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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기(‘51년) - 924고지에서 내로라고 외쳤던 진주섭 일등병

머린코341(mc341) 2015. 11. 7. 16:04

6·25전쟁기(‘51년) - 924고지에서 내로라고 외쳤던 진주섭 일등병

 
해병대에서 ‘김일성고지’라고 일컫기도 하는 그 924고지가 4일 간의 현전 끝에 마침내 점령이 되었을 때 초연이 걷혀 가는 그 고지 위에서 “나 일등병 진주섭이야-.”하고 소리쳤던 9중대 무전통신병 진주섭(秦柱燮) 일등병. 그는 자신이 한없이 자랑스럽게 여겼던 그 일등병의 정신으로 자신의 일생을 개척한 신념의 사업가로 기억되고 있는 사람이다.

 
개성 출신(1921년생)으로 청년시절에 일본 해군에서 복무하던 중 해방이 되어 귀국, 서울에 정착하여 고려제사(製絲) 공업사를 경영하기도 했고 화공약품을 취급하던 중 6‧25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피난길에서 해병대에 지원 입대(5기)했던 진주섭 사장은 51년 2월 영덕지구 전투를 거쳐 특히 육군3군단의 작전을 지원했던 평창(平昌) 지구의 봉산리 전투 때 식량 보급이 떨어져 강냉이와 칡뿌리를 씹어 먹는 등 허기와 목마름에 허덕이면서도 유선 통신망의 가설과 절단된 통신선의 보수작업을 위해 밤낮없이 흰 눈이 쌓여 있는 계곡지대와 산봉우리를 위험을 무릅쓰고 누볐고, 화천(華川)지구 전투에선 3대대가 중공군의 추격을 받으며 철수를 할 때 전방에 나가 있던 척후조(斥候組)와의 유선 통신망이 끊어지는 바람에 그 척후병들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전방으로 나갔으나 그 척후병들을 만나지 못한 채 이미 철수해 버리고 없는 본대를 찾아 춘천까지 헤매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도솔산지구 전투 때는 MI소총의 조작법과 수류탄을 투척하는 요령조차 잘 알지 못하는 신병들이 무수히 쓰러진 그 격전장에서 빈번하게 끊어지는 유선통신망 가설작업을 하다가 여러 명의 통신병이 사상을 당했는데, 그 때의 일을 그는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도솔산지구 탈환작전을 마친 해병 제1연대는 홍천(洪川)으로 이동하여 약 40일 간 휴식과 재정비를 하는 가운데 장병들의 사기 진작을 도모하기 위한 각종 행사를 계획했는데 그 때 각 대대 대항 단막극(短幕劇) 경연대회에 3대대팀 대표로 출연했던 진주섭 사장은 다른 대원들 보다 훨씬 나이도 많았고, 또 술과 노래와 여자까지 좋아하여 ‘막걸리’라는 별명을 지녔던 장본인답게 연대장 이하 전 장병이 관람하는 그 자리에서 백색 한복 차림으로 허리춤에 매달린 빨간 주머니를 빙빙 돌리면서 흥겨운 노래도 부르고 만담도 함으로써 폭소와 갈채를 받았었다.

 
홍천 강변의 철청리에서 휴식과 재정비를 했던 해병제 1연대는 그 해(51년) 8월 31일 월산령(펀치볼 동북벽) 서북방에 뻗어 있는 924고지(일명 김일성고지) 탈환작전을 감행했는데, 그 때 9중대장 강복구 중위의 무전통신병으로 근무했던 진주섭 사장은 공격 3일째 되던 날 오전 11시경 목표고지 점령을 목전에 둔 8부 능선에서 중대장 강복구 중위가 총상을 입고 후송되는 것을 지켜본 후 돌격을 감행한 9중대의 돌격병들에 의해 마침내 924고지가 탈환되자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그 고지 위로 뛰어 올라가 “나 일등병 진주섭이야-.”하고 소리쳤다고 하는데, 자기 자신이 천하에 둘도 없는 일등병임을 자부했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는 그 진주섭 사장은 일등병으로서의 무한한 긍지를 견지하기 위해 하사관이나 장교가 될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끝내 일등병으로서 존재하다가 일등병으로 제대했을 뿐 아니라 사회에 진출해서도 언제나 그 일등병 시절을 잊지 않고 일등병의 정신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그런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3년 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적수공권으로 사회로 복귀했던 진주섭 사장은 신의(信義)를 자신의 처세무기로 하여 동명목재에서 생산하고 있던 ‘호루마린’과 ‘암모니아’에 대한 전국총판권을 가진 동명약품(東明藥品)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4년 간 일본의 미츠이(三井) 물산산을 비롯한 외국의 유명회사들과 거래를 하며 회사를 키워 오던 중 60년 병환으로 타계했다.

 
한편 고인이 타계하자 2남인 진교인씨가 선친의 뒤를 이어 회사를 운영해왔었는데, 고인의 유지를 계승하여 동명약품공업주식회사를 이끌어 가고 있는 진교인씨는 비록 육군에서 복무를 했지만 해병대의 일등병 출신인 선친을 늘 자랑스레 여기고 있다는 말을 필자에게 했고, 미망인 이영숙 여사 또한 해병가족의 일원임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말한다. 생전에 두주(斗酒)를 불사했고 인간미가 풍부했던 진주섭 사장은 특히 주량이 적은 일본인 사업가들로부터 주귀(酒鬼‧술귀신)라는 별명을 얻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1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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