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속에서 찾아보는 해병대 DNA, 무적해병의 신화와 함께 한 영웅들
1949년 해병대 창설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해병대는 왜 강한가?'
'해병대는 왜 충성스러운가?'
등등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수식어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명예로운 수식어 뒤에는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조국에 바친
우리 선배 해병들이 계셨습니다.
전사속에서 찾아보는 해병대 DNA!
무적해병의 신화와 함께 한 14명의 영웅들을 통해
해병대 정신은 무엇인지 다시한번 돌아보겠습니다.
1. 민에게는 양이 되고 적에게는 사자가 되라!
(신현준 초대사령관, 1915. 10. 23. ~ 2007. 10. 15.)
신현준 중장은 경북 금릉 출신으로, 1946년 조선해안경비대에 입대,
해군 중위로 임관했다.
1949년 4월 15일 창설된 해병대의 초대사령관 직책을 수행하면서,
「정병 육성 강조」와 「유사시 대비 교육훈련」,
「민에게는 양이 되고 적에게는 사자가 되자」등의 교육훈련 이념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대 정신'의 기틀을 다졌다.
2. 내 목숨을 새털처럼 가볍게!
그런 마음 없으면 해병대 하지마라!
(김성은 중장, 1924. 12. 20. ~ 2007. 5. 15.)
김성은 중장은 해병대 창설 멤버이자, 6ㆍ25전쟁에서 전 부대원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얻은
'진동리지구 전투'와 한국군 최초의 단독상륙작전인 '통영지구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어
"귀신잡는 해병"의 신화를 창조했다.
이후에도 '인천상륙작전', '서울탈환작전', '고성ㆍ원산ㆍ함흥지구 전투'에서
상승불패의 해병대의 신화를 창조했으며,
제4대 해병대사령관 및 제15대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다.
3. 먹고, 마시고, 잠자는 모든 것을 부하와 함께하라!
(공정식 중장, 1925. 9. 3. ~ )
공정식 중장은 해병대 창설 멤버이자, 6ㆍ25전쟁 당시 '무적해병'의 전통을 수립한
'도솔산지구전투'를 비롯해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승리를 남겼다.
제6대 해병대사령관으로 한국군 첫 해외파병부대인 청룡부대를 창설하여
베트남에 파병했으며, 오직 해병대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부대원의 마음을 얻으려면 용감한 것 하나만으로 부족하며,
모든 일에 항상 부대원들과 똑같이 해야 한다."라는
확고한 지휘철학으로 부대를 이끌어 부하들이 충성을 다했다.
4. 빼앗긴 수도 서울은 해병대가 되찾는다!
중앙청에 태극기를 휘날리다
(박정모 대령, 1926 ~ 2007. 5. 15.)
박정모 대령은 1950년 1월 해병대 간부후보생 1기로 임관, 6ㆍ25전쟁에 참전해
'인천상륙작전'과 '경인지구' 전투에 참가했다.
치열한 전투 속에 '서울의 상징인 중앙청 수복은 반드시 해병대가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대형 태극기를 몸에 감고 중앙청 건물에 올랐다.
중앙청의 태극기는 국민들에게 승리의 메시지와 해병대의 용맹성을 널리 알렸다.
당시 美 트루먼 대통령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공훈'이라는 표창장을
한국 해병대에 전달했다.
5. 수류탄 2발이면 충분하다!
무적해병은 죽지 않는다!
(이근식 대령, 1931. 9. 12. ~ )
이근식 대령은 6ㆍ25전쟁 당시 '무적해병'의 전통을 수립한 '도솔산지구전투'에서
초인적인 용맹함으로 승리를 거둔 소대장이다. 유리한 지형에 배치된 적 기관총의 공격으로
소대의 피해가 급증하자 소대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호를 부탁한다."라는 말만 남긴 채
안전핀을 제거한 수류탄을 양손에 들고 단독으로
적 기관총 진지로 돌격해 진지를 폭파시켰다.
소대장의 용맹함에 분기탱천한 소대원들은 총공격을 감행하여
마침내 목표를 탈취했다.
6. 적은 나에게 맡겨라!
다음 작전을 부탁하다!
(진투태 중위, 1927. 2. 12. ~ 1951. 3. 8.)
진두태 중위는 해병대 창설 멤버로 '제주 4ㆍ3사건 진압작전', '원산상륙작전'을 비롯한
'고성, 함흥지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24번째 생일이 지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던 1951년 3월 '영월지구' 전투 시
대관령 고지에서 적과 교전을 벌이던 중 적에게 부대가 포위된 사실을 인지하고,
부대원들이 안전하게 철수하도록 적진에 홀로 남아 적과 교전하다
장렬하게 산화했다.
7. 전우가 잠든 이 고지에서 죽음을 함께 하겠습니다.
(김용호 중위, 1929. 9. 16. ~ 1952. 10. 31.)
