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51년) - KSC의 노름판을 싹쓸이 한 김창주 대위
해병대의 기인들 중에는 이런 기인도 있었다. 즉 924고지 방어기간 중 3대대 9중대 화기소대장으로 근무했던 김창주 소위는 9중대가 예비대로 있는 동안 간혹 KSC(한국봉사단소속 민간인 노무자)들이 벌이는 노름판(주로 짓고뗑이)에 뛰어 들기만 하면 판돈조로 걸려 있는 손목시계와 양담배 또는 C레이숀 등을 싹쓸이하듯이 따와서는 대원들에게 나누어 줬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당시 KSC들 중에는 미군들의 작전지역에서 탄약도 저 나르고 시체 운반작업을 한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그들은 대개 전사한 미군들이 차고 있던 시계를 전리품처럼 챙겨 가지고서는 팔목에 2~3개씩 차고 있었고, 양담배나 C레이숀 등은 흔해 빠진 물품들이었기에 그런 것들을 걸어 놓고 노름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김창주 소위가 그런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신의주 학생의거 사건에 연루되어 형무소에서 복역할 때 짓고뗑이의 달인으로부터 어렵게 배운, 귀신은 못 속여도 웬만한 사람은 속일 수 있는 뛰어난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KSC의 노름판에 뛰어들 때마다 그는 싹쓸이 한 물건들을 챙겨 오기 위해 한 두 명의 대원들을 데리고 갔다고 한다.
한편 그러한 화제를 남긴 그 김창주 중위는 67고지 탈환을 위한 5차 역습전 때 다음과 같은 실수로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충격을 느꼈다. 3대대 9중대에 의해 감행된 그 6차 역습전은 9중대장 오정근 중위가 건강상의 이유로 역습대를 지휘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선임장교로서 그 임무를 수행했던 것인데, 공격명령을 내린 지휘관은 1대대의 전방CP에 위치하고 있던 전투단장 김석범 대령이었다. 그 당시 3대대(장, 안창관 소령)는 전투단의 예비대였다.
10월(52년) 5일 전반야에 감행된 그 5차 역습전 때 김창주 소위는 통신병의 착오로 이런 실수를 저질렀었다. 즉 아군 지원포의 엄호 하에 공격소대 대원들의 선두가 67고지의 외곽 철조망 지대까지 약진했을 때 그 공격소대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곁에 있는 통신병에게 적색 신호탄 2발들 발사토록 했으나 다음 순간 발사된 그 신호탄이 지원포의 연신(延伸) 사격을 요청하는 적색 신호탄이 아니고 목표 점령을 알리는 청색 신호탄이었으므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날 밤 9시경 전투단 OP로부터 2발의 청색 신호탄이 발사되었다는 보고에 접한 1대대 전방 CP에선 전투단장과 1‧3대대의 지휘관과 참모들이 “드디어 해내었군!” “9중대가 점령했군!” 하면서 기뻐했고, 특히 어깨가 으쓱해진 3대대장 안창관 소령은 김창주 소위를 무전기로 호출하여 “선임장교요? 수고가 많았소. 즉시 증원병력들 보낼 테니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고지를 지키시오, 알갓시오?” 하고 다그치는 것이었으니 그로서는 참으로 딱한 심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고백할 용기도 없었다.
그랬다간 총살을 당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날 전반야에 감행된 그 5차 역습전도 적의 무서운 탄막 사격으로 역습대장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함으로써 실패하고 말았는데, 일이 그렇게 되자 특히 “9중대가 점령했어!” 하고 환호했던 3대대장 안창관 소령은 낙담을 한 듯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역습전에서 한쪽 다리에 중상을 입고 진해병원으로 후송이 되어 상당기간 동안 입원해 있었던 김창주 중위는 60년 5월 대위의 계급으로 예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 때까지 그 비밀(신호탄과 관련된)을 발설하지 않고 있던 그는 86년 필자가 전쟁실록 ‘해병의 신화’를 집필할 때 비로소 그 얘기를 꺼내면서 진실을 토로하기에 필자도 처음으로 그 내용을 그 실록(335-336쪽)에 수록해 두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1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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