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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將軍들의 전쟁] #21. 류우익 실장, “국방장관에겐 알리지 마라” 각 군 총장 은밀히 호출

머린코341(mc341) 2015. 9. 18. 12:24

[將軍들의 전쟁] #21. 류우익 실장, “국방장관에겐 알리지 마라” 각 군 총장 은밀히 호출


이명박 정부 첫해 군 장악 나선 청와대…이상희 장관 격분 


한국 보수 세력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이었던 진보 정권(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종언을 고하고 2007년 12월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에게 군은 조속히 장악해야 할 거대한 권력이었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8년 3월 초 이 대통령은 류우익 대통령실장에게 “군 인사에 관심을 가지라”고 지시했다. 그해 4월로 예정된 군 정기 진급 인사를 앞두고 확실히 군을 장악하라는 지침이었다. 류 실장은 이 말이 지난 정부에서의 “노무현 군맥을 청산하고 우리 사람들로 교체하라”는 의미로 들렸다. 김병국 외교안보수석에게 이 대통령의 지침을 전달한 류 실장은 “군 인사를 청와대에서 확실히 챙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수석은 국방부에 “4월 대장 진급 대상 후보자 명단을 제출하라”고 했다.


이 장관 “참모총장들 가만두지 않겠다” 격노


문제는 국방부였다. 이상희 국방부장관이 “대장 진급 인사는 국군통수권자와 국방부장관이 협의해 재가받는 사항이므로 외교안보수석에게 이를 보고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대통령의 군 인사를 보좌하는 것은 자신의 당연한 임무라고 생각한 김 수석 입장에서 국방부의 태도는 충격이었다. 김 수석은 이 사실을 류 실장에게 보고했다.


이상희 국방부장관, 김태영 합참의장, 류우익 대통령실장(왼쪽부터)이 2008년 3월27일 합참의장 보직 신고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3월29일 토요일 오후. 류우익 실장이 육·해·공군 참모총장에게 각기 연락해 일요일에 대통령실장 공관으로 다른 시간에 각각 들어오라고 했다. 4월 군 정기인사를 앞둔 시점에 대통령실장이 각 군 총장과 인사 문제를 직접 협의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여기에 단서가 붙었다. “국방부장관에게는 알리지 말라”는 것이다. 3월30일 일요일, 연락을 받은 각 군 총장들은 서울로 올라가는 도중에 직속상관인 장관에게 알리지 않은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임충빈 육군참모총장, 정옥근 해군참모총장,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이 모여서 서울로 향하는 고속철도에 몸을 실었다.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데 대해 불안을 느낀 총장들이 숙의하다가 임 총장이 이상희 장관에게 전화로 서울에 올라간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문제가 폭발한 것은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 국방부 간부회의에서였다. 이상희 장관은 전날 총장들이 무단으로 근무지를 이탈해 서울로 올라온 사실에 격분해 격한 말을 쏟아냈다. “총장들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와 함께 “보고 없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은 군인복무규율 위반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하겠다”며 화난 감정을 표출했다. 우리나라 4성 장군 중 근무지 이탈 범위가 정해지지 않은 유일한 대장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밖에 없다. 현역 대장이라면 반드시 사전에 근무지를 벗어나는 사실을 국방부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장관의 훈시문은 국방부 내부망을 통해 전군으로 전파되었다. 


청와대의 인사 개입 행태에 이상희 장관이 격렬히 반발했다는 사실이 류우익 비서실장의 귀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앙금이 쌓이기 시작했다. 군 인사를 둘러싸고 새로 출현한 정치권력과 군사권력은 새 정부 초기부터 예사롭지 않은 충돌 조짐을 보였다. 군대의 진정한 권력은 지휘권이 아니라 인사권이었다. 청와대는 이를 자기네 권한이라고 생각했고 국방부장관은 자신만이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 실질적인 인사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국방부의 실무 부서에서는 장관의 인사지침을 받아 ‘전문성에 기초한 인사 관리’라는 새로운 인사 정책 수립이 예고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 장관은 이제껏 군 인사가 싸우는 군대의 본질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과 관리에 물든 관료주의의 적폐물이라고 못마땅해왔던 터였다.