김용호 중위는 6ㆍ25전쟁 당시 10월말 '장단ㆍ사천강지구전투'에 참전하여
주저항선인 전초진지에서 1개 소대 병력으로 대대 규모의 적을 맞아 죽음을 무릅쓰고
적과 사투를 벌인 끝에 적을 격멸시키는 큰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진지방어 후에 대부분의 소대원을 잃은 죄책감으로
"중대장님을 뵐 면목이 없어 대원들이 잠든 이 곳에서 죽음을 같이하여 속죄합니다."라는
짤막한 유서와 함께 자결했다.
8. 이 한 목숨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에게는 전우가 있다.
(고종석 일등병조, 1931. 12. 6. ~ 1950. 8. 25.)
고종석 일등병조(현 계급 상사)는 경기도 개풍 출신으로,
1950년 7월에 해병 2기로 입대하였다. 김성은 부대에 배치되어 진주와 제주도 일대 공비토벌
작전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진동리 지구 전투'와 '통영상륙작전'에도 참가하였다.
'통영상륙작전' 시 1소대 1분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총상에도 불구하고 임무를 수행하다 적이 던진 방망이 수류탄으로부터
분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장렬히 산화하였다.
9. 가장 위험한 순간!
내가 가장 먼저 나선다!
(이인호 소령, 1931. 7. 2. ~ 1966. 8. 11.)
이인호 소령은 경북 청도 출신으로 해사 11기로 임관 후
제1해병사단 수색중대장을 역임하고 파월하여
청룡부대 제3대대 정보장교로 임무를 수행했다.
1966년 8월 11일 베트남전선 투이호아지구 '해풍작전' 시
베트콩으로부터 입수된 첩보를 확인하고자 '동굴탐색작전'에 나섰다.
동굴 탐색 중 적이 던진 수류탄 1발을 되받아 던져 적 5명을 사살했으나
추가로 날아온 1발의 수류탄은 손이 미치지 않아
몸으로 덮쳐 부하들의 목숨을 구하고 산화했다.
10. 죽기 전에 한 놈이라도 더 처치하겠다!
내 병기를 맡긴다!
(이학현 상병, 1945. 12. 15. ~ 1967. 2. 15.)
이학현 상병은 충남 연기 출생으로 1965년 7월 신병 제167기로 입대한 후
1966년 10월 제2여단 11중대 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1967년 2월 15일 '신화를 남긴 해병'의 전통을 수립한 '짜빈동 전투'에 참전하여
치열한 교전 끝에 적탄을 맞게 되자 "죽기 전에 한 놈이라도 더 처치해야 한다." 라며,
실탄을 장전한 병기를 전우에게 넘긴 채 적 5명을 끌어안고 수류탄을 터트려
장렬하게 산화하여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11.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으로 임무를 완수하겠다!
(조정남 상병, 1945. ~ 1967. 2. 15.)
조정남 상병은 1966년 1월 신병 제173로 입대한 후 1966년 10월 제2해병여단 11중대 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신화를 남긴 해병'의 전통을 수립한 짜빈동 전투에 참전했다.
1067년 2월 15일 적의 대규모 공습 당시 청음초장의 임무를 완수하고
전우들과 함께 교전을 벌이던 중 전신 파편상을 입었다.
자신의 최후를 느낀 조 상병은 중상에도 불구하고 적을 유인하여
수류탄을 뽑아들었고 몰려오는 적과 함께 장렬히 산화했다.
12. 지휘관은 전투현장에서 전우와 항상 함께하라!
(안창관 대령, 1924. 1. 8. ~ 1971. 3. 30.)
안창관 대령은 독립운동가 안용운 선생의 막내로 태어나 해병대 창설에 기여하였다.
특히 6ㆍ25전쟁 기간 내내 전투현장을 떠나지 않고, 해병대의 주요 전투에 모두 참전하며
해병대의 용맹함을 떨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전쟁 이후 해병대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하며
해병대 발전에 기여 하다 1966년 예편하였다.
13. 중대장님! 소대장을 믿어주십시오.
반드시 진지를 사수하겠습니다.
(성관식 소령, 1928. 5. 25. ~ 1958. 9. 4.)
성관식 소령은 6ㆍ25전쟁 당시 '장단(사천강)지구' 전투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중
진지가 매몰된 상태에서도 진내 사격을 요청하며, 고지를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
이후 해병대 교육단에서 신병 양성 교육에 힘썼으며,
해병대 항공단 창설의 주요 멤버로 활약하다
1958년 9월 비행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순직했다.
14. 어머니! 휴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부대로 달려갑니다.
(서정우 하사, 1989. 8. 13. ~ 2010. 11. 23.)
서정우 하사는 해병 1088기로 입대하여 연평부대 중화기중대 공용화기 사수로
서북도서 연평부대에서 복무했다.
마지막 휴가를 앞두고 출도하기 위해 여객선을 탑승하던 중
북한의 기습포격도발을 목격한 서정우 하사는
부대로 복귀하여 전투에 임해야 함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신속한 복귀를 위해 부대로 뛰어 가던 중 적의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이처럼 살아 숨쉬는 해병대의 무궁한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오늘도 우리 해병들과 훈병들은
소중한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호국충성 해병대'
[대한민국해병대연구] 201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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