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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將軍들의 전쟁] #30. 남재준과 김장수, 무인기와 함께 추락하다

머린코341(mc341) 2015. 10. 16. 14:24

[將軍들의 전쟁] #30. 남재준과 김장수, 무인기와 함께 추락하다


간첩 증거 조작 위기 국면에서 ‘무인기 사건’ 모호하게 처리한 ‘비정무적’ 태도에 청와대 불만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정부로 전환되는 권력 교체기에 국가정보기관의 대선 개입 문제가 정치적 현안으로 불거졌다. 이것이 국가안보를 위한 것인지, 정권안보를 위한 것인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다수의 엘리트 요원을 동원해 인터넷에 수많은 댓글을 게시하는 정보기관의 여론 조작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이는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대비하기 위한 행동이고, 국내 종북 세력을 식별하기 위한 비밀공작의 일환이라는 게 국정원과 국방부의 해명이었다. 북한에 대한 심리전의 일환이기 때문에, 설령 국내 정치 개입이라는 비도덕적인 요인이 일부 포함되어 있더라도 어느 정도 용인해줘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적의 실체가 더 뚜렷하게 드러나야 했다.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을 겨냥한 대응이라고 하지만, 국내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하는 북한 공작원이나 그 거점을 적발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저 “북한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형체도 없고 실체도 없는 적과 싸우다 보니, 정작 그 정체가 드러난 것은 북한의 공작원이나 공작 부서가 아니라 우리 정보기관이었다.


지난 4월21일 김기춘 비서실장(오른쪽)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참으로 기이한 것은 남과 북이 사이버 심리전을 진행하면 할수록 북한의 정체는 점점 더 베일에 가려지고, 우리 정보기관만 그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는 전략적 실패로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비록 남과 북의 체제 차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의 안보 전략에서 심각한 결함이자 무능력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애국적인 전위의식이라는 전략가들의 특권도 크게 위협을 받게 되고, 정보기관의 국내 정치 개입도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위기로 내몰리게 된다.


무인기 항공사진 놓고 청와대와 국정원 갈등


올해 3~4월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우리 안보와 정치에 또 다른 도전이었다. 3월5일 중국의 국정원 협조자인 김 아무개씨(61세)가 네 장의 유서에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는 중국 측 1개의 문서는 국정원의 요구로 자신이 조작했음을 시인하는 내용을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다. 김씨는 유서에서 국정원을 ‘국조원(국가조작원)’이라고 부르며 “국정원을 개혁해달라”고 말했다. 이후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 사건 수사에서 국정원이 직접 조작에 가담했던 사실이 드러나자 남재준 국정원장은 큰 위기에 내몰렸다.


사태가 국정원에 불리하게 전개될 무렵인 3월24일 또 미묘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도 파주에 일제 캐논 카메라가 부착된 무인비행기가 추락한 것이다. 즉시 국군 정보사, 기무사, 국정원, 경찰이 참여하는 지역 합동심문조(합심조)가 이를 조사해 “대공 용의점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각자 상부에 보고했다. 성능이 조잡한 소형 무인기가 위협이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합심조의 간사 기관인 기무사 요원은 국정원 요원의 동의를 받고 만장일치로 대공 용의점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3월28일에 국정원이 간사 기관이 된 중앙 합심조가 무인기를 수거해 갔다. 그리고 사흘 후인 31일, 백령도에 같은 유형의 무인기가 또 추락했다. 이때부터는 기무사와 정보사가 조사 내용을 전혀 모른 채 국정원이 조사 내용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4월3일 조선일보 1면에는 무인기에서 촬영한 사진이라며 청와대 전경이 찍힌 항공사진 한 장이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이후 여론은 “북한 무인기가 강남 고층 건물 사이를 비행하며 우리 사생활까지 엿본다” “무인기에 생화학무기를 탑재하면 서울에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며 무인기를 ‘심각한 위협’으로 몰고 갔다. 사실 조선일보에 실린 항공사진은 구글 위성 영상에 비해 품질이 조악한 것으로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심리적 효과는 매우 컸다.


