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 해병대 야사 5.
복잡한 서울 시내의 에스코트는 처음부터 요령을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나의 경우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것도 잘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내가 정한 목적지 도착 시간의 초과 허용 범위는 2분 이내였고 특히 정광호 사령관 시절에는 해병대 사령부에 관한한 2분을 초과 해 본적이 한 번도 없어 잘한다는 칭찬과 함께 5만원의 금 일 봉을 받아 보기도 했다.
당시 대위 급여가 2만 5천원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매우 큰돈이었다. 물론 일원도 빼지 않고 모두 고생하는 대원들의 파티로 끝이 났지만...
그러나 문제는 청와대까지의 도착 시간이 문제였다. 우리는 청와대 정문 앞까지만 제 시간에 에스코트를 해주면 그곳에서 인계를 받기 때문에 그 이상의 일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지만 거기까지 도착 예정 시간으로부터 2분을 벗어나지 않고 도착을 시켜 준다는 것이 사실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엔군 사령관 이임 인사차 방문. 미 해병대 태평양 지역 사령관 방문 . 청룡 부대장 귀국 신고 등 등 청와대로 향하는 일들도 심심찮게 있었고 육군 참모 총장. 합참 의장. 판문점 유엔군 대표. 영국 해병대 참모장 등 등 그런 분들의 행차는 주로 뻔히 아는 국방부나 육해공군 본부 아니면 해병대 사령부 아니면 미 8군이 목적지였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누가 시청 앞 광장을 통과 해 지나가느냐가 제일 큰 문제였다.
공항에서 들어오자면 서소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거나 무전기를 켜고 다니는 실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청 앞 네거리가 어떤 교통 사정인지를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깜둥이라는 별명의 경사는 뚱뚱한 체격에다 베테랑이었다. 시청 앞 네거리 플라자 호텔 뒷길로 접어드는 골목 앞에서 약간 나와 그가 신호 스위치를 들었다하면 모든 중심지의 차가 잘 움직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나는 항상 VIP를 모시러 가기 전 좀 일찍 서둘러 그 깜둥이 경사 앞에 잠시 차를 세우고 통과 예정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럼으로 우리의 목적지 도착 시간은 어김이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낭패가 났다. 시간이 촉박 해 깜둥이 경사에게 알려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설마 하고 에스코트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서 들어오는 서소문 길 근처에서 차가 막하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간신히 멀리서 네거리를 바라보니 모르는 어떤 경찰이 신호 스위치를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뿔사...
나는 찝차 앞좌석에서 흰 장갑 낀 손을 보라고 자꾸 흔들었다. 이 경찰도 보기는 했으나 조작이 쉽게 되지를 않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응급 처리를 빠르게 할 줄 몰랐던 것이다.
에스코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운전을 하는 상사에게 차를 그 경찰이 서 있는 부근에다 정차를 하게하고 내리지는 않은 채 내 앞으로 그 경찰을 불러 주의를 톡톡히 주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면 해군 본부로부터 퇴근을 한 영관 장교나 지방에서 오신 대 선배께서 가끔 나를 보러 오셨다. 그 분들은 매우 고성능 안테나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셨다.
사령부의 바람이 어디서 어디로 부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물론 내가 전에 모셨던 분들이기도 했지만 달리는 한 때 헌병 장교를 하셨던 분들도 계셨다. 그도 그럴 것이 사령부에서 근무를 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있지 않으면 진급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령부에서는 최고봉의 지위가 아니면서도 잘나가는 실세가 한 분 계셨다. 모두들 그 줄을 부러워했지만 아무나 잡을 수가 없어 나를 찾아오시는 대 선배들께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계셨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을 한다는 것이 실로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안다고 해도 겨우 사령부의 파견대나 그곳에서 근무하는 동기생들로부터 들어오는 특별한 기상 정도의 얘기지 기대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령부의 막강했던 분의 신변에 큰 회오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내가 알게 된 것이다. 즉 식은 밥으로 외부에 나가 약간은 비참하게 계시던 분이 바깥에서 더 큰 칼자루를 쥐게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 힘으로 사령부에서 막강하게 계시는 분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보였다.
이것은 일개 헌병대의 대위가 알 수 있는 사항은 아니고 내가 바로 다시 소생한 분을 예전에 모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나는 즉시 나에게 가끔씩 들리시는 대 선배께 그 정보를 전달했다.
물론 진급에 대한 구체적인 일은 알 필요도 없었고 알려 하지도 않았지만 나를 찾아오시던 대 선배께서는 원하시던 대로 대령으로 진급을 하셨고 내가 제대를 한 후는 장군이 되셨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예전에는 솔직히 헌병대에서 근무를 좀 하다보면 비록 내 계급이 대위긴 하지만 일반 병과의 모든 선배들에게 깍듯이 하기가 자신도 모르게 힘들게 되는 수가 있었다.
서울지구 헌병대가 대방동의 해군 본부로 완전히 옮겼을 때였다.평소 내가 인사를 잘하고 그 분도 아주 동생처럼 잘 대해주는 사관학교 출신의 소령이 한 분 계셨는데 어느 날 해군 검찰에서 나를 잠시 와 달라고 전화를 해 도대체 무슨 일인가하고 가 보았더니 대충 설명을 하고는 의자에 앉아있는 그 소령을 바로 구속을 시켜 달라는 부탁을 했다.
순간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너무 어색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고 나는 너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자기 일만 열심히 하고 세상 물정을 몰라도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소위 해군에서 마약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사실 이 소령이야말로 어떤 물욕에 눈이 어두워 직접 그 사건에 관련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고 파월 되어 돌아 온 자기 선임이 향정신성 의약품이라고 얘기를 하면서 아는 약국에 은밀히 알아보라는 부탁을 받은 후 친하다고 물었던 어떤 약국에서 그만 어떤 기관에 신고를 해 버려 어이없게도 변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즉 향정신성 의약품이 바로 마약이라는 것을 그 소령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끝 **
출처 : 해병대인터넷전우회, 해간35기 구문굉 선배님 http://www.rokmc.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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