해의식이 강한 강원도민회는 고향 출신 공직자가 상위 직급으로 진출하면 ‘강원도의 힘’을 보여주기를 갈구하는 강한 지역성을 가진 집단이었다. 여기에다 군 정기인사를 앞두고 조 사령관의 가족이 부하 가족들을 공관으로 초청한 사실까지도 인사에서 ‘줄 세우기’로 비춰지며 당시 한 정보기관에 의해 청와대에 보고되기도 했다. 참모총장 인사 발표가 난 후 한 지인을 만난 조 사령관은 “나에 대해 안 좋은 말이 청와대로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다”며 저간에 자신에 대해 떠도는 여러 소문들을 알고 있음을 드러냈다.
9월30일. 국방부는 제2롯데월드에 대해 다양한 대안을 상정하고 이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국방위원회에 보고했다. 12월30일. 롯데 측은 비행 안전을 위한 여러 조치에 자신들이 비용을 부담하겠다며 서울시에 제2롯데월드 신축 관련 협조를 요청한다. 그 이튿날인 12월31일. 서울시는 행정안전부에 이 문제를 행정협의조정위원회를 열어 협의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따라 국무총리실은 2009년 1월7일 행정협의조정위 실무위원회를 개최해 사실상 롯데 측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공군이 건의한 세 가지 방안 중 동편 활주로를 3도 변경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명박 정부가 마치 전봇대를 뽑아버리듯 공군의 반대를 묵살하고 제2롯데월드를 허가해주자 주목된 곳은 예비역 장성들의 반응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들이 거세게 들고일어날 만했다. 그런데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가 이상한 행보를 보였다. 이정린 성우회 정책실장은 언론에 “롯데월드에 찬성하는 장군들도 있는데 반대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내기는 곤란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당시 성우회장인 이종구 전 국방부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육사 14기 동기였다.
또한 1989년 정용후 전 공군참모총장이 강제 전역당하는 걸 옆에서 지켜본 당시 육군참모총장이기도 했다. 군 사조직인 하나회의 맏형 격인 이 회장과 하나회 소속 장교들을 30년 넘게 후원해 온 당사자가 이 의원이었다. MB 정권 초기에 이 회장이 이 의원과의 친밀한 관계를 활용해 국방부장관 인사에 개입한 정황은 예비역 장군들 사이에 꽤 잘 알려져 있었다. 당시 이상희 국방부장관이 이 회장과 같은 전의 이씨(全義 李氏) 종친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이상희 국방부장관(오른쪽)이 2008년 3월17일 성우회를 방문해 이종구 회장 등과 환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재벌 친화적 정부와 예비역 장성의 유착
단지 제2롯데월드 건립 허가에만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도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공군이 가장 우려한 것은, 서울공항을 롯데에 양보할 경우 전국의 모든 군 공항을 비롯한 군사시설에 대해서도 유사한 민원이 폭주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한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차제에 전국 군사공항 주변의 고도 제한 같은 규제 등을 일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고 조선일보가 2009년 1월 보도했다. 홍 원내대표는 “군사공항의 상당수가 과거에는 도시 외곽에 있었지만 도심이 커지면서 시내 중심에 위치하게 됐고, 성남 지역만 해도 서울공항 때문에 고도 제한을 받아 도시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등 문제가 많으니, 이번 기회에 전국적으로 검토해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경필 의원 역시 “성남·수원·대구·광주·청주 등 전국적으로 10개가 넘는 도심 군사공항 때문에 피해 받는 주민들이 1000만명이나 되고 과도한 규제 때문에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소음 피해 등도 심각하다”고 지원 사격을 했다. 친기업 성향의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를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 부르며 자유로운 기업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군사 분야의 규제를 대부분 없애고자 했다. 여기에 육사 출신 예비역 장성들이 적극 협조한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권력 추종적인 행태로 비칠 만했다.
성남의 서울공항은 수도권 방어에 긴요한 공군의 핵심 전력이 전개되는 전략적 요충일 뿐만 아니라 유사시 외국인들이 해외로 탈출하는 집결지이기도 하다. 유사시 영종도와 김포공항이 접경지역에 가까워 예비공항이라 할 수 있는 성남의 서울공항이 마비될 경우 국가는 커다란 혼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공항의 활주로 앞에 초고층 빌딩이 세워질 경우 미국의 9·11 테러에서처럼 항공기가 빌딩과 충돌하는 상황이 재연되지 않는다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2010년 6월 공군의 F-5E 전투기가 귀환하다가 강릉비행장을 2㎞ 앞두고 인근 해안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안개도 없어 시야가 트인 날에도 비행장 앞에서 이런 추락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성남 비행장 앞에 버티고 있는 고층 빌딩이 얼마나 심각한 시한폭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안전에 관한 문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미세한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큰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이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권력에 의해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로 강행되고, 여기에 국방부와 공군, 예비역 장성들이 들러리를 서는 행태는 MB 정부 초기 안보정책의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눈앞의 커다란 이익은 안전의 문제를 살필 수 있는 눈과 귀를 멀게 했다.
[시사저널] 201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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