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戰 64勝의 秘訣
적과 싸울 때에 병사들이 생사를 초월하여 공격을 하되 결코 후퇴하지 않는 것은, 평소부터 지휘관이 부하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상관이 자신을 친자식처럼 온정으로 대한다는 것을 알면, 자기 부모처럼 사모하고, 결전에 있어서 희생을 두려워 하지 않고, 충성심으로 보답하려고 한다.
吳起列傳(오기열전) 에서 보면 “무릇 적과 싸움에 있어서 부하가 스스로 나아가 죽되, 물러나 삶을 즐기지 않음은 모든 장군이 은혜를 베풀기 때문이다. 총사령관의 부하사랑이 친자식 같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상관을 사랑하기를 자기 아버지 같게 한다. 그러므로 위험한 곳에 빠져도 죽음으로써 상관의 덕에 보답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라고 쓰여 있다. 즉 백성보기를 사랑하는 자식처럼 하면 상관과 함께 죽는다는 것으로, 부하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지휘관의 온정을 말함이다.
孫子(손자)병법에서도 地形(지형)편에 보면 사졸 보기를 사랑하는 자식같이 하면 이로써 함께 죽을 수 있다고 적혀있다. 이러한 사례는 전쟁사에도 많이 나와 있다.
전국(戰國)시대 위(魏)나라 오기(吳起) 장군은 병사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입으며 같이 자고 같이 걸으며 자기 식량은 자신이 휴대했다. 병사들과 고난을 나누어 가진 것이다. 종기에 농이 심한 병사를 보고 오기 장군은 자기 입으로 농을 빨아서 낫게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그 병사의 어머니는 슬픔에 잠겼다. 그녀를 본 한 사람이 말했다. “당신 아들은 한 병사에 불과한데도 오기 장군 스스로 입으로 농을 빨아 주었다는데, 왜 그처럼 슬퍼하는가?”
병사의 어머니는 대답했다. “지난 날 싸움에서 오기 장군은 내 남편의 종기가 곪았을 때도 농을 빨아 주었습니다. 거기에 감복한 남편은 싸움에 임해서 죽기로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이번에는 오기 장군이 아들의 종기에서 농을 빨아 주셨다니, 그 아들이 언제 전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슬픔을 금할 길 없습니다.”
위나라 군주 문후(文候)는 오기 장군의 통솔력이 뛰어나고 자기 관리에 엄격하고 대인관계가 공평하여, 부하간에 위신이 높은 것을 보고 오기를 섬서성 황하 서쪽인 서하(西河)장관에 임명했다.
오기는 위나라 군대를 지휘하여 76회 싸워서 64번이나 승리했다.
전국 시대의 명장 오기는 결코 뽐냄으로써 위엄을 과시한 것이 아니라 병사들과 고난을 같이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부하들과 일체감을 조성하고 부하의 사기를 고양시킨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정벌하고 회군도중 「게도로사」사막을 통과할 때, 몹시 갈증이 나서 부하에게 마실 물을 가져 오라고 했다. 부관은 어렵게 물 한 컵을 구하여 왔다. 대왕은 장병들이 식수부족으로 고통 받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 혼자 어찌 좋은 음식을 탐할 수 있느냐”라면서 냉수를 땅 위에 부어 버리고 마시지 않았다.
1991년 3월2일, 미국의 대승리로 끝난 걸프전쟁 때 미국의 중앙군 사령관이고 여러 국가들로 구성된 다국적군 사령관 노먼 슈와르츠코프 장군의 일화는, 부하 사랑이 전승의 관건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전장에 임한 슈와르츠코프 대장은 “잠을 자거나 깨어 있을 때나 나의 악몽은, 수많은 인간이 내 결단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 부하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불구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라는 명제 하에, “최단시간 내에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승리를 획득한다.”는 전쟁 목표를 확립했다. 그는 장병들과 똑같은 사막전용 위장색 전투복을 입고 같은 군용식량을 먹으며 리야드 사령부 지하에 침대와 책상 하나가 있는 침실에서 기거 했다. 1990년 8월 2일부터 1991년 2월 24일 지상전이 개시될 때까지의 6개월이 넘는 훈련기간 병사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목표대로 불과 1백 시간 내에 2백여 명 전사자를 내고 이라크군을 궤멸시켰다.
텍사스 대학의 경영관리 교수인 제임스 오스틴은, 슈와르츠코프 대장이 전투복을 입고 병사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이 기거함으로써, 병사들과의 거리를 좁혔고 일체감을 조성하여 승리했다, 라고 지적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일본식 경영의 전형적인 사례나 우리나라 기업에 있어서, 공장에서 공장장과 간부들이 일반사원과 같은 제복을 입는다거나. 사장의 중역들이 사원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영방식이나 관행이 일반사원과 관리직 간의 일체감을 조성하고 사원들의 사기를 진작하는데 효과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때 북아프리카 사막의 전차전에서 용맹을 떨쳐 「사막의 여우」라고 불렸던 롬멜은, 한편으로 「병사들의 장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만큼 부하장병과 함께 열악한 생활환경 하에서 기거했다. 롬멜 장군의 엄격하고 검소한 자기관리 자세는 부하 장병들로부터 절대적 존경과 신뢰를 받았으나. 이것이 그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북아프리카 전선의 최대결전인 엘 알라메인 전투초기(1942년 10월에서 11월), 요양하기 위하여 전장을 떠남으로써 지휘관이 없는 공백상태를 만들었고 마침내 패전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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