정작 이 사진이 보도된 데 대해 큰 충격을 받은 당사자는 국방부였다. 바로 전날인 2일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기자단에 “무인기에서 촬영한 사진은 절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사진이 공개되면 북한에 자신들의 정보활동 성과를 보고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이적 행위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 국방부도 감쪽같이 모르게 국정원에서만 분석되고 있었던 사진이 통째로 언론에 누출되었다는 건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사진이 공개된 시점까지도 국정원에서 분석한 무인기 관련 정보에 대해 아무런 보고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대북 군사 정보를 총괄하는 국방부 정보본부 역시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더 뜻밖의 일이 있었다.


지난 4월15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국가정보원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서류 조작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기무사령관의 질책에 정보사 요원들 반발


그 시각, 남재준 원장 역시 조선일보의 보도에 크게 당혹해했던 것이다. 남 원장 측근은 필자에게 “조선일보가 사진을 게재한 것을 남 원장은 국정원에 대한 노골적 협박이라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언론이 국정원을 길들이면서 대북정책을 주도하려는 의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극비 정보인 무인기 사진을 조선일보에 제공한 것은 남 원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항상 정치에 부당하게 개입한다는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선 남 원장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을 갖추려고 꽤나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매월 국정원장의 판공비를 직접 반납한 것 또한 그런 강박관념의 표현 중 하나였다. “법에서 정한 월급 외에는 한 푼도 받지 않겠다”며 현금성 판공비 수천만 원을 모두 반납하며 청빈한 생활을 고집했다. 결론적으로 남 원장은 사진을 언론에 누출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이를 제공했을까? 이 대목에서 청와대와 국정원 간의 미묘한 갈등이 드러난다.


무인기에 관한 대처가 미흡했다는 비난에 휩싸인 기무사 역시 크게 당황했다. 이재수 기무사령관은 초동 대처에 미흡했다는 이유로 요원을 질책하며 “조선일보에 사진이 보도된 경위를 수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국군 정보사 요원들로부터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정보사는 이미 올해 북한의 무인기 출몰을 포착하고 이에 대한 기술 분석까지 마친 상태였다. 동해와 서해 일원에서 발견된 무인기는 육상 기지에서 정찰용으로 활용하기에는 성능이 크게 미흡하고, 다만 잠수함이나 공작선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해상용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 정보사의 결론이었다.


지난 4월11일 김종성 UAD 체계개발단장이 북한 추정 무인기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무인기에 탑재된 부품과 카메라 제원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국정원 안에 청와대와 ‘직거래’ 멤버 있어”


이미 전방과 연안 지역에서 북한 무인기가 수거된 사례는 20건이 넘었고, 그 대부분은 폐기된 상황이었다. 이런 분석 결과를 여러 번 상부에 보고했는데도, 기무사령관은 마치 정보기관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고 보고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있는 데 대해 반발한 것이다.


한편 기무사는 사진의 유출자로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을 의심하고 있었다. 4월2일 합심조에서 사진을 분석하던 국정원 요원이 “사진을 가져오라”는 서 차장의 지시를 받은 다음 날 조선일보에 그 사진이 게재됐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와 도덕의 경계가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도 기무사는 조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은 채 사건을 흐지부지 마무리했다.


무언가 안보 권력의 재편이 예고되고 있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장수 안보실장의 사이가 벌어진 것도 바로 이 무인기 사건 때문이었다. 무인기 사건에 대해 국정원과 국방부가 손발이 맞지 않은 채 허둥댄 것과 관련해 “김장수 안보실장의 모호한 태도가 문제라는 게 김기춘 비서실장의 판단이었다”고 안보실 관계자가 필자에게 설명했다. 5월의 김장수 실장 경질을 놓고 일각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을 질책하는 의미라는 관측이 대두됐다.


