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기(‘51년) - 투혼을 빛낸 3인의 용사들
924고지와 1026고지 탈환작전에서 투혼을 빛낸 수훈의 용사들은 9중대 1소대 2분대장 김화윤 하사와 5중대 3소대 1분대장 최점득 하사 및 5중대 1소대장 손진천 견습사관이었다.
작전의 경위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즉 924고지 공격 첫날인 8월(51년) 31일 3대대(장, 김윤근 소령)는 11중대(장, 육동욱 중위)를 주공으로 하여 924고지의 정면을 찌르게 하고, 9중대(조공)로 하여금 그 우측 능선으로 우회공격을 하게 했으나 오전 11시경 미 해병대의 포병관측장교의 사격 지원 요청에 따라 발사된 포탄이 처음에는 적진을 강타하다가 그 관측 장교가 위치하고 있던 9중대 1소대와 11중대의 일부지역으로 날아와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공격이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3대대는 그 이틑날(9. 1) 10중대(장, 허홍 중위)와 11중대(장, 육동욱 중위)를 우인접 부대인 미 해병7연대 지역으로 우회시켜 924고지의 동북방 능선으로 진출하게 했으나 좌일선쪽의 10중대가 지뢰와 적 화력으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여 적진 300야드 지점에서 1중대(장, 한정룡 중위)와 임무를 교대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10중대와 임무를 교대한 1중대는 적진 100야드 지점에서 저지를 당해 있는 11중대와 우군 전폭기와 야포의 지원 하에 공격을 개시했으나 11중대장이 목 부위에 파편상을 입고 쓰러지고 선임장교 강길영 소위가 전사를 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그러나 전투는 중단되지 않고 날이 저문 뒤 1중대에서 투입한 화염방사기조가 적 기관총 진지에 시뻘건 화염을 투사하는 순간 1중대 1소대장 최경림 소위가 돌격을 선도함으로써 20시 30분경 마침내 목표 고지를 점령하기에 이르렀으나 실탄이 소진된 상태에서 감행된 적군의 역습 공격으로 약 30분 후 8부 능선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1중대와 임무를 교대하여 재탈환을 시도했던 3중대 선임장교 김영상 소위는 20~3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여 철수하려고 했으나 8부 능선을 사수하라는 대대장(김종식 대위)의 명령으로 사상자들을 끌어 안고 밤을 세웠다.
그 다음날 (9. 2) 공격에 투입이 된 중대는 주공으로 선정된 9중대(장, 강복구 중위)와 8부 능선을 사수한 3중대 였으며, 그 8부 능선과 9중대의 진로상에는 그 전날의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시신이 그대로 뒹굴고 있었다. 공격개시 시간은 9시 30분, 약 10분 간에 걸친 우군(미 해병대) 전폭기와 야포부대의 폭격과 지원사격이 끝난 시각이었다. 적의 저항은 그 전날에 비해 다소 약화된 느낌이었으나 적 기관총 진지와 1026고지에서 갈겨대는 중화기의 포효로 인해 여전히 고전을 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 속에 투혼을 빛내고 있는 분대장이 있었다. 9중대 1소대(장, 이민출 소위) 2분대장 김화윤 하사(해병 2기)가 바로 그였다. 불을 뿜고 있는 적 기관총 진지를 침묵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경기관총 분대장에게 엄호를 부탁한 다음 2명의 분대원을 데리고 적진 20야드 전방까지 약 100야드나 되는 거리를 포복으로 전진하여 2차에 걸친 수류탄 공격으로 불을 뿜고 있던 적 기관총 진지가 침묵을 지키자 “드디어 해내었어! 드디어!”하고 소리침과 동시에 적진으로 뛰어 오름으로써 9중대의 진중에서 ‘와-’하는 돌격의 함성이 일어나게 했고, 12시 30분경에 이르러 마침내 924고지를 완전 점령했다.
한편 924고지가 탈환되자 2대대(장, 김병호 소령)에서는 그날 오후 3시경 5중대(장, 이동용 중위)와 6중대를 투입하여 924고지 서북방으로 연해 있는 1026고지 전방 약 1키로 지점에 있는 중간목표(△908)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 끝에 18시경 격전 끝에 그 고지를 점령했고, 그 날 밤중에 감행된 적의 역습을 격퇴시킴으로써 그 발판을 굳혔다.
그리하여 2대대는 그 다음날(9. 3)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던 7중대를 주공, 6중대를 조공으로 하여 1026고지의 정면과 우측 능선으로 기동시켜 공격을 개시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저지를 당하는 바람에 5중대로 하여금 7중대를 증원케하여 정면 우단부를 공격하게 한 끝에 마침내 진로를 개척하게 되었고, 그 진로 개척 과정에서 특히 5중대 3소대(장, 장석원) 1분대장 최점득(崔点得) 하사(해병2기)는 단신으로 포복 전진하여 맹렬히 불을 뿜고 있는 적 기관총 진지를 수류탄으로 침묵시켜 3소대의 돌격을 선도했고, 5중대 1소대장 손진천 견습사관은 적이 투척한 수류탄 파편이 전신에 박힌 몸으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한쪽 손을 높이 쳐들고서 “돌격 앞으로-”하고 소리쳐 1소대의 돌격을 선도한 끝에 13시 45분경 마침내 그 1026고지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924고지 탈환작전과 1026고지 탈환작전에서 세운 뛰어난 전공으로 충무공무궁훈장을 수장하고 일계급 특진의 영예를 누린 김화윤, 최점득 하사는 충무무공훈장 3개씩을 탄 6․25전쟁의 영웅들이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 지면에 작고한 지 오래인 손진천씨 사진과 중병으로 투병 중에 있는 김화윤씨의 사진을 최점득씨의 사진과 함께 싣지 못하게 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名人∙奇人傳 第1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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