그동안 각 군의 인사는 각 군 본부 인사참모부와 인사운영감실이 주도했다. 각 군 인사참모부장과 인사운영감실 통제과장은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통상 인사참모부장은 군단장(중장), 통제과장은 준장 진급이 보장된 자리였다. 그러나 그 폐단도 적지 않았다. 육군의 경우 총장은 규정에도 없는 임의 조직인 인사운영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총장의 의도를 관철했는데, 이것은 군 인사법에서 인정되지 않는 절차였다. 이로 인해 인사 직능 출신이 장성 진급에서 유리하게끔 인사 출신이 할당되는 폐단이 나타난 것이다. 이 때문에 정기 인사 때마다 인사 출신의 전횡 및 특혜 논란이 불거졌고, 야전 작전 출신 홀대에 대한 반발 여론이 조성되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를 보면 11명의 군단장급 지휘관 중 경계소초(GOP)가 있는 전방 사단장 출신은 단 2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주로 후방 향토사단이나 동원사단, 대도시 주변의 군사령부 참모 출신들이 차지했다. 이 때문에 야전 작전 출신들의 진급이 저조하다는 여론도 빗발치던 상황이었다. 이 장관의 인사 개혁은 바로 이러한 적폐를 일소하는 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분명히 예전의 군대는 엘리트 군인일수록 최전방의 지휘관을 선호했고, 힘든 오지에서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는 걸 당연시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방에서 작전의 주요 보직을 거친 장교들보다 후방에서 유력자 측근으로 근무한 장교들이 더 출세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더니 이제는 이것이 만성화되었다. 이에 야전을 중시하는 이상희 장관은 ‘전문성에 기초한 인사 관리’라는 군 인사 개혁안을 들고나왔는데, 그 실체는 다름 아닌 ‘작전 우대 방침’이었다. 4월에 이 기조를 완성한 이 장관은 5월쯤에는 이미 작전 위주로 진급되도록 인사 지침을 계룡대에 하달했다. 이런 지침이 알려지자 “인사·군수 직능의 장교들은 진급시키지 않는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제껏 진급 하나만 보고 보직을 관리해온 비작전 병과의 장교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청와대가 관리하는 이너서클 TK가 장악


야전을 우대한다는 취지는 좋았으나, 군의 직능 체계는 하루아침에 바뀔 문제가 아니었다. 군을 경영한다는 것은 종합예술이다. 앞에서 싸우는 자, 뒤에서 지원하는 자, 인사를 하는 자, 정책을 하는 자가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 국방을 경영하는 것이다. 작전·인사·군수·정책 직능을 두는 것은 이들이 모두 국방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전 지상주의라는 인식으로 개혁을 밀어붙인 결과 군 내부에서는 불가피하게 분란이 조성되었다. 비교적 소폭으로 진행되는 4월 인사에서 이런 문제가 전면화되지는 않았지만 가장 큰 폭의 인사인 10월 정기인사에서는 대대적인 변화가 예견되었다.


한편 군 인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청와대 인사비서관, 기무사령관,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 모두 TK(대구·경북) 출신으로서 사실상 이너서클을 형성하고 있다는 군 내부의 비판 여론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류우익 실장을 필두로 한 경북 상주 인맥과 이명박 정부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영포(영일·포항) 라인의 약진, 이에 대한 불안감으로 저항의 색채가 농후한 호남 장교들 사이에도 갈등의 조짐이 나타났다. 류 실장은 군의 핵심 요직인 기무사령관에 자신의 이종사촌이자 상주고 후배인 김종태 소장을 추천했다.


김 소장은 4월1일 중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기무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석연치 않게 비리 혐의로 기관 조사를 받고 사단장에서 보직 해임된 그는 결국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한직인 교육사로 좌천돼 있던 중이었다. 비육사 출신에다가 새로운 정권과의 인맥이라는 이점이 작용한 결과 3사 출신으로는 드물게 기무사령관이라는 요직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한편 영·호남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장교들은 ‘기타 잡도’로 불리는 비주류였다.  


2008년 3월12일 이상희 국방부장관이 국방부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부터 박흥렬 육참총장, 송영무 해참총장, 김은기 공참총장, 김병관 연합사부사령관. ⓒ 연합뉴스


인사·법무·군수 등에서 연이어 전역지원서


본격적인 분란은 2008년 10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진 정기인사에서 터져나왔다. 11월5일 진급 및 보직 인사 발표를 앞두고 육군은 임명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인사참모부장 이승우 소장을 좌천시키고 후임에 이상희 장관의 측근인 포병 작전 출신 서길원 소장을 임명했다. 이에 이 소장이 전역지원서를 제출하며 반발하자 총장이 직접 나서 이를 만류해 가까스로 진정되었다. 그러나 인사 직능 출신 전체의 반발에 이어 법무·군수 직능에서 전역지원서 제출 사태가 잇따랐다. 이들은 평생을 진급만 바라보고 경력을 관리해왔는데, 기대에 어긋나게도 초라하게 차려진 밥상을 보고는 즉시 엎어버리겠다는 분위기였다. 바야흐로 군에서는 작전 출신이 여타 병과를 제압하는 작전 전성기가 개막된 것이다. 이는 이 장관이 내내 꿈꿔온 ‘국방의 이데아’였다.  


이 당시 정기인사에서 이 소장을 비롯해 논산훈련소장 장종대 소장 등 인사 직능 진급 유력자가 대거 탈락했다. 인사 직능만이 아니라 군수의 경우에도 3사 출신 고참 기수를 진출시킨 것 외에는 진출자가 저조했다. 정책은 통상 3~5석이 진급되던 것이 2명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야전 작전의 진급자는 8개 군단 작전참모 중 통상 1~2명 수준이던 데 반해 6명이나 진출했다.