그러나 7월에 열린 국회 세월호 특위에 출석한 김기춘 실장 역시 김장수 실장과 똑같이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발언은 김장수 실장의 경질 이유가 될 수 없는 셈이다. 바로 무인기 사건을 처리하는 김장수 실장의 ‘비정무적 태도’가 문제였다. 간첩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마당에 북한의 4차 핵실험 가능성이든, 무인기 문제든 안보 위기와 관련된 뭔가를 부각시켜야 했는데 안보실이 타이밍을 제때 맞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월호’와 직접 연관성 없는 남·김 전격 경질


4월14일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 수사 중간발표가 나온 후 국정원 2차장이 경질되었다. 이날 3분에 걸친 남재준 원장의 대국민 사과 성명의 후반부에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무인기로 조성된 엄중한 안보 국면”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도 무인기 문제에 대한 언급은 남 원장의 의도가 아니었다. 청와대의 의지였다. 이에 대한 또 다른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남 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내 군 출신 인사들은 무인기 문제를 언급할 의도가 없었다. 그러나 국정원 내에도 청와대와 ‘직거래’하는 오리지널 국정원 멤버들이 있다. 이들이 청와대 의중을 남 원장에게 전달하는 메신저들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팬티 차림에 맨 먼저 구조되는 이준석 선장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어 6월21일 벌어진 22사단의 일반전초(GOP) 총기 사건에서 어디론가 사라진 소초장(중위)의 사연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큰 위기의 순간에 헌신과 용기로 책임감을 보여야 할 현장의 책임자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 도망자들의 공화국에서 국민은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안보실장은 날개 없이 추락했다. 두 사람의 경질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우선 세월호 사건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두 명이 전격적으로 경질된 것도 그렇고, 퇴임 이후에 어떠한 정권 차원의 배려도 없었다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통상 청와대에서 수석급 이상, 또는 집권 동지인 장관급 인사를 경질할 때는 퇴임 이후에 대한 배려가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었다. 외국 대사로 내보낸다든가, 대학 총장으로 보낸다든가 하는 배려는 관행이었다. 그리고 이런 중량급 인사를 경질할 때는 그 후임자를 물색한 다음에 자연스럽게 경질함으로써 국정의 혼선을 최소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전혀 없이 단칼에 경질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2014년 3월부터 5월까지 이어지는 정국에서 우리 안보와 도덕의 경계는 무척 모호했고, 여러 사람을 혼란스럽게 했다. 여기서 청와대를 비롯한 집권 세력에게는 국가의 기강을 유지하고 정부의 위신을 세우는 데 안보의 위협은 매우 긴요하게 활용될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즉 국민에게 북한의 위협을 수시로 일깨우면서 경각심을 불어넣고자 하는 일련의 활동은 국가의 기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발상은 일반 국민 대중이 우매하면서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나온다. 반면 국정을 주도하는 지도층은 명령하고 조작하고 윽박지르는 특권이 있다는 내재적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특권의식에 바탕을 둔 ‘엘리트 통치론’은 단기적으로는 매우 편리한 통치 방식이다. 그러나 직업군인은 안보의 원형을 추구한다. 외부의 정치 논리에 좌우되지 않는 순수하고 합리적인 안보,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숭고한 그 무엇이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청와대와 군 출신 인사들은 대립했다.


새로 임명된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오랜 기간 친일 세력이 득세해온 국방 분야에서 모처럼 독립운동가 자손이라는 정통성과 합리적인 유연성을 두루 갖춘 인사로 평가됐다. 그 때문인지 여당보다는 야당의 지지를 더 받기도 한다. 5월에 개각이 발표된 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유일하게 여야 합의로 추대되어 맨 먼저 장관직에 취임한 행운아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안보를 국내정치에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박근혜정부의 집권 세력과 향후 어떤 관계를 정립할지는 미지수이기도 하고, 그의 짐이기도 하다. 


[시사저널] 201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