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부사관 글/해병하사 권동일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24 - 개선장군

머린코341(mc341) 2015. 10. 17. 14:12

베트남 정글전 실록 - 스콜(Squall) 24 - 개선장군



꿈에도 그리던 귀국명령을 받았다. 막상 귀국명령을받고 보니 시원하기도 햇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섭섭함이 함께 뭉쳐져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늘 하루만 지나면 중대진지를 떠나 귀국의 장도에 오른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기만 했다. 뭐가 뭔지, 내가 어떻게 V.C들과의 생사 노름에서 사를 버리고 생을 택할 수 있었는지, 아마도 그것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남십자성만이 알고 있으리라.


그렇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내가 귀국의 영광을 안고 개선가를 부를 수 있는 대열에 낄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산화한 전우들의 보살핌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산화한 전우들의 명복을 빌고 중대 전원이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귀국의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진심으로 빌었다.


중대장과 중대 하사관들의 송별파티가 열려다. 맥주를 마시면서 지난 전투에서 겼었던 일들을 주고 받았다. 파티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을 쳐다보니 남십자성이 유난스레 반짝이고 있었고 이국의 달도 이곳 전선의 밤을 더욱 밝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남십자성을 쳐다보며 악몽 같았던 지난날의 작전들을 되새겨 보았다.


중대의 간부요원, 좌로부터 OP장교, 회기솓장, 통신병, 예비소대장, 2소대장, 필자, 중대장, 3소대장, 1소대장


6월 용두 1호 작전, 7월초 용두 2호 작전, 7월말 용두 3호 작전, 8월초 용두 5호작전, 8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용화 작전, 11월부터 12월까지 매화작전, 1월 비룡 작전, 2월 계룡 작전, 3월초 계룡 2호 작전, 3월말 서룡 1호 작전, 4월 서룡 2호 작전, 5월 서룡 3호 작전...


숱하고 숱한 작전 중에 전우들이 산화하던 날, 땅을 치며 하늘을 향해 울부짖던 날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렁차게 들려오는 포성과 함께 전선의 밤이 지나갔다. 중대진지를 떠나기 전에 중대원들과 나눈 대화는 짧았다.


"잘 가시오."

"고국에서 만납시다."


헬리콥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석별의 정을 못 이겨 하는 사람들을 두고 중대진지를 떠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전우들을 두고 먼저 고국으로 떠난다는 것이 무슨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중대진지에서 손을 흔드는 전우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었다. 중대진지는 자꾸만 멀어져 갔다.


헬리콥터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개활지와 밀림들, 그 속에서 수없이 치렀던 V.C와의 격전지가 보였고, 멀리로는 호이안 시가지도 보였다. 귀국의 꿈을 실은 나에게 베트콩들이 마지막 인사를 한다는 듯이 '딱쿵- 딱쿵' 총을 쏘아댔다.


활칵 밀려든 향수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악몽 같았던 격전지를 떠나는 안도감에 그에 비해 커지는 섭섭함이 교차되는 것을 느끼며 군함에 몸을 실었다.


다낭시가 푸르름에 싸여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언뜻 보기에는 도저히 전장의 도시라고는 느낄 수 없는 평화스러운 이국의 도시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평화스럽게만 보이는 저 숲 속 어디가에서는 V.C들과 치열한 교전이 붙고 있겠지.


군함이 고동을 울리며 다낭항을 출발하자 줄지어 떠 있던 고깃배들이 군함 주위를 따라왔고 검은 옷을 입은 어부들이 손을 흔들어 우리를 배웅했다.


청룡부대 귀국 장병을 실은 군함은 기우뚱하고 푸른 바다를 향해 파도를 가르며 다낭항을 뒤로 하고 끝없는 수평선을 향해 내달였다, 자꾸만 멀어져 가는 다낭항을 바라보며 하루속히 월남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빌었다.


월남전선을 뒤로 하고 고국을 향해 끝없는 수평선 위를 달리는 군함은 눈송이 같이 흰 물거품을 만들면서 바다를 갈랐다. 기우뚱거릴 때마다 금방이라도 뒤엎어질 것만 같았다. 키논과 나트랑을 거치면서 맹호부대, 백마부대, 비둘기부대 장병들을 승선시킨 군함은 곧바로 남지나해를 달렸다.


남지나해를 지난 지 5일째, 정글 속에 타버린 집들과 꺾어진 야자수와 숱한 격전지가 떠올랐다. 파도와 싸우면서 항해하는 군함은 귀국 장병들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연이어 고동을 울리며 수평선에서 수평선으로 쉴 사이 없이 고국을 향해 달렸다.


두고 온 월남의 평화를 기원하며 환영객으로 혼잡을 이루고 있을 부산 제3부두를 그려보았다. 고국의 아름다운 산천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항햐 11일째, 고국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장병들은 제 나름대로 귀국의 환상에 잠긴 채 상갑판으로 모여들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오륙도가 안개 속에 아른거렸다.


목이 터져라 개선가를 불렀다. 어느새 오륙도를 지나고 있었다. 곧 부산이 보일 것이라는 스피커 소리가 상갑판 위에 들리자, 가슴이 끓어오르는 듯 개선가 소리는 더욱 커졌다.


마침내 군함은 부산 제3부두에 정박했다. 365일전 떠날 때와 같이, 환호성과 터질 듯한 환영객으로 부산 제3부두는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호이안시의 한 가정을 찾아서 그 가족과 함께.

 

어린 아이들이 부모를 찾으며 목이 터져라 울고 있다.

 

전투의 반년은 물과 더불어 지냈다.

 

전쟁이 할퀴고 간 자리에는 시체들만 널려있다(서룡1호 작전에서)

 

굴 속에서 버티던 V.C들도 청룡 용사앞에 손을 들었다.(용두5호 작전에서)

 

잠시 휴식, 작업복이 찢어져 엉덩이가 보이는 줄도 모르고 악착같이 이기겠다고 버티고 섰다.

(계룡1호 작전에서)

 

문선대 공연으로 즐거운 시간

 

문선대 공연으로 즐거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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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선

 

긴--

세월의 악몽에서 깨어나니

군함이 파도에 밀리고 있습니다.

 

울부짖으며

가슴 찢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한아름 꿈을 안은 채

청룡은 승선했습니다.

 

남십자성의 별 빛을 둔 채

험한

남지나해를 넘었습니다.

 

신이 찾아준 생명이기에

이젠

남북 통일에 뿌리렵니다.

 

오륙도가

아침 햇살을 받은 채

안개 속에 아른거립니다.

 

여기 저기

환호성이 들립니다.

 

청룡은

언제나 귀신을 잡을 겁니다.

 

출처 : 청룡부대 1대대 3중대 작전하사 권동일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스콜(Squall)"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