인사 출신으로 유일하게 진급한 박성우 소장의 경우, 진급을 하면 사단장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작전이 아니면 지휘관을 할 수 없다”며 종합행정학교장으로 발령 냈다. 이렇게 작전 출신만을 지휘관으로 진출시키려다 보니 사단장으로 내보낼 자원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때문에 작전 출신 한 사단장의 경우, 두 번 연거푸 사단장으로 내보내지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 김인종 청와대 경호처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유 아무개 대령은 이미 진급 적기가 한참 지났음에도 준장으로 진급되며 특혜 의혹이 일기도 했다.


군 인사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지자 청와대도 군 인사와 관련된 잡음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11월에 이 대통령이 “군 인사에 잡음이 많다”고 직접 지적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난데없이 감사원이 군 인사 시스템을 감사하겠다고 나섰다. 군의 고유한 권한인 인사 문제에 감사원이 개입하는 데 대해 이번에는 국방부가 강력히 반발했다. 국방부의 새로운 인사 방향은 이른바 ‘김장수 사람’ ‘박흥렬 사람’이라고 낙인찍힌 장교들을 한직으로 내모는 것이었다.


이는 이 장관이 주도했다기보다는, 청와대가 직접 장교 신상을 관리하는 이른바 ‘검증 자료’를 운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반전을 통해 유력자와의 근무 인연에 따라 진급이 좌우되는 인연 중시, 줄 서기 풍토가 확산되었다. 장교가 진급을 하려면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1등을 하면 되는 것이고, 외부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없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외부의 입김에 따라, 정치 논리에 따라 진급이 좌우된다는 믿음이 군 내부에서 확산되기에 이른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2008년 4월3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종태 국군기무사령관 등으로부터 중장 진급 및 보직 신고를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사권 없다” 육참총장 발언에 장교들 반발


2009년 4월 임충빈 육군참모총장은 계룡대에서 장군 보직 신고를 받으면서 “총장에게 인사권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사실상 인사에 외압이 존재했음을 암시하는 이 발언으로 육군은 발칵 뒤집혔다. 이날 보직을 이동하는 장군들을 전부 계룡대에 모아놓고 신고를 받는 이례적인 행사가 임 총장의 지시로 있었는데, 외압의 실상을 폭로하려는 총장의 의도가 아니었는지 의심이 갔다. 이 행사가 있기 직전에 국방부는 “거듭되는 인사 잡음을 총장이 앞장서서 수습하라”는 당부를 했다.


하지만 이날 임 총장의 발언은 오히려 잡음을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외압을 방어하지 못하고 총장이 굴복하는 양상이 드러나자 즉시 “과장만도 못한 총장”이라는 장교들의 비난이 나오는 가운데, 진급을 하려면 청와대에든 국회에든 로비를 해야 한다는 잘못된 메시지가 퍼져나갔다. 이런 굴절된 인식이 새로 출범하는 정권 초기에 광범위하게 형성된 것은 과거 어떤 정권과 비교해도 유례가 없는 이상 현상임에 분명했다. 이명박 정부 첫해 군은 과거 정권의 색채를 지우고 새로운 진용의 군맥으로 일신하려는 정권의 과욕 탓에 연이어 불안한 모습을 나타냈다.


군인은 그들이 주적이라고 말하는 북한을 바라봐야 하는데, 이런 인사 풍토는 그 시선을 청와대로, 국방부로 향하게 했다. 여기에다 육군 야전의 작전 출신들이 군의 거의 모든 핵심 요직을 장악함에 따라 다양한 전문성이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이 동질화되는 이른바 ‘집단사고(group thinking)’의 위험이 증대된 것은 안보에 매우 불길한 조짐이었다. 이들이 고수하는 지상군의 전술 방식은 표준행동절차(SOP: Standard Operating Procedure)로 정착돼 한국군 조직의 강력한 문화를 형성한다.


여기에서 한국군은 경력이 엇비슷한 지상 작전 전문가들에 의한 편향된 전략 문화(strategic culture)가 형성되는 부작용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육군 작전 병과 장교들이 갖는 폐쇄적 문화였다. 우리나라 작전 장교들은 어떤 군대의 기동을 두고 이것이 돌파냐, 포위냐, 공격이냐는 용어를 선택하는 것을 놓고 밤새도록 논쟁을 한다. 거시적 안목에서 큰 틀의 전략을 고민한다기보다는 전술적 차원에서 개념과 용어로 다투는 그들의 문화, 그들의 속성은 다른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강한 구심력을 갖고 있었다. 바로 이 점은 훗날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겪으면서 한반도 위기관리의 중대한 결함으로 구체화된다.


[시사저널] 201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