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서사시 대한민국 해병대 -4
1.4후퇴 후,
진해(鎭海)지구에 집결하여
잠시 휴식과 재정비를 하고 있던
해병제1연대와 독립 5대대는,
1월 하순경 해로와 육로로 재출동을 단행,
영덕(盈德)·안동(安東)·청송(靑松)·영주(榮州) 지구에서
적 패잔병 소탕전을 전개했고,
2월 중순경 의명(依命) 묵호(墨湖)에 상륙,
위기에 직면한 육군(KA) 3군단(軍團)에 배속이 된
제1연대는
3월 중순경까지 백설이 길길이 쌓인
영월(寧越)·정선(旌善)·평창(平昌) 지구전선에서
우군(友軍)부대에 대한 지원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설한지(雪寒地) 전투사(戰鬪史)에 빛나는
발자취를 남겼다.
그런 다음, 3월 21일
가리산(加里山) 전투에서 창군이래 처음으로
야간공격을 성공시켜
미8군 장교견학단을 비래(飛來)하게 했던
해병제1연대는,
4월 22일 화천(華川)에서 북한강을 건너갔던
바로 그날밤에 감행된 공산군의 대대적인 춘기공세로
사창리(史倉里)의 좌인접 우군(友軍) 사단
정면이 크게 뚫려
부득불 홍천강(洪川江)강변까지 철수,
명에 의해 소양강 일대에 대한 수색전을 전개타가
6월 4일부터 적이 난공불략을 호언장담하던
도솔산(△1148)지구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중동부전선의 전략적인 요충지인 도솔산(兜率山)지구,
애당초 미 해병 5연대에 의해 공격이
시도되었다가 중지된 그 24개의 공격목표들은
모두가 수류탄과 중화기로 중무장한
마(魔)의 아성(牙城)들.
그러기에 계속 늘어난 아군의 사상자 수는
7백을 넘었고,
시산혈하(屍山血河)의 그 격전장은
사신(死神)들이 통곡하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화했다.
그러나 진실로 위대한 건 해병혼(海兵魂),
끝내 불가능을 주인했던 그 불굴의 감투정신은
기어이 그 마의 아성들을 쳐부수고
승리를 쟁취하고야 말았으니
이나라 해병이 아니고선 그 누구도 해낼 수 없었던
그 빛나는 승전을
뉘라서 불멸의 금자탑(金字塔)이라 일컫지 않으리오!
20일 05시 30분 경.
17일간의 사투 끝에 마침내 그 도솔산(兜率山) 상상봉이
점령되고 말았을 떄
감격에 목메인 전우들은
운우 자욱한 미명(未明)의 그 고지 위에서
서로 부등켜 안은채 사나이 울음들을 터뜨렸고,
날이 밝자 큰 바위며 아름드리 고목나무 아래에선
대검(帶劍)을 가지고서
<해병대 만세(海兵隊 萬歲)> <무적해병(無適海兵)>이란
글자를 새기고 있는 전우들이 있었음을
그날의 노병(老兵)들은 지금도 전설